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성심당에서 8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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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 성심당에서 80m

  • 승인 2023-04-19 09:52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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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가 한국에 상륙한 그 해 봄, 대전 지하상가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뉴스에 그 곳은 한동안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다. 방역요원들이 부랴부랴 소독하고 시민들은 혹시 나도 감염되지 않았을까 공포에 떨었다. 올 봄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가 넘친다. 나는 휴일에 딱히 일이 없으면 원도심에서 시간을 죽인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설렘으로 발걸음마저 사뿐사뿐하다. 드디어 지하상가에 들어섰다. 북적북적 까르르 하하.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대전 시민들이 다 여기로 온 것 같다. 지하상가는 없는 게 없다. 옷집, 신발가게, 분식집, 액세서리 가게, 커피 매장, 타로카드 점집….

나는 성격상 사람 많은 데는 질색이라 여행을 가도 빨간 날은 피하는데 대전 지하상가는 다르다. 이 곳에 오면 나도 덩달아 들뜬다. 참 희한하다. 친구 아버지는 지하상가 분수대 의자에 하루종일 앉아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사람구경 하는 게 재밌다면서. 바야흐로 지하상가는 봄의 물결로 일렁인다. 보물창고가 따로 없다. 어느새 내 눈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동공이 확장된다.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파는 매장 앞은 장사진이다. 연인과 친구, 가족들이 시원한 음료와 종이컵에 담긴 조각피자와 와플을 먹으며 휴일을 만끽한다. 몇해 전 지하철을 탔을 때 옆에 앉은 초등생들이 어찌나 재잘거리던지. 유성에 사는 모양인데 친구 셋이서 은행동에 놀러가는 거였다. 아이들에게 은행동 나들이는 신나는 경험인 것이다. 대전 원도심은 신·구 세대가 어우러지는 힙한 곳이다.

성심당 골목은 핫, 핫, 핫플레이스다. 맙소사! BTS 콘서트장인가? 사람들이 옆 골목까지 길게 겹으로 줄지어 서 있다. 성심당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다. 나는 바게트 사는 걸 포기했다. 아무래도 평일 점심시간에 와서 사야겠다. 보통 동네 빵집을 이용하지만 바게트만큼은 성심당을 고집한다. 바게트 특유의 씹는 질감이 살아있어서다. 바게트에 아보카도와 리코타 치즈를 올려 먹으면 입안에서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진다. 성심당 앞 길거리 음식도 더불어 성황이다. 아, 대학 4학년 11월 이모네 떡볶이집에서 떡볶이 먹다 가수 김현식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망연자실했었는데.

지하상가~성심당거리~으능정이거리~중앙시장은 쇼핑과 음식 루트다. 요즘은 외국인도 많다. 으능정이거리는 특히 청소년들의 아지트다. 발품을 열심히 판 덕분에 맘에 쏙 드는 멜빵 청바지를 저렴한 가격에 샀다. 서너 시간 걸었나. 점심에 해먹은 돼지고기 표고버섯 묵은지찜이 벌써 소화돼 허기졌다. 돈가스 먹을까? 자그마한 식당으로 메뉴는 짬뽕, 돈가스, 치즈돈가스 세 개다. 저녁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두 명뿐이었다. 개업한 지 두 달 됐단다. 직원은 젊은 남자 셋. 치즈 돈가스를 주문했다. 옛날 돈가스에 치즈를 얹고 밥 한덩이와 양배추 샐러드가 전부다. 김치, 단무지 등은 셀프. 단순했다. 앗, 수프가 없네. 오뚜기 수프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오랜만에 쫀득한 치즈가 듬뿍 올라간 돈가스를 맛나게 먹었다.

여학생들에게 남자선생님의 연애사는 최고로 흥분되는 소재다. 고등학교 때 '열혈청년' 국어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대학 재수시절 여자친구와 경양식집에서 돈가스 먹은 추억을 들려줬다. 선생님은 처음 먹는 거라 '칼질'이 서툴렀는데 여자친구가 그걸 보고 창피해 했다고. 그때만 해도 서양음식은 돈가스가 대표적이던 시절이었다. 내가 접시를 싹싹 비우는 중에 직원이 문을 열고 나가 가게 앞에서 바람에 뒹구는 쓰레기를 치웠다. 순간, 이 식당에 정이 갔다. '베리굿짬뽕돈까스'가 번창했으면 좋겠다. 다음엔 짬뽕을 먹어야겠는 걸? 그런데 '돈가스'일까, '돈까스'일까? 표기법상 돈가스가 맞는데 돈까스가 입에 짝 붙는다. 짜장면처럼.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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