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억울한 급발진 사고, ‘제조물 책임법’ 개정을 기대한다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억울한 급발진 사고, ‘제조물 책임법’ 개정을 기대한다

이종오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 승인 2023-07-03 09:41
  • 수정 2023-07-03 09:43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이종오 대표변호사
이종오 대표변호사
최근 대전지방법원 형사5단독(재판장 김정헌)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은 대학교 교내 지하주차장 출구 쪽에서 정문 쪽으로 운전하다 경비원을 들이받아 사망에 이르게 해 재판을 받게 됐는데,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은 '급발진'으로 사고가 발생해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지하주차장에서 시속 10.5㎞의 속도로 우회전하던 차량이 시속 68㎞까지 속도가 증가했고 사고지점까지 차량의 속도는 증가할 뿐 감속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렇다면 피고인이 약 13초 동안 보도블록, 화분 등을 충격하면서도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하고 밟았다는 것인데, 이러한 과실을 범하기 쉽지 않고 의도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지 않는 이상 이뤄질 수 없는 주행"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어 "당시 차량에는 피고인의 배우자와 자녀가 동승하고 있어 비정상적인 주행할 이유가 전혀 없고 가속 구간에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운전 경력이 30년 이상으로 짧지 않고 사건 사고 당시까지 단 한 번의 교통 관련 수사나 처벌받은 전력이 없고 신체적 장애가 있다거나 음주 및 약물을 복용해 사고를 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무죄 판시 이유를 들었다.



이는 2008년 대법원에서 벤츠 차량을 몰다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해 10중 추돌사고를 낸 대리운전기사에 대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판시하면서 무죄 판결한 이후 '급발진' 의심에 따라 종종 무죄판결이 선고되고 것과 궤를 같이한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난 급발진 의심 사고로, 60대 할머니가 운전하던 차에 함께 타고 있던 12살 손자가 숨졌고 유가족은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민사소송에서 우리나라 법원이 급발진을 인정한 사례는 거의 없다. 2018년 5월 호남고속국도 인근에서 발생한 BMW 차량의 급발진 사건만이 항소심까지 승소해 대법원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반면 미국 오클라호마주 1심 법원은 2007년 도요타 차량 급발진 사고로 숨진 피해자와 유족 등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에게 3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도요타 세단 '캠리' 차량이 고속도로 출구에서 급발진하며 장벽에 충돌해 운전자가 중상을 입고 동승자가 사망한 사건으로, 미국 법원이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 대해 제조업체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도요타를 상대로 한 400여 건의 급발진 소송이 제기됐고, 도요타는 1200만 대 차량의 리콜과 소송 합의금 및 벌금 등으로 총 40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급발진에 대한 민사소송의 결론이 다른 것은 미국의 ‘제조물 책임법’이 입증 책임을 전환하고 있기 때문인데, 입증 책임 전환이란 소송법의 일반원칙을 벗어나 예외적으로 소송을 건 사람이 아닌 상대방이 이를 입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제조업자가 제조물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제조물 책임법도 결함을 추정하는 조항을 두어 입증 책임을 완화하고 있으나, 위 추정규정을 적용받아 '급발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해당 차량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던 중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손해가 제조업자의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됐다는 사실, 손해가 차량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제조사가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이를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문제로 현재 국회에서는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데, 개정안의 골자는 자동차 같은 고도의 기술력이 집약된 제조물에 의한 손해는 그 제조물에 결함이 없었다는 사실을 제조사가 입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민사소송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면서 제조사 측 편을 들고 있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민사소송의 원칙에 대한 예외로 입증 책임을 완화하거나 전환하는 특별법이 바로 제조물 책임법이고, 이는 헌법상 권리인 생명권의 보장을 위한 것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종오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