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대전 식장산 효행 설화와 중국 제남의 효당산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대전 식장산 효행 설화와 중국 제남의 효당산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 승인 2024-09-22 23:04
  • 신문게재 2024-09-23 1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2024061601001034000042491
김덕균 단장
대전 동구와 충북 옥천에 걸쳐있는 식장산(食藏山)에는 명칭과 관련해서 다양한 설화가 내려온다. 신라의 침입에 대비해서 백제가 식량을 저장한 곳이라는 이야기, 홍길동만큼이나 기행을 많이 남긴 전우치가 3년 동안 먹고 남을 먹거리와 보물을 묻어두었다는 이야기, 가난한 효자 부부의 효행에 감동한 하늘이 부부에게 내린 먹거리가 쏟아지는 밥그릇이 묻혀있어 식기산이라 했다는 이야기 등등. 이야기의 공통점은 모두가 먹거리와 관계있다.

여기서 효자 부부의 밥그릇 이야기는 아무리 전설이라도 일상적 효행이 아니기 때문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늙은 어머니 봉양에 빈틈이 없었던 부부에게 어린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어머니의 밥그릇을 축내는 것을 본 남편이 "애는 또 낳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한 분뿐 아니오."라고 말하고는 어머니 봉양을 위해 아이를 땅에 묻기로 결심한 사연이다. 그리고 땅을 파는데 거기서 그릇이 나왔고 그 그릇이 바로 먹거리가 쏟아지는 밥그릇이었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이야기가 삼국유사 효선편에 '손순매아(孫順埋兒)'란 이야기로 나온다. 내용은 대전 식장산 부부 이야기와 거의 같다. 다만 땅에서 나온 게 돌종(石鐘)이란 것만 다르다. 종은 경종의 의미로 뭔가 사연을 알리는 기능을 한다. 막상 종소리를 들은 임금님이 효자 부부를 칭송하고 포상했다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내용상 사실성보다는 효를 강조하기 위한 레토릭일 가능성이 높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지만 효를 하면 복을 받는다는 교훈적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이런 효행 이야기에는 원조가 따로 있다. 중국의 역대 효자들을 수록한 '24효'가 그것이다. 원나라 때 중국 고대사회의 대표적인 효자 24명을 뽑아서 만든 효행록으로 고려와 조선 사회에 깊은 영향을 준 책이다. 고려 때 편찬한 삼국유사와 효행록, 조선의 삼강행실도와 오륜행실도 등 각종 효행 서적에 이들 내용들이 그대로 실렸다. 거기에 '손순매아'와 대전 효자 부부 이야기의 원조 격인 곽거(郭巨)의 '위모매아(爲母埋兒)'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곳은 산동성 제남시 장청현 효리(孝里) 효당산(孝堂山)에 있다. 산동사범대학 장청캠퍼스에서 가깝다 해서 찾아 나섰지만, 30km가 넘었고 차로 1시간이상 걸렸다. 역시 중국인들의 시공관념은 우리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아무튼 찾아간 효당산은 해발 57m밖에 되지 않는 야트막한 산이었고, 산 정상 부위에 곽거의 사당과 그를 기리는 비석들이 즐비했다. 내용 가운데는 신라 사신들의 기록도 있어 이곳이 당나라 장안으로 가는 길목이었음을 알게 한다. 아마도 주변에 흐르는 황하를 이용하다가 곽거의 사당이 있는 이곳 효당산에 머물면서 자신의 이름을 남긴 것 같다. 한창 공사 중인 현장은 앞으로 이곳을 한국효문화진흥원처럼 중국 효문화진흥의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즐비한 비문들은 역대 왕조마다 효자 곽거를 칭송하는 내용들이다. 이런 효자 곽거의 사당에 들른 신라인들이 귀국 후 한국사회에 그 이야기를 전달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리고 그 흔적이 대전과 경주에 구체적으로 남은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적인 효행을 갖고 영향 관계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부모 위해 자신의 아이를 희생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상식에서도 많이 벗어나 있다. 이런 특별한 효행 사례는 어딘가의 영향 관계에서나 설명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시기상 동한 시대의 산동 곽거가 먼저이고 전승 설화로 내려오는 대전과 문헌에 남은 신라 경주가 그 다음 순서일 것이다. 경주보다 대전을 먼저 든 것은 전래루트를 감안한 판단이다. 중국 산동성 제남에서 시작된 특별한 효행설화가 대전에 흔적을 남기고 경주에 영향을 주며 기록으로 남았을 가능성이다. 이를 감안한 한중효문화 교류의 구체적인 흐름과 내용도 살펴볼 필요성을 절감한다.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조국혁신당 세종시당, '내홍' 뚫고 정상화 시동
  2. 대전서 개최된 전 세계 미용인의 축제
  3. 세종시, 2025년 '규제혁신+투자유치' 우수 지자체 영예
  4. 대전인자위, 지역 인력수급 변화·일자리 정책 방향 모색
  5. 제2회 국민통합포럼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조건과 국정리더십의 과제
  1. 보이스피싱에 속아 빼앗긴 3900만원 대전경찰이 되찾아줘
  2. '스포츠세종 포럼' 2025년 피날레...관광·MICE 미래 찾기
  3. 국립세종수목원, 지속 가능 경영...피나클 어워드 은상
  4. 가짜뉴스의 폐해와 대책 심포지엄
  5. 조상호 국정기획위원, 내란 척결 촉구....세 가지 대안 제시

