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27-태극기 펄럭이는 천안 병천 순대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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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27-태극기 펄럭이는 천안 병천 순대거리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 승인 2024-02-26 17:25
  • 신문게재 2024-02-27 8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며칠 후면 2월도 마지막이며 곧 3. 1만세 운동이 일어난 삼일절이다.

필자는 우국 충절의 고장 충남의 상징적인 곳인 충남 천안시 병천면 아우내 장터의 순대 거리를 찾았다. 순대 거리에는 3. 1만세 운동의 중심지답게 도로 양편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병천면에는 독립운동가 두 분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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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생가. (사진= 김영복 연구가)
한 분은 탑원리 338-1번지에 있는 유관순열사의 생가와 이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독립운동가이며 초대 경무부장을 지내고 대통령 후보였던 유석(維石) 조병옥(1894.5.21.~1960.2.15)박사의 생가가 용두리에 있다. 유석(維石)의 아버지는 조인원(趙仁元)씨 역시 조인원(趙仁元)[1865~1932]은 아우내 장터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여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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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옥 박사 생가. (사진= 김영복 연구가)
필자는 순대거리 취재를 온 김에 유관순 열사 생가와 조병옥 박사 생가를 둘러보고 순대거리로 돌아와 아우내 독립 만세 운동 기념 공원을 둘러 봤다. 공원 앞 도로 및 우측 일대는 1919년 4월 1일 아우내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한 역사의 현장으로 당시 병천 아우내 장터와 일제의 헌병 주재소가 있던 곳이라 한다.

사실 아우내 독립 만세 운동과 순대는 아무런 연관성은 없다. 단순히 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현장 일대에 순대를 파는 순댓국 집들이 들어서면서 유명해진 것이다.

병천 순대는 1960년대 초반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일대에 햄 공장이 생기면서 육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돼지 부산물을 처리하기 위하여 돼지의 소창 즉 작은 창자 안에 당면과 배추, 양배추, 선지, 들깨, 고추, 찹쌀 등을 넣은 순대를 파는 가게가 들어선 것이 시초이다.

1968년 까지만 해도 1918년에 개장한 끝자리 1, 6일인 병천 5일 장에서만 순대를 팔았는데, 1968년 이후부터 순대국밥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1998년 천안 병천면의 특산물로 지정되면서 순대와 순대 국밥집들이 늘어나기 시작해 지금은 약 20여 곳의 순대 국밥집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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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내 장터 순대. (사진= 김영복 연구가)
필자는 비교적 주차장이 넓고 인테리어가 깔끔한 아우내장터에 들러 모둠 순대와 순댓국을 시켰다.

펄펄 끓는 순댓국을 한 수저 떠서 맛을 보니 내 입맛에는 약간 싱거운 것 같아 새우젓을 넣어 간을 했다.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땡초를 넣어도 좋을 듯싶지만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필자라 땡초를 넣지 않았다.

그리고 깔끔한 본연의 맛을 좋아해 들깻가루 역시 넣지 않았다. 비교적 당면이 많이 들어간 순대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특히 깍두기와 김치가 순대국과 잘 어울린다. 막걸리 한 잔만 있다면 모듬 순대 맛을 현장에서 볼 수 있었는데, 역시 이번 맛있는 여행이 혼자라 포장할 수밖에 없다.

짐승은 마를수록 창자가 커서 많이 먹는다거나, 깡마른 짐승은 잡아도 고기가 별로 없고 창자만 많아서 별 실속이 없다는 뜻의 속담으로 '여윈 소 순대가 크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소 창자로도 순대를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돼지 순대와 관련된 고문헌을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 후기의 학자 유암(流巖) 홍만선(洪萬選1643~1715)이 엮은 농서(農書) 겸 가정생활서라 할 수 있는『산림경제(山林經濟)』에 '조증저두(糟蒸猪, 돼지밥통 찌는 법)'이 나오고,

