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건국절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건국절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송기한 대전대 교수

  • 승인 2024-08-19 16:58
  • 신문게재 2024-08-20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송기한 대전대 교수
송기한 대전대 교수
지금 우리 사회는 불필요한 논란을 벌이고 있다.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일이고, 대한민국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이다. 건국이란 나라를 처음 만든다는 것, 창조의 뜻이 담겨있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1948년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땅에서 솟아오른 것인가. 또한 한글은 이때 만들어졌는가, 백의민족은 또 어디서 왔단 말인가.

주시경(周時經·1876-1914)은 한 나라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천연으로 구획된 땅과 거기에 거주하는 인종, 언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세 가지 요인 있었던 까닭에 우리나라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한글은 창제 이후 민족의 얼이 반영되면서 변신을 거듭했고, 이 땅 역시 이를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피가 스미고 엉긴 곳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수많은 성씨의 혼합과 탄생을 거쳐 오늘의 우리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이렇듯 적층을 통해 가이없는 계승과 발전 끝에 도도한 대하(大河)를 이루며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건국이란 우리 민족이 처음 열리던 단군조선의 시대뿐이다. 이후 우리는 반도에 터를 잡고 하나의 민족 단위로, 동일한 언어로 살아왔다. 선조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국호를 고려라 했고, 이성계는 단군조선을 이어간다는 의미에서 조선이라 했다. 고려나 조선시대, 심지어 삼국시대에도 단절에 바탕을 둔 건국절이란 없었거니와 이를 기념하는 행사조차 없었다.

적층의 관점뿐 아니라 미시적 측면에서도 1948년의 건국설은 언어도단이다.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독립기념일은 토마스 제퍼슨이 작성한 독립선언문이 대륙 회의에서 승인된 날인 1776년 7월 4일로 잡고 있다. 미국 역시 국가의 근본 요소인 땅, 민족, 언어가 있었지만 영국의 지배아래 있었다. 주권이 없는 식민 상태를 벗어나고자 독립선언을 했거니와 그 회복의 과정을 독립전쟁이라 불렀다. 그들은 이를 건국 전쟁이라 하지 않았으며, 1783년 전쟁의 승리로 미합중국 정부가 공식 들어선 뒤에도 건국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개화기 전후부터 1945년까지는 주권을 상실한 상태, 곧 식민 상태였지 우리나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처럼 독립운동을 한 것이다. 잠재되어있던 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일 최남선의 기미독립선언서 낭독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독립선언이 먼저 있은 다음 한 달 뒤인 4월 11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미국은 이 과정이 동시에 이뤄졌다.



주권이 없던 시절 독립운동의 상징은 태극기와 애국가이다. 상징(symbol)이란 오직 소속 집단에게만 유효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태극기와 애국가는 우리 민족이라는 귀속성을 가질 때만 구속력이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태극기를 세우거나, 애국가를 부를 수 없었다. 태극기와 애국가는 안중근과 유관순, 윤봉길의 품에, 초가집의 다락 속에 숨어 있었다. 그것이 수면 위로 당당히 올라온 때가 3·1운동이다.

이때를 계기로 태극기는 삼천리 곳곳, 만주 벌판으로까지 뻗어 나갔다. 봉오동의, 청산리의 독립군들, 애국지사들은 태극기와 더불어 일군(日軍)과 밤을 새우는 독립 전쟁을 벌였다. 치열한 전투 끝에 밝아오는 새벽녘, 봉오동의 언덕 위에 여전히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았을 때, 그들은 독립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았음을, 꿈 서린 자유의 땅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 태극기는 미기병대의 파괴된 성채의 한 켠에서 휘날리던, 승리의 징표였던 성조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반면 독립군 잡는 조선인 간도 특설대나, 천황(天皇)의 신민(臣民)으로서 살아가고자 했던 조선인들에게는 태극기란 보는 즉시 부러뜨려야 할 적기(敵旗)에 불과했다.

광복절은 독립운동의 결과 빼앗긴 주권이 회복된 날이고, 48년 8월 15일은 그 주권이 공식 행사되는 날일 뿐이다. 이때를 건국절로 하자는 것에는 분명 저의가 있다. 반만년의 역사와 독립투쟁을 부정하고, 태극기를 적기로 생각한 것에 대한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反日種族主義)'만 말하지 말고, 반한(反韓) 종족주의에 대해서도 말할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태극기를 적기로 간주한 신종족(New race)임이 분명하며, 그럴경우 8·15 건국절은 그들 속에서만 정당성을 갖게 될 것이다. /송기한 대전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