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멋있다! 당신들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멋있다! 당신들

  • 승인 2024-07-03 10:25
  • 신문게재 2024-07-04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20230831503850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연합뉴스 제공
『몰락의 시간』. 이 책은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됐던 정치인 안희정의 몰락을 다뤘다. 안희정이 누군가. 대중의 열광을 한 몸에 받는 톱스타 아니었나. 똑똑하고 젠틀하고 정의로운 정치인. 적어도 대중의 눈에 비친 안희정은 이런 모습이었다. 책의 지은이는 문상철. 문상철은 안희정을 오랫동안 수행해온, 말하자면 안희정의 가장 가까운 참모이자 측근이었다. 이 책이 내게 흥미로운 점은 안희정의 기승전결보다 문상철의 선택이다. 측근은 권력자와 한 몸이 되는 존재다. 지향하는 길을 같이 걷는, 권력자의 신임을 듬뿍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오'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문상철은 안희정 충남지사와 함께 공부하고, 함께 글을 쓰면서 세상을 바꿔나가는 정치를 하고 싶었고, 그 꿈에 서서히 다가가는 과정에 있다고 믿었다.

문상철의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선배, 저 지사님께 성폭행 당했어요. 도와주세요." 안희정 충남지사의 수행비서 김지은의 절규였다. 수행비서 역할을 너무나도 잘 아는 문상철은 피해 사실을 듣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라면 거절할 수 있었겠냐?' 위력에 의한 폭력을 경험한 자신과 김지은의 피해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문상철은 피해자보다 가해자 안희정과 더 가까운 사이였다. 하지만 자신의 유불리보다 무엇이 옳은 결정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기꺼이 피해자 곁에 서기로 결정했다. 뼈아픈 반성도 했다. 가장 가까운 참모로서 파렴치한 범죄가 일어나는지조차 모르고, 범죄가 일어난 자리에서 가해자가 거대한 성을 쌓는데 일조했다고.



꽃길을 마다하고 불의에 맞선 문상철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먹고사는 데 전력하는 사람들에게 정의는 고리타분한 개념으로 치부되는 게 세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고 손가락질하고 비아냥거렸다. 가해자 쪽 사람들은 반성과 성찰은커녕 문상철을 대놓고 비난했다. 공평과 공정은 권력 앞에선 무의미했다. 더 이상 정치계에 발붙일 곳이 없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 것보다 무엇을 하고 싶었던 문상철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치를 꿈꿨지만 거기까지였다. 문상철은 왜 안락한 길을 버리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했을까?

한때 한국사회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둘러싼 열풍이 거셌다. 불의에 진절머리 난 국민들에게 샌델은 선지자와 같았다. 2010년 한국을 방문한 샌델은 이러한 현상을 "한국사회가 정의를 갈구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이름하여 '대통령 격노'로 원칙대로 흘러가던 수사가 엉망진창으로 꼬이면서 발단이 됐다. 군인 하나 죽은 걸 갖고 가해자를 8명씩이나 만들어? 사건 기록 당장 회수해! 불같이 화를 내는 대통령 앞에 국방장관과 해병대 사령관은 사색이 됐을 터. 푸들처럼 납작 엎드린 '윗것'들과 달리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명령을 거부했다.



'까라면 까'라는 게 군대문화 아닌가. 군대는 상명하복의 조직이다. 한국의 조직문화 또한 그렇고. 박정훈은 왜 그랬을까. 이건 아닌데 생각면서도 윗사람의 지시니까 어쩔 수 없이 따를 법 한데 말이다. 군 검찰은 잽싸게 박정훈을 집단항명수괴죄로 기소했다. 윤석열의 검찰 아닌가. 권력에 대한 절대 복종. 전두환의 심복 장세동의 뼛속 깊은 주구노릇, 상명하복을 철저히 지킨 고문기술자 이근안, 나치의 명령은 국가 공식 행위이므로 복종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였다는 아이히만. 그리고 현재 한국사회의 권력자들. 이들에게 복종은 '선(善)'인 것이다.

