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코로 먹는 계절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코로 먹는 계절

  • 승인 2024-05-29 09:57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240529_094658634
노란 장미. 대개의 장미꽃은 향이 없다. 향이 강한 품종이 따로 있다.
올 봄처럼 이렇게 맑은 날이 있을까요? 한없이 투명한 공기가 먼 산의 숲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연초에 기상청에서 봄에 초강력 미세먼지가 올 것이라고 예보했는데 말이죠. 이런 예보는 언제라도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휴일에 보문산에 갔다가 대사동 대신초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장미가 만발한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노란 장미 넝쿨이 담장을 우아하게 장식하고 있더군요. 코를 대자 그윽한 향이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마릴린 먼로가 잠옷 대신 뿌리고 잤다는 샤넬 넘버 5가 이보다 고혹적일까요. 이 꽃 저 꽃 손으로 가져다 콧구멍을 넓히고 벌름거렸습니다. 마침 주인 어르신이 나오면서 저를 보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이쁘죠? 8년 키운 거요. 맘껏 사진도 찍고 놀다 가쇼." 어디 장미뿐입니까. 온통 꽃들의 세상입니다.

'먹다'라는 동사는 입의 역할입니다. 혀의 감각으로 음식의 오묘한 맛을 느낍니다. 얼마 전에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으로 저녁 한 끼를 먹었습니다. 조금만 먹고 밥을 먹으려 했으나 '달콤한 악마'를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통에 든 아이스크림과 찰떡 아이스, 마카롱이 환상적이었습니다. 입안 가득 시원하고 살살 녹는 맛에 계속 수저를 놀린 거지요. 결국 다음날 속이 거북했습니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으로 배를 채웠으니 탈이 날 수밖에요. 하지만 꽃향기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폐에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향기를 '먹는다'고 표현했습니다. 입도 모자라서 코로도 먹는다는 표현을 쓰다니, 우스운가요? 팀 버튼의 몽환적인 영화에서나 볼 법하지 않나요? 라일락꽃, 아카시아꽃, 쥐똥나무꽃, 때죽나무꽃, 머루꽃. 하여간 먹을 게 천지입니다.



아카시아꽃 향은 싱그럽습니다. 벌들도 아주 좋아하지요. 지지난 주말 보문산 능선을 걷다가 웅웅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키가 훌쩍 큰 아카시아나무에 벌들이 꿀을 따느라 엉기덩기 붙어 있더군요. 아카시아꽃은 입으로 먹기도 합니다. 씹으면 연한 풀내음과 함께 달큰함이 일품이죠.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친구들과 아까시아꽃을 손으로 훑어 입안 가득 넣고 씹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떡도 해먹었죠. 쌀가루에 이 꽃을 넣고 버무려 찌면 꽃버무리가 됩니다. 궁하던 시절이어서 자연에서 나는 것들로 허기를 달랬던 거죠. 지금으로선 웰빙 떡인 셈이죠.

여러분, 쥐똥나무 아시나요? 가로수나 울타리로 많이 심죠. 한밭도서관 가는 쪽 충남대병원 울타리로도 이 나무가 심어져 있더군요. 쥐똥나무. 이름이 재밌습니다. 가을에 맺히는 까만 열매가 꼭 쥐똥처럼 생겼거든요. 꽃이 자그마해서 눈에 잘 띄지 않아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향이 치명적입니다. 어디서 그런 향이 날까 싶습니다. 제가 꽃에 코를 박고 있으니까 지나던 아주머니도 코를 대보고 한마디 했습니다. "오메, 향이 좋네."



