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생각쪽지'와 질문의 힘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생각쪽지'와 질문의 힘

  • 승인 2023-05-22 08:33
  • 수정 2023-05-23 10:00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이승선 교수
이승선 교수
우리나라 학생들은 질문하지 않는다. 자주 듣는 말이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인 대학 본부 회의장에서도 그런 말을 간단없이 한다. 학생들에게 질문하라고 억지로 기회를 줘도 꿀 먹은 사람처럼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충청권역에 있는 대학교 학생이라서 그런가. 서울에서 학자들의 모임이 열릴 때 영호남이나 강원·제주 그의 학교가 어디 소재하든 가릴 것 없이 또 한결같은 이야기를 한다. 학생들이 도통 질문하지 않는단다. 과연 그러한가.

학생들이 질문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학생 전체로 범위를 넓혀 방어할 생각은 없지만, 최소한 우리가 함께 공부하는 강의실에 그런 진단이나 주장은 적용되지 않는다.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의 질문은 끝이 없다. 선생에게 묻든, 발표한 동료 학생에게 던지든 교실의 여기저기서 질문하려는 손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무엇은 무엇이냐는 유형의 단순한 질문은 많지 않다.

학생 아무개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선생이 설명하기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취재한 뉴스를 포털에 무료로 제공하는 전략적 실수를 한 후 고갈된 재원을 해결하는 방편의 하나로 현재 대부분 언론이 기사형 광고를 게재한다고 했는데, 광고성 기사 수입만으로 언론사가 생존할 수 있는가?’ 선생의 설명이 정교하거나 충분하지 못해 생긴 질문이었다. 학생들의 좋은 질문은 선생의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을 채운다.

중간고사를 치른 현재 전공과목에서 질문한 학생은 수강생의 96%이다. 1학년 학생들이 주축인 교양과목의 경우 질문한 비율은 60%인데, 지난 2학기 같은 교양과목에서 질문한 비율은 학기말 기준 90%였다. 최근 자발적으로 주제 발표를 하고 싶은 학생들의 신청서를 마감했다. 3분간 자기주장을 펼치고 나면 빗발처럼 쏟아지는 학생들의 질문을 감당해내야 하는 발표다. 전공과목 수강생 중 80%의 학생이 주제 발표를 신청했다.



학생들이 질문하지 않는다는 진단은 타당하지 않다. 학생들은 곧잘 질문할 뿐 아니라 동료 학생들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것도 당당히 감당하고 있다. 질문하고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무릇 누구든지 어려운 일이겠으나, 어려운 '처음'을 겪어야 잘하는 다음이 있다. 우리 학생들이 그걸 보여주고 있다. 질문하는 힘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생각하는 연습을 자주 하면 질문의 힘을 기를 수 있을까.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래 30년간 학생들에게 '생각쪽지'를 받았다. A4 한 페이지짜리, 대략 1,800자의 글이다. 지난 학기 데이터를 보면 전공과목 수강생의 96%, 교양과목의 경우 87%가 자발적으로 생각쪽지를 작성했다. 대부분 매주 1개씩 썼다. 수업에서 다룬 주제를 자기 생각으로 정리해 보거나 질문하고 싶은 내용을 기록한다. 물론 프라이버시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으므로 선생에게만 말하고 싶은 내밀한 이야기를 적을 때도 있다.

무역학을 전공하는 김두기는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와 1955년 흑인 인권운동의 한 계기가 된 틸 소년 이야기를 썼다. 그는 언론의 보도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사람들에게 있다며 어떠한 환경에서든 "언론을 진정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시민들의 용기가 아니겠는가"라고 물었다. 언론학을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은 왜 한국의 정치인들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반복하는지, 동시에 한국의 언론은 왜 그러한 발언을 대서특필하는 보도 관행을 되풀이하는지 '생각쪽지'에서 질문한다. 생각쪽지를 쓰며 스스로 묻고 강의실에서 공개적으로 동료 학생들과 묻고 답한다. 생각은 질문하는 힘을 기르고 좋은 질문은 자신과 사회의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공적인 선거로 선출된 권력은 주권자의 눈을 대신하는 언론에 권력 집행의 현장을 '보여주어야'하고 주권자의 대리 입인 언론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러한 구조와 작동의 원리가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요체다. 언론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려거든 공직선거에 출마하지 않아야 한다. 작금에 중앙정부가 언론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둥, 어떤 지방정부는 아예 몇몇 언론의 접근을 차단하고 질문 자체를 받지 않는다는 둥 어수선하다. 자유민주주의의 운영원리에 맞지 않는다.

언론에 묻는 질문거리가 있다. 언론인은 성실하고 정교하고 예리하게 질문할 준비를 갖추고 실제 그렇게 질문하는가. 누구를 위해 질문하고, 질문해야 할 때 정작 침묵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