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떡 해봤어?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떡 해봤어?

  • 승인 2022-10-05 08:2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221004_170138004
지난 봄 보문산에 갔다 내려오던 중 대사초등학교 뒤 비탈에서 아주머니들이 뭘 뜯고 있는 걸 봤다. 그 곳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온통 무성하게 자란 쑥밭이었다. 아주머니들은 높이 자란 줄기 끝 연한 쑥만 부지런히 땄다. 며칠 후면 '곡우'라 쑥떡을 해먹을 참이란다. 곡우에 딴 어린 찻잎이 최고라는데,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진한 쑥향으로 버무린 떡이라. 봄에는 쑥떡만 한 게 없다. 마침 나도 비닐봉지가 있어 꾹꾹 눌러 한 가득 뜯었다. 그걸 끓는 물에 데쳐 하루동안 담갔다가 꼭 짜서 냉동실에 넣었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해먹을까 하다 얼마 전 중앙시장 떡방앗간에서 멥쌀가루 한 되를 사왔다. 방앗간에서 쑥과 쌀가루를 기계로 섞어 반죽을 하면 수월하지만 난 온전히 내 손으로 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

일단 얼린 쑥덩이를 녹여 칼로 최대한 쫑쫑 썰었다. 따뜻한 물을 쌀가루에 조금씩 넣으면서 반죽을 했다. 그런 다음 쑥을 넣고 계속 치댔다. 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깨와 손목이 뻐근했다. 드디어 녹색의 반죽 한 덩이가 됐다. 먼저 쑥개떡을 열 개 정도 만들었다. 송편은 빚기 번거로워 반죽을 조그맣게 떼어내 완두 비슷한 이집트콩과 강낭콩을 섞어 주무른 '막떡'도 완성했다. 손재주가 좋은 엄마가 빚은 송편은 기계보다 정교하고 모양이 막 피기 직전의 연꽃봉오리 같았는데. 자, 이제 쪄볼까? 찜기에 면 보자기를 깔고 떡을 가지런히 얹어 김이 푹푹 나는 걸 지켜보자니 조바심이 났다. 잘 됐을까? 뜨거운 떡을 꺼내놓고 김이 식은 후 맛을 봤다. 얼래? 아무 맛이 안 났다. 소금과 설탕을 너무 적게 넣은 것이다. 막떡은 콩이 있어 먹을 만한데 개떡은 여엉. 그래도 씹으면 쑥의 섬유질이 풍부해 식감이 제대로 났다.

지지난주 토요일, 봄부터 벼르던 대둔산에 갔다. 전날 만든 떡과 과일 등을 잔뜩 싸들고서. 버스에서 내려 산을 올려다봤다. 봉우리들의 위용이 남달랐다. 헉헉거리며 마의 90도 계단에 다다랐다. 말그대로 수직으로 된 계단이다. '임신부나 노약자는 오르지 마시오' 라는 표지판을 보자 심장이 쫄밋거렸다. "얼른 오이소. 므은 남자가 겁이 저리 많은지, 참말로." 빨간 등산복을 입은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남편을 채근했다. 아저씨는 결국 샛길로 따로 올라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다. 여기선 위도 옆도 보면 안된다. 아래는 더더욱 보면 안된다. 계단에 몸을 밀착시키고 앞만 보고 '이 순간은 곧 지나가리라' 주문을 외면서 한 발짝씩 떼었다.

