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학교폭력,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학교폭력,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수왕초등학교 교사 류기곤

  • 승인 2023-08-17 10:16
  • 이승규 기자이승규 기자
KakaoTalk_20230817_100656338
수왕초 류기곤 교사
"쌤, 이번에 반장 선거 나갔다가 아깝게 떨어졌습니다."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A 군에게 연락이 왔다. 매번 그렇듯 A 군 연락이 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통화하고 얼마 뒤에는 식사하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4년 전에 처음 만난 A 군은 학교폭력 가해 학생으로 여러 차례 지목돼 학교폭력 담당 교사인 나와 자주 만났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예전에는 내 앞에서 어두운 얼굴로 앉아있던 A 군의 모습이 익숙했었다. 하지만 요즘 식사하며 밝은 얼굴로 자신의 학교생활을 이야기하는 A 군을 보고 있으면, 학교폭력을 담당하는 교사로서 무엇이 A 군을 변화시켰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폭력 관련 뉴스와 매년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학교폭력은 여전히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수많은 피해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겪고 있다. 이렇듯 피해 학생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학교폭력 사안들에 있어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을 선도하기 위해 법에 근거해 단호한 조치가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교사 입장에서는 대화를 통한 갈등 조정이나 선도를 위한 생활지도 등 적절한 학교의 교육과 학부모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안들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경우마저도 학교폭력으로 접수돼 처리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상황을 바라보는 학교와 학부모의 시야가 좁아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이런 상황이 다소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학교의 시야는 학교 고유의 기능인 교육적 접근이 아니라 법령을 근거로 한 행정적 처리가 정해진 기한 안에 흠결 없이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그 바탕에는 행정 처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로 인해 학교가 무언가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더불어 학교폭력으로 접수된 사안에 대해서는 공정한 사안 처리를 위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하고, 사안에 대한 심의 전에는 피해와 가해를 단정을 지을 수 없어서 학교가 학생의 지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워지는 것도 시야가 좁아지는 또 하나의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학부모의 시야는 '변호'와 '입증'에 집중되는 경향이 많다. 먼저 피해 학생의 학부모는 가해로 지목된 학생에게 엄중한 처벌이 내려질 수 있도록 현재 겪는 자녀의 고통과 상대의 잘못을 입증하는 데 힘을 쏟고, 가해 학생의 학부모는 자녀가 학교폭력 사안으로 인해 불명예스러운 조치를 받거나 학교에서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히지 않도록 변호를 하는 것에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학교와 학부모의 모습은 꽤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대화를 통한 갈등 조정'과 '학생 교육'이며, 피해 학생의 온전한 회복과 가해 학생의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고민은 부재하기에 십상이다.

특히 내 경험으로 비춰보았을 때 학교폭력 사안 처리가 끝나고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학부모는 거의 없었다. 이는 학교폭력 사안 처리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거치며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예방법 제1조에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피해 학생의 보호,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해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법의 목적이 규정되어 있고 해당 조항에는 분명히 '분쟁조정'과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이 명시돼 있음에도 학교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그러한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문제의식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세종시교육청은 회복적 생활교육의 철학을 바탕으로 세종형 학생 생활교육 정책을 '관계 중심 생활교육'이라고 명명하고, 학교 공동체성 강화와 학생 관계 역량 함양을 목표로 교사·학생·학부모가 공감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문제의 실천적 해결을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학교는 교육기관으로서 피해 학생의 온전한 회복과 가해 학생의 의미 있는 선도를 위해 고민하고, 학부모는 보호자로서 자녀에게 심리적 안정을 찾아줌과 동시에 당면한 문제를 학교와 협력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