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우리는 왜 여행을 할까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우리는 왜 여행을 할까

이진영 변호사

  • 승인 2023-11-22 08:34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2023041201000914900036461
이진영 변호사
지난 여름의 한 달간을 유럽에서 보냈다. 유럽도 처음이었고, 한 달이라는 기간의 여행도 그랬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하던 일도 그만두어야 했고, 돈도 많이 들었다. 다녀온 지금은 그래도 가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올해 5월의 어느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였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비 내리던 야외 콘서트장에서 듣던 노래에 마음이 풀려버렸다. 그날도 아주 오랜만에 잡은 일종의 여행이었는데, 노래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너무 아름답다고 느꼈고, 그 행복감에 눈물이 났다가, '왜 지금 나는 이렇게 행복하지 못하지'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람마다 여행을 하는 이유는 다를 것이다. 쉬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변화를 얻기 위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을 위해서거나 공부를 위해서 떠나는 것을 보통 여행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목적은 있으되, 특별한 목적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할까.

나의 목적은 나 자신의 변화였다. 달라지고 싶어서.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침에 눈 뜨는 것이 좋을 만큼은 살고 싶었다. 당시에는 일상생활의 사소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부차적이거나 사치스럽다고 생각될 만큼 삶이 팍팍해져 있었다. 번아웃(Burnout) 상태였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사소한 것까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 탓에 점점 스스로를 궁지로 몰고 있었는데도 잘 고쳐 지지가 않았다. 비 오는 오월의 오후, 우비를 입고도 푹 젖어버린 채로 들었던 노래는 이랬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 말자…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멀리 안 가도 괜찮을 거야. 너와 함께라면 난 다 좋아 너의 맘이 편할 수 있는 곳. 그게 어디든지 얘기해줘'-선우정아, 도망가자(Run With Me)

여행을 통해 결국 내가 변했을까. 조금은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똑같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는 동안 온갖 사소한 것들에 휘둘리는 나를 보면서, '역시 나답다'는 생각을 해야 했으니.

여행의 일상은 단순하다. 어디론가 떠나고, 밥을 먹을 곳을 찾고, 잠을 잘 곳을 정하는 일 정도만이 남는다. 생각해보면, 원래 가려던 곳을 못 가게 되었다고 해서, 맛없는 음식으로 한끼를 때웠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예약한 숙소가 인터넷 광고와 다르다는 이유로 나는 계속 화를 내고 있었다.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라면 여행보다는 집에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일상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있고자 하는 것, 모든 예상 가능한 어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마음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모든 불안을 제거하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데도, 만일을 대비하고자 안 좋은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돌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헛웃음이 났다.

미래의 불확정 변수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은 마치 쓴약을 미리 먹고 나머지 달달한 것들만 남겨두고 싶은 마음과 같다. 그러나 인생이 그런 식으로 가지는 않는다. 달다가도 쓰고, 쓰디쓴 것이 되돌아보면 오히려 가장 빛나는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의 기분이 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을 최선의 규칙으로 삼고, 내 옆에 있는 동반자의 행복을 위안으로 삼고자 했다.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미지수이다. 물론 그것들 말고도, 여행이 줬던 아주 빛나는 순간들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이진영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2.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3.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4.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1. 필수의료 공백 대응 '포괄2차종합병원' 충청권 22곳 선정
  2. 폭력예방 및 권리보장 위한 협약 체결
  3. 임채성 세종시의장, 지역신문의 날 ‘의정대상’ 수상
  4. 건물 흔들림 대전가원학교, 결국 여름방학 조기 돌입
  5. 세종시, 전국 최고 안전도시 자리매김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