정상에 올라 탁 트인 사방을 보니 희열감에 몸이 짜릿했다. 이거야말로 오르가슴 아닌가.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편안한 그늘에 앉아 먹을거리를 배낭에서 꺼냈다. 쑥떡을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만든 떡! 20% 부족하지만 내가 만든 떡이라서 애정이 갔다.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오래 전 명절에 떡을 먹으면서 엄마한테 떡이 너무 좋다고 하니까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너도 나 닮아서 떡을 좋아하는구나." 올 가을 농민들이 애써 가꾼 벼를 갈아엎었다. 농민에게 벼농사는 자식 키우는 거와 똑같다. 그런 쌀이 껌값 만도 못하다. 쌀값 폭락을 농민 탓하는 정부의 무지에 한숨이 나온다. 다행히 정부가 45만t을 사들여 급한 불은 껐지만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갈수록 줄어드는 수요도 문제다. 영양학적으로 손색없는 우리 쌀을 많이 먹는 것도 해결책이다. 뜨끈하고 말간 갈비탕에 윤기 자르르 흐르는 밥 한공기 말아 먹는 맛. 늙은 호박고지와 밤, 곶감, 대추, 온갖 콩이 들어간 영양찰떡을 먹는 행복. 지난 토요일 성심당을 지나다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인산인해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빵집 성심당이 쌀빵을 만들어 팔면 대박 날텐데.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임영웅 VS 장윤정 전국구 트롯 신동 김태웅의 선택은?
  2. 대통령 방문에도 충청권은 빈손… 실망감 커
  3. [월요논단] 노무현 대통령의 꿈, 행정수도 완성(?)
  4. ‘시원한 물놀이로 무더위 날려요’
  5. 충청 보수야권, "행정수도 혜택? 이 대통령 충청인 농락"… 부글부글
  1. 李대통령 취임 첫 충청 찾았지만 홀대론 불식 역부족
  2. 대전 동구, '신촌누리길' 조성 완료
  3. 대전시, 아시아 최고 가성비 여행지로 우뚝
  4. 대전 중구, 대전 최초'모바일 행복e음' 선보여
  5. [오늘과내일] 최초의 근대식 학교 배재학당

헤드라인 뉴스


이재명 정부와 미스매칭 반복… 최민호 시장, 서한문으로 노크

이재명 정부와 미스매칭 반복… 최민호 시장, 서한문으로 노크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인 최민호 세종시장이 이재명 새 정부와 계속되는 미스매칭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정당이 다르고 미래 세종시 비전에 대한 시각차가 분명한 만큼, 이는 불가피한 현실 지점으로도 읽힌다. 문제는 갭 차이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공통 분모는 행정수도 이전과 대전∼세종∼충북 광역급행철도(CTX)의 조속 추진, AI 국가첨단전락산업 특화단지 조성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세종시가 대선 기간 제시한 26개 공약안 대부분은 수용되지 않았다. 정당과 무관한 지역 현안임에도 그러했다. 최 시장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된 ▲국가 메가..

레오 교황, 이재명 대통령·김정은 국방위원장과 사진 찍을까
레오 교황, 이재명 대통령·김정은 국방위원장과 사진 찍을까

레오 교황과 이재명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3명의 만남에 대한 얘기는 이재명 대통령이 7일 한국을 방문 중인 충남 논산 출신의 유흥식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추기경)을 접견한 자리에서 나왔다. 이날 오후 2시에 시작한 접견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의 천주교회가 인권과 평화에 관심도 많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회복하는데 참으로 큰 역할을 해줘 국민을 대표해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천주교회와 관련한 현안 중에 2027년 가톨릭 세계청년대회가 있다”며 “가능하면 교황께서 오실 거 같긴..

식품·유통업계, 라면과 빵 등 50% 할인... 고물가 시대 서민 부담 낮아지나
식품·유통업계, 라면과 빵 등 50% 할인... 고물가 시대 서민 부담 낮아지나

정부와 식품·유통업계가 먹거리 물가 부담을 낮추기 위해 대규모 할인 행사를 한다. 대형마트와 편의점들은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라면과 빵, 커피 등을 최대 50% 싸게 판매하기로 하면서 고물가 시대 서민들의 부담이 낮아질 전망이다. 7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식품·유통기업들과 간담회를 열고 안정 방안을 논의해 여름 휴가철에 가공식품 할인 행사를 하기로 했다. 정부와 여당은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어 가공식품 가격 인상률 최소화 등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6월 가공식품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4.6%..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0시 축제 ‘한 달 앞으로’ 대전 0시 축제 ‘한 달 앞으로’

  • 휴가철과 방학 앞두고 여권 발급 증가 휴가철과 방학 앞두고 여권 발급 증가

  • ‘시원한 물놀이로 무더위 날려요’ ‘시원한 물놀이로 무더위 날려요’

  • 이재명 대통령, ‘충청의 마음을 듣다’ 이재명 대통령, ‘충청의 마음을 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