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엄마의 누룽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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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 엄마의 누룽지밥

  • 승인 2024-05-08 10:2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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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때였나? 처음으로 밥을 지었다. 모내기철이었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사람이 일일이 모를 심었기 때문에 농촌에선 모내기철이 제일 바쁜 시기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큰 맘 먹고 쌀을 씻어서 가마솥에 안쳐 불을 땠다. 얼추 밥이 된 것 같아 솥뚜껑을 열자 뜨거운 김이 올라오면서 구수한 밥 냄새가 퍼졌다. 처음 한 밥이지만 성공작이었다. 뿌듯했다. 주걱으로 밥을 뒤적뒤적한 다음 식구들 순서대로 식기에 밥을 퍼 담았다. 어둑해질 무렵 엄마가 왔다. 난 엄마한테 내가 밥을 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는 잘했다면서 밥상을 보더니 갑자기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네가 밥할 땐 네 밥을 맨 나중에 퍼야지."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평소 엄마가 하던 대로 엄마밥을 맨 나중에 푼 것이다. 고슬고슬한 밥이 아닌 솥 바닥을 닥닥 긁어 푼 누룽지밥.

엄마의 인생은 가장으로서의 삶이었다. 6.25 때 참전해 부상을 입어 장애인이 된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이끌었다. 강인한 아내,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 6남매를 낳아 먹이고 기르고 가르치고. 새벽에 일어나 밤 늦게까지 노동의 연속이었다. 밭일은 또 오죽 많은가. 엄마가 늘 하던 말이 있다. 농사는 자식 키우는 것과 똑같다고. 여름날 뙤약볕 아래서 머리에 수건만 두른 채 하루종일 밭을 매는 엄마.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커다란 양은 주전자에 차가운 우물물을 받아 설탕을 몇 숟갈 넣어 들에 갖고 가는 게 일이었다. 그러면 엄마는 시원한 설탕물을 꿀꺽꿀꺽 달게 마셨다. 곤궁한 집에서 엄마의 에너지원은 오로지 설탕물뿐이었다. 허리가 휘도록 억척스럽게 가난을 헤쳐나가는 그런 엄마에게서 지친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아파도 누워있는 걸 본 적이 없다. 밥만 잘 먹으면 낫는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모성이란 뭘까. 본능일까, 환경의 소산일까. 전통사회에서 '모성'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캐치프레이즈처럼 불려왔다. 오로지 자식을 위해 어떤 고통도 감내하고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존재 말이다. 임신, 출산, 수유라는 생물학적 기능과 양육의 확고부동한 근거. 이 '모성 신화'라는 이데올로기가 인류사에서 여성을 암묵적으로 억압했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스러운 소명'은 불가피했다. 허나 이 낡은 이념의 요구가 근대화되면서 여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엄마의 누룽지밥'은 내 의식의 바탕에 각인돼 모성의 역할에 저항하고 거부했다.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이런 나에게 엄마는 "자식을 안 낳으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했다. 엄마가 그랬다. "애기 키울 때가 제일 행복했다."

엄마는 8년여 치매를 앓았다. 아득한 기억의 세계를 떠도는 엄마에게 지금 이 시각, 현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잠재된 무의식이 솟아올라와 때론 웃기기도, 때론 안쓰럽기도 했다. 언젠가는 죽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말을 되뇌었다. 엄마 옛날에 아버지랑 많이 싸우지 않았냐고 하니까 "그게 뭐 싸우는 거냐. 얘기한 거지"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종국엔 엄마는 어린 아잇적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7살 때 엄마를 하늘로 보냈다. 예전에 가끔 그때를 남 얘기하듯 담담히 들려주곤 해서 당시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 가족은 엄마잃은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한 어린 아이를 마주했다. 엄마는 분리불안이 심해 외출하면 자신을 버리고 갈까봐 자식들 손을 꼭 잡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언니에 의하면 하루는 엄마가 갑자기 "엄마아, 엄마아아!"를 큰소리로 외쳐서 놀랐다고. 아, 엄마는 오로지 엄마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일곱 살 아이 이순례는 찬란한 이 봄에 엄마를 찾아 먼 길을 떠났다. 안녕 엄마.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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