때죽나무는 산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보문산 과례정에서 남서쪽으로 난 숲길을 걷다보면 무리지어 있습니다. 지난해 대둔산에 갔을 때 하얀 꽃이 만발한 때죽나무를 만났는데 어찌나 반갑던지요. 때죽나무 꽃향기는 별스럽습니다. 오줌 지린내 같거든요. 그만큼 향이 강합니다. 첫 향은 당혹스럽지만 끝 향은 달달합니다. 관능적인 향에 취해 발걸음을 떼기 힘듭니다. 신록이 나부끼고 꽃향기가 진동하는 계절입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다양하게 도움을 줍니다. 허나 인간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숲을 마구잡이로 파괴합니다. 얼마나 많은 숲이 인간의 편리를 위해 희생하는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자연은 인간의 정복 대상이 아닙니다. 신영복 선생은 '더불어 숲'이라고 했습니다. 6월이 오면 밤꽃 향기로 제 코가 또 호사를 누리겠지요. 이 맛있는 향기를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요.
1401938898
아카시아꽃. 게티이미지 제공
KakaoTalk_20240529_094730089
쥐똥나무꽃
KakaoTalk_20240529_095443226
때죽나무꽃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방학 땐 교사 없이 오롯이…' 파업 나선 대전 유치원 방과후과정 전담사 처우 수면 위로
  2. 제1회 국제파크골프연합회장배 스크린파크골프대회 성료
  3. 국제라이온스협회 356-B지구 강도묵 전 총재 사랑의 밥차 급식 봉사
  4. 정부 유류세 인하조치 이달 말 종료 "기름 가득 채우세요"
  5. 대전사랑메세나·동안미소한의원, 연말연시 자선 영화제 성황리 개최
  1. 육상 꿈나무들 힘찬 도약 응원
  2. [독자칼럼]대전시 외국인정책에 대한 다섯 가지 제언
  3. '경기도 광역교통망 개선-철도망 중심’ 국회 토론회
  4. [2025 충남 안전골든벨 왕중왕전]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안전지식 체득하는 시간되길"
  5. 2025년 한국수어통역방송 품질 향상 종합 세미나

헤드라인 뉴스


국민의힘 대전-충남 통합 엇박자…동력저하 우려

국민의힘 대전-충남 통합 엇박자…동력저하 우려

대전 충남 통합이 내년 지방선거 승패를 결정짓는 여야의 최대 승부처 중 하나로 떠오른 가운데 국민의힘 내부에서 엇박자 행보가 우려되고 있다. 애초 통합론을 처음 들고나온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등은 이슈 선점 효과를 이어가기 위해 초당적 협력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반면, 보수 야당 지도부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밋밋한 스탠스로 일관하면서 정부 여당 때리기에만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22일 대전 충남 통합과 관련 "통일교 게이트를 덮으려는 이슈 전환용은 아닌지, 대통령이 관권선거에 시동을 거는 것은 아..

대전의 스타 류현진.오상욱, 꿈씨 패밀리를 만나다
대전의 스타 류현진.오상욱, 꿈씨 패밀리를 만나다

대전의 대표 스포츠 스타인 한화이글스 류현진 선수·펜싱 국가대표 오상욱 선수와 꿈씨패밀리의 콜라보 굿즈가 23일 출시된다. 22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는 7월 류현진 선수와 오상욱 선수의 소속사, 대전관광공사, 대전디자인진흥원과 함께 '류현진·오상욱×꿈씨패밀리 굿즈 공동브랜딩 상호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에 따라 대전디자인진흥원이 선수별 품목 디자인을 완성했고, 대전관광공사가 제작과 유통, 판매를 맡았다. "우주올림픽 준비 대작전! 꿈씨패밀리 지구 특훈 모험!"이라는 스토리텔링으로, 각 캐릭터는 선수 특유의 귀여움과 훈훈..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확정, 2026년 이렇게 조성한다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확정, 2026년 이렇게 조성한다

에이앤유디자인그룹건축사사무소의 '모두가 만드는 미래'가 국가상징구역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최종 당선작 선정의 영예를 안았다. 강주엽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은 22일 오전 10시 30분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와 관련한 진행 상황과 결과를 공표했다. 이번 공모는 한국토지주택공사(사장 직무대행 이상욱. 이하 LH)와 공동으로 추진했다. 당선작은 행복도시의 자연 경관을 우리 고유의 풍경인 '산수(山水)'로 해석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적 풍경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요 특징은 △국가상징구역을 관통하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