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회색 코뿔소의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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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회색 코뿔소의 울음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3-07-03 10:10
  • 신문게재 2023-07-04 19면
  • 이유나 기자이유나 기자
김태열
김태열 수필가
장마철이다. 일 년 중 대부분의 비가 이때 내리는데 이를 잘 관리해야 물 사용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국토의 근간은 물의 다스림이다. '사기', '하본기', '서경', '홍범' 등에는 중국 고대 치수 역사가 나온다. '노아의 홍수'와 비슷한 시기인 요순임금 시절 황하 유역에 '9년 대홍수'가 일어난다. 제방을 쌓아 물길을 막는 방법으로 시도한 곤은 실패하여 죽임을 당하고 그의 아들인 우가 그 임무를 맡는다. 그는 아버지와 다르게 13년간 물길을 내고 틔움으로써 치수에 성공하고 하왕조를 연다.

우리나라에서도 물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이 줄기찼다. 농업을 위해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상주 공검지가 만들어졌다. 한양의 청계천 인천·부평의 굴포천과 경인아라뱃길 대전의 대동천 사천만 방수로와 같이 인공하천을 파서 성난 물길을 돌리기도 했다. 제1차 경제개발 시작과 함께 4대강 유역조사를 통해 하천 정비계획이 수립되고 다목적댐이 설치되었다. 홍수 예·경보 시스템에서 수집된 수문자료와 수문 레이다와 인공위성에 의한 강우 예측을 토대로 수계 댐들을 통합 운영함으로써 강의 범람으로 인한 홍수피해는 거의 입지 않게 되었다. 치수의 핵심은 제방을 쌓아 홍수를 막고(防),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두고(貯), 새로운 물길을 내고(疎), 저지대에서 물을 퍼내(抽)는 것이다.

인류 문명은 물과 불을 다스릴 수 있음으로써 삶의 향상을 이루었다.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자연에 대한 인간 도전의 역사였다면. 그 이후에는 문명에 대한 자연의 응전이라 할 수 있다. 겨우 300년 남짓 동안 배출된 온실가스로 지구의 기후환경에 이상이 생겼다. 몇십 년 전과 비교해도 확연히 드러난다.

봄꽃의 개화 시기가 점점 빨라지더니 올해 전국에서 벚꽃이 거의 한꺼번에 피었다. 겨울부터 아카시아꽃 필 무렵까지 큰 산불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캐나다에서도 5월부터 계속되는 산불로 이미 약 6만 ㎢ 삼림 면적이 피해를 보았다. 5월에 초강력 태풍이 괌을 휩쓸어 한국 관광객 3천여 명이 공항에 갇혀 난민 같은 신세가 되는 등 지구촌이 예기치 못한 이상 기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류가 화산처럼 뿜어내고 있는 온실가스로 야기되는 기후 온난화 현상은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가늠하기 힘들다. 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채널인 IPCC 제6차 평가보고서(2022년)의 제1 실무그룹보고서에서는 지구의 지표면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에서 억제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1.5도 상승은 기후 패턴에 돌이킬 수 없는 부정적인 현상을 피하기 위한 마지노선이라 한다. 이미 1.09도 상승했고 이대로 간다면 2040년 이전에 1.5도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은 도시화와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이상기후와 맞물려 예전과 달리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인명과 재산피해를 동반한 침수가 발생하고 있다. 작년만 해도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퍼붓는 비로 일어난 강남역 일대 물바다, 소하천 범람에 의한 포스코와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침수, 배수계통 미흡에 의한 지하차도 침수 등이 일어났다.

이상기후는 경험으로 아는 범위를 훨씬 벗어난 가뭄과 호우를 동반한다. 하루에 연강우량의 절반이 내리기도 하고 1시간에 연강우량의 10분의 1이 퍼붓는다. 이런 큰비는 기존 치수 구조물의 설계개념을 크게 상회한다. 작년 강남에 내린 시간당 100mm가 넘는 국지성 집중호우는 어디든 내릴 수가 있다. 물론 가능성만을 염두에 두고 막대한 예산이 드는 치수 시설물을 바꿀 수는 없다. 그나마 '지하차도 사전 차단 시스템' 등과 같은 대책이 급히 마련되고 있지만, 개개인도 주변의 위험 요소를 잘 살펴 자기를 지켜야 한다.

우리의 조그만 노력이 샘물이 되고 국가가 그 물길을 이을 때 이상기후라는 회색 코뿔소를 극복할 수 있다. 무정한 하늘만 탓하는 운명에 맡기기보다 어느 때보다 집단지성의 힘을 모아 차근차근 대처해야 할 때다.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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