1830년의『농정회요(農政會要)』에는 '도저장(猪腸)'이라 하여 돼지의 창자에 선지, 참기름, 콩나물, 후추 등을 섞은 것을 넣어 채운 뒤 삶아 썰어 먹는 요리가 나와 있으며, 이때 설탕[砂糖]으로 창자를 씻으면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야 『시의전서(是議全書)』음식방문(飮食方文)에 민어의 부레를 끓여서 만든 풀인 어교(魚膠)물에 담가 피를 빨고 깨끗이 씻어 숙주·미나리·쇠고기·두부와 함께 갖은 양념을 주물러서 넣어 삶아 만드는 어교(魚膠)순대와 함께 '도야지 순대'라는 말이 나오는데 "창자를 뒤졉어 정히 빠라 숙주, 미나리, 무우 데쳐 배차김치와 가치 다져 두부 석거 총 '파' '생강' '마날' 만히 디져(다져) 너허 깨소곰, 기름, 고초가로, 호초가로 각색 양념 만히 석거 피와 한데 쥐물너(주물러) 창자에 너코 부리 동혀 살마 쓰라"고 했다. 이 음식의 이름에 '도야지'를 붙인 것으로 보아서 돼지 창자를 사용하여 만든 순대임을 알 수 있다. 기름은 참기름이다. 돼지 창자 속에 무엇을 넣느냐는 그때마다 다르겠지만, 무척 많은 재료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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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댓국. (사진= 김영복 연구가)
당시 순대와 같은 말로 '살골집'과 '피꼴집'이란 말이 사용됐다.

『동아일보(東亞日報)』1931년 2월 5일 자「자랑거리 음식솜씨」에는 피골집 즉 순대 만드는 방법은 설명하고 있다.

'피골집은 양념을 잘해서 먹는데 두부를 꼭 짠 다음에 숙주, 파, 마늘, 부추, 호추가루, 계피가루 등을 피에다 섞어 소금보다는 새우젓을 두드려 넣습니다. 생강은 넣지 말고 두부가 풀어지도록 주무릅니다. 이것을 돼지 창자에 넣습니다. 이것을 시루에 찌거나 끓는 물에 삶은 후 식으면 썹니다. 시골에서 피골집을 만들 때 찹쌀을 넣어 차지게 하기도 합니다.'

돼지 피에다 양념을 섞고 돼지 창자 안에 양념한 반죽을 넣어 만들었으므로 이 순대는 돼지 순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피골집'이라고 한다.

1994년 조선료리협회에서 발간한 『조선료리전집-민족전통료리』에서는 돼지순대, 곰순대, 개순대 따위를 언급하고 있으며, 돼지순대는"돼지피에 다진 돼지고기, 배추시래기, 분탕(쌀), 녹두나물, 파, 마늘, 깨소금, 간장, 후추가루, 생강즙, 참기름을 넣고 순대소를 만든다.

분탕 대신 찹쌀과 흰쌀을 섞어 만들기도 한다. 돼지 밸에 순대소를 넣고 두 끝을 실로 묶어서 끓는 물에 넣어 삶다가 침질하여 공기를 뽑는다. 익으면 건져서 한 김 나간 다음 편으로 썰어 담고 초간장과 같이 낸다"고 돼지순대 조리법이 실려있다.

이용기는 1924년에 출판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 순대가 아니라 순댓국을 언급하였다. "순대국은 도야지 살문 물에 기름은 건저버리고 우거지를 너어서 끄리면 우거지가 부드럽고 맛이 죠흐나 그냥 국물에 내쟝을 써러너코 젓국처서 먹는 것은 상풍(常風·일반 조리법)이요 먹어도 오르내기가 쉬웁고 또 만이 먹으면 설서(설사)가 나나니라." 여기에서 말하는 순대는 돼지의 내장 자체이다. 하지만 이용기는 이 순댓국을 그다지 좋게 보지 않은 듯하다.