헤드라인 뉴스


트램 1900억 세종의사당 956억…충청 성장판 놨다

트램 1900억 세종의사당 956억…충청 성장판 놨다

이재명 정부 첫 예산안에 대전 트램 1900억원, 국회 세종의사당 956억원, 대통령 세종집무실 240억원 등 충청 현안 추진을 위한 국비가 각각 확보됐다. 또 충청권 광역철도 1단계 사업 547억원, 청주공항 민간활주로 5억원, 세종지방법원 10억원도 반영됐다. 충청권 각 시도와 여야 지역 의원들에 따르면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728조원 규모의 2026년 정부예산안에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충청권 현안 사업이 포함됐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예산 국회 속 충청권이 이재명 정부 집권 2년 차 대한민국 호(號) 신성장 엔진 도약..

[르포] 일본의 가락시장 도요스, 유통 시스템은 정반대?
[르포] 일본의 가락시장 도요스, 유통 시스템은 정반대?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동해를 사이에 둔 지리적 특징으로 음식과 문화 등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양국 모두 기후 위기로 인해 농산물의 가격 등락과 함께 안정적 먹거리 공급에 대한 요구를 받고 있다. 이에 유통시스템 개편을 통한 국가적 공동 전략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중도일보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주관한 4박 5일간의 일본 현장 취재를 통해 현지 농산물 유통 전략을 살펴보고, 한국 전통주의 새 활로를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도요스 중앙 도매시장의 정가 거래..

[기획] `인삼의 고장` 금산의 지방소멸 위기 해법 `아토피 자연치유마을`
[기획] '인삼의 고장' 금산의 지방소멸 위기 해법 '아토피 자연치유마을'

지방소멸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충남 금산군이 '아토피자연치유마을'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전국 인삼의 80%가 모이며 인구 12만 명이 넘던 금산군은 산업구조 변화와 고령화, 저출산의 가속화로 현재는 인구 5만 명 선이 무너진 상황이다. 금산군은 지방소멸 위기를 '치유와 힐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아토피자연치유마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아토피·천식안심학교' 상곡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금산에 정착하고 있는'아토피자연치유마을' 통해 지방소멸의 해법의 가능성을 진단해 본..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 양자 산업화 전초기지 ‘KAIST 개방형 양자팹’ 첫 삽 양자 산업화 전초기지 ‘KAIST 개방형 양자팹’ 첫 삽

  • 강추위에 맞선 출근길 강추위에 맞선 출근길

  • 고사리 손으로 ‘쏙’…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 고사리 손으로 ‘쏙’…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