역사는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한다. 불의와 타협해 안락하게 사는 무리가 있다면 목숨 바쳐 끝까지 원칙과 정의를 위해 싸운 이들도 있다. 비리에 분노하고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조광조와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며 절대권위에 도전한 허균. 조선말 동학농민운동혁명군. 정의가 살아 숨쉬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싶어했던 노무현 대통령. 이들은 부조리한 세상을 타파하려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진창같은 세상이 그나마 유지되고 이어가는 것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이들 덕분 아닐까. 이렇듯 역사는 정의로운 사람들에 의해 진보한다. 멋있다! 당신들. 생각해 본다. 내가 문상철, 박정훈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최대 30만 원 환급' 상생페이백, 아직 신청 안 하셨어요?
  2. 화성시, 거점도시 도약 ‘2040년 도시기본계획’ 최종 승인
  3. 갑천에서 18홀 파크골프장 무단조성 물의… 대전시, 체육단체장 경찰 고발
  4. 애터미 '사랑의 김장 나눔'… "3300kg에 정성 듬뿍 담았어요"
  5. 대전 불꽃쇼 기간 도로 통제 안내
  1. "르네상스 완성도 높인다"… 대전 동구, '주요업무계획 보고회'
  2. 코레일, 겨울철 한파.폭설 대비 안전대책 본격 가동
  3. 대출에 짓눌린 대전 자영업계…폐업률 7대 광역시 중 두번째
  4. 대전권 14개 대학 '늘봄학교' 강사 육성 지원한다
  5. '대덕특구 사이언스센터' 딥테크 혁신성장 허브로 자리매김

헤드라인 뉴스


국내기업 10곳 중 7곳 이상 "처벌·제재로는 중대재해 못줄여"

국내기업 10곳 중 7곳 이상 "처벌·제재로는 중대재해 못줄여"

국내 기업 10곳 중 7곳 이상이 정부의 노동 안전대책에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처벌과 제재 중심의 정책으로는 중대재해 예방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내 기업 26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새 정부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대한 기업 인식도 조사' 결과를 25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발표된 노동안전 종합대책과 관련해 기업들의 인식과 애로를 파악하기 위해 진행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 중 73%(222곳)가 정부 대책이 '중대재해 예방에..

충청권 국회의원 전원, ‘2027 충청U대회 성공법’ 공동 발의
충청권 국회의원 전원, ‘2027 충청U대회 성공법’ 공동 발의

충청권 여야 국회의원 27명 전원이 ‘2027 충청 유니버시아드대회’(U대회) 성공 개최를 위한 국제경기대회 지원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수현(충남 공주·부여·청양)·국민의힘 이종배(충북 충주) 의원은 25일 국제경기대회 조직위원회가 대회 운영에 필요한 기부금품을 직접 접수·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제경기대회 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으로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현행 제도에서는 조직위원회가 기부금품을 접수할 때 절차가 복잡해 국민의 자발적인 기부 참여가 제한되고, 국제경기대회 재정 운영에 있어 유연성이 낮다..

국내 최대 돼지 사육지 충남서 ASF 첫 발생… 도, 긴급 차단방역
국내 최대 돼지 사육지 충남서 ASF 첫 발생… 도, 긴급 차단방역

국내 최대 돼지 사육지역인 충남에서 치사율 100%(급성형)에 달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처음으로 발생했다. 충남도는 ASF 확산을 막기 위해 도내 양돈농가 등에 상황을 전파하고, 이동 제한 등 긴급 차단 방역에 돌입했다. 25일 도에 따르면, 총 463두의 돼지를 사육 중인 당진시 송산 돼지농가에서는 지난 17∼18일 2마리가 폐사하고, 23∼24일 4마리가 폐사했다. 농장주는 수의사의 권고를 받아 폐사축에 대한 검사를 도에 의뢰했다. 도 동물위생시험소는 폐사축에 대한 ASF검사를 진행, 이날 오전8시 양성 판정을 내렸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

  • 대전시청에 뜬 무인파괴방수차와 험지펌프차 대전시청에 뜬 무인파괴방수차와 험지펌프차

  • 주렁주렁 ‘감 따기’ 주렁주렁 ‘감 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