[세상속으로] 영국 군주의 특별한 이별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 영국 군주의 특별한 이별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9-26 09:54
  • 신문게재 2022-09-27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이성만 배재대 항공운항과 교수
유럽은 면적은 중국보다 조금 크지만, 나라는 러시아를 빼고도 36개국이나 있다. 제후국, 왕국, 공국 등으로 불리는 군주국도 여전히 12국이나 된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군주는 나라를 호령했지만, 귀족 가문은 그 중요성을 상실하거나 사멸했다. 오늘날은 상징적 군주라도 적잖은 결정에 알게 모르게 압력을 가하고 민주제와 오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은 군주는 1952년에 영국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인 영연방 여왕에 즉위하여 올해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닐까. 70년간 여왕의 지위를 유지했으니 54개국을 거느린 영연방 역사상 최장 집권 군주인 셈이다.

여왕의 서거로 새삼 조명을 받는 역사적 장소가 세인트 조지 예배당(St. George's Chapel)이다. 영국 왕실의 거의 모든 애경사를 품은 곳이다. 윈저 성의 이 예배당은 길이가 72m나 되어서 'chapel'이란 명칭이 무색해 보인다. 최초의 예배당은 13세기 초 헨리 3세에 의해 건설되었다. 1475년 에드워드 4세는 더 큰 새 예배당을 짓기로 했지만, 공사가 50여 년이나 걸려 1528년 완공 때까지 지붕 없는 교회로 남았다. 사암으로 건축된 이 예배당은 큰 창문과 장식 부벽이 있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후기 고딕 양식 교회 중 하나다. 수평과 수직을 극대화한 '수직 양식(Perpendicular Style)'은 당시 영국 대성당의 전형이었다. 19세기에 수차례 대규모 보수 공사를 하면서 왕실 납골당이 들어섰다.

이후 왕실 가족의 거의 모든 장례식은 이곳 예배당에서 거행되었다. 'Queen Mum'으로 알려진, 조지 6세의 왕비이자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Elizabeth Bowes-Lyon)은 공식적으로는 런던에서 애도되었지만 이 예배당에서 또 다른 장례식이 있었다. 그러나 다이애나 비는 찰스 왕세자의 이혼한 아내라서 이런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그녀의 장례식은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왕실의 여타 구성원들, 특히 공주와 왕자는 프로그모어(Frogmore)에 위치한 왕실 묘지(Royal Burial Ground)에 묻혔다. 이곳은 늪지대에 사는 개구리 우는 소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윈저 성 내의 사유지로,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왕자가 안치된 왕릉도 있다.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는 조지 3세, 조지 6세, 'Queen Mum', 필립 공 같은 고위 가족들이 안장되어 있다. 이제 엘리자베스 여왕도 2021년에 사망한 남편 옆에서 마지막 안식처를 찾았다.

우리는 분명 오늘날의 세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지도자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여왕은 투표권을 행사한 적은 없지만 수십 년간 국가 원수로서 정치적 사건에 영향을 미쳤고, 여권은 소유하지 않았지만 부드러운 외교의 힘을 새로이 정의했다.

여왕은 일생 동안 영연방을 넘어 100여 국가를 여행하며, 과거를 직시하고 대처하는 시도를 단행했다. 그녀는 근대성과 군주제가 만나는 길을 닦았고, 헌신, 열정, 존엄으로 그 길을 이끌었다. 식민지 이후의 세계가 급진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동안, 영연방을 결속시켜 영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게다가 지난 10년은 4명의 수상들이 이끈 빈약한 내각의 시기였다. 이 10년은 사회적 분열과 불협화음의 시기였다.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든 브렉시트든 코로나19 대응이든 영국은 사회적 응집력이나 사회적 합의를 잃은 듯했다. 그러나 여왕은 영국을 하나로 묶은 희귀한 접착제 역할을 했다.

1952년 취임 때 여왕은 신의 종임을 선언했다. 그녀가 단독으로 군주제의 정의를 바꾼 셈이다. 그녀의 변함없는 헌신 덕분에 미래의 통치자들은 국민의 종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봉사' 약속은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행위이지만, 찰스 3세에게는 그것이 대관식 순간부터 그의 머리에 씌워진 왕관보다 더 무거운 짐을 의미할 지도 모르겠다.
이성만 배재대 명예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셔츠에 흰 운동화차림' 천태산 실종 열흘째 '위기감'…구조까지 시간이
  2. 노노갈등 논란에 항우연 1노조도 "우주항공청, 성과급 체계 개편 추진해야"
  3. 응원하다 쓰러져도 행복합니다. 한화가 반드시 한국시리즈 가야 하는 이유
  4. ['충'분히 '남'다른 충남 직업계고] 홍성공업고, 산학 결합 실무중심 교육 '현장형 스마트 기술인' 양성
  5. "행정당국 절차 위법" vs "품질, 안전 이상없어"
  1.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2. 김태흠 충남도지사, 일본 오사카서 충남 세일즈 활동
  3. 유성구장애인종합복지관, 여성 장애인들 대상 가을 나들이
  4.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5. "대전 컨택센터 상담사님들,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헤드라인 뉴스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절차 위법"-"안전 이상무" 팽팽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절차 위법"-"안전 이상무" 팽팽

정치권 일각에서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 논란을 제기한 가운데 23일 현장에서 열린 정부 안전점검에서도 서로 극명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안전 논란을 처음 들고 나온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대전동구)은 행정당국의 법정 절차 위반을 대전시는 자재의 품질과 교량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점에 각각 방점을 찍었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대전동구)에 따르면 이날 점검은 국토교통부, 국토안전관리원, 건설기술연구원, 대전시 등 관계자가 참석했다. 회의 이후 장 의원은 대전시가 중고 복공판을 사용하면서 법정 절차를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기획] `가을 정취 물씬` 자연이 살아 숨쉬는 충남의 생태명소
[기획] '가을 정취 물씬' 자연이 살아 숨쉬는 충남의 생태명소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적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한 충남도의 명산과 습지가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힐링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청양 칠갑산을 비롯해 예산 덕산, 공주 계룡산, 논산 대둔산, 금산 천내습지까지 각 지역은 저마다의 자연환경과 생태적 특성을 간직하며 도민과 관광객에게 쉼과 배움의 공간을 제공한다. 가을빛으로 물든 충남의 생태명소를 알아본다.<편집자 주> ▲청양 칠갑산= 해발 561m 높이의 칠갑산은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닌 명산으로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을 지니고 있다. 칠갑산 가을 단풍은 백미로 손꼽는다...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대전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목줄을 끊고 탈출해 대전시가 시민들에게 재난안전문자를 발송한 사건에서 견주가 동물보호법을 지키지 않은 정황이 여럿 확인됐다. 담장도 없는 열린 마당에 목줄만 채웠고, 탈출 사실을 파악하고도 최소 6시간 지나서야 신고했다. 맹견사육을 유성구에 허가받고 실제로는 대덕구에서 사육됐는데, 허가 주소지와 실제 사육 장소가 다를 때 지자체의 맹견 안전점검에 공백이 발생하는 행정적 문제도 드러났다. 22일 오후 6시께 대전 대덕구 삼정동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사육 장소를 탈출해 행방을 찾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재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