이에 비해 한성여고(현 경기여고)와 동경여자고등사범학교 가정과를 졸업한 후에 경기여고 교사, 이화여전 강사, 그리고 의친왕궁 부속 이왕직 촉탁을 지낸 손정규(孫貞圭·1896~1950)는 그의 책 『조선요리(朝鮮料理)』(1940년)에서 순대를 언급하였다. 만드는 과정의 그림과 함께 음식 이름도 한자로 돈장탕(豚脹湯), 한글로 '순대국'이라고 적었다. 재료로는 창자(豚腸), 돼지고기, 선지(豚血), 배추김치, 숙주, 그리고 찹쌀가루나 녹말가루, 장과 기타 갖은 양념이라고 했다. "창자 안팎을 소금에 비벼 잘 씻어 둔다.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놓고 숙주·배추김치 등 만두 소와 같이 하여서 돼지고기와 선지와 찹쌀가루나 녹말가루는 엉기게 하기 위하여 넣고, 갖은 양념하여 묻쳐서 창자에 넣고 양 끝을 실로 매서 국에 잘 삶는다. 건져서 식혀 2.3센티로 배어 국에 넣기도 하고 초장 찍어 먹기도 한다. 술안주 등에 호물(好物)로 여기는 것이다." 한글번역본 『우리음식 』1948년 판) 비록 음식명은 '순대국'이라고 했지만, 그 실체는 돼지순대이다.

이처럼 순대가 북한음식으로 알려진 데에는 고려시대 개성의 소문난 돼지고기와 순대 '절창'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려의 수도인 개성은 한반도에서 육고기 문화가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다. 개성에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나라에서 돼지를 사육하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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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순대. (사진= 김영복 연구가)
조용헌의'동양학을 읽는 월요일'이란 책에 실린 간송(澗松·전형필)가(家) 며느리 김은영 씨의 증언에 따르면, 쌀겨나 밀겨만 먹고 자란 돼지의 창자로 만든 '절창(絶脹)'이란 순대가 있었다고 한다. 겨만 먹은 돼지는 지방이 적고 부드러워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았다는 내용도 함께 전하고 있다.

하지만 순대는 남쪽의 끝 제주에서도 원류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순애'라는 이름이다. 만드는 방법은 몽고의 순대와 유사하다. 채소는 거의 없이 돼지 피와 곡물을 섞어 만든 부드러운 식감이다. 제주는 과거 고려시대 원나라의 목축지로 쓰였다. 그래서 육지의 제조방법이 아닌 몽골의 순대와 유사한 순대의 맛이 전해진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순대는 북쪽의 함경도부터 남쪽의 제주도까지 만들어진 지역마다 그 지역의 풍토와 생산되는 재료가 첨가되며 고유한 맛과 특색이 생겨났다.

'아바이'는 함경도 말로 '아버지'란 뜻인데 아바이순대는 돼지의 대창(큰창자)을 이용해 만든다.

돼지 한 마리를 잡았을 때 소창(작은창자)은 한없이 나오지만, 대창은 기껏 해야 50cm~1m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대창을 이용해 만들었기에 귀하고 좋은 것이라는 뜻의 '아바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함경도 출신들을 '아바이'로 부르고 있어서 그 고장 향토 순대음식을 호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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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댓국. (사진= 김영복 연구가)
돼지 순대는 해방 후까지도 비싼 음식이었다. 『동아일보』 1964.01.29. '오징어 순대 살림의 아이디어'라는 제목에서 이것을 알 수 있다.

"흔히들 순대는 돼지나 소의 내장(창자)으로 하는데 물론 맛도 좋지만 이것은 값이 비싸고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만들기도 쉽고 값이 싸며 맛도 좋은 '오징어순대'가 있답니다."

대중화된 돼지 순대는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등 시장의 좌판에서 팔리기도 하고, 신림동 순대 타운이라는 독자적인 빌딩에 여러 순댓집들이 모여 영업을 하기도 하였다. 신림동 순대 타운의 원조집은 1997년 당시 27년의 역사가 있었으니-『경향신문』 1997.01.16. '세월만큼 우러나는 깊은 맛'-, 1970년 정도에 개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신림동 순대 타운은 병천의 순대 거리와 함께 여러 사람에게 인기 있는 음식점이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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