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칼럼] 96. 가을의 끝자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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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 칼럼] 96. 가을의 끝자락에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승인 2024-11-28 14:00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염홍철칼럼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11월의 마지막 주 하고도 금요일입니다. 절기상 구분으로는 가을을 하루 남겨놓았군요. 낙엽은 지고, 이제 은행나무의 이파리가 반쯤 남아있을 뿐입니다. 구르몽의 시처럼 낙엽의 빛깔은 정답지만, 모양은 너무 쓸쓸합니다. 구르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발로 밟으면 영혼처럼 운다"고 얘기하였지요. 낙엽이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쇠락과 죽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는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됩니다. 이런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외로움'이 아닐까요? 얼마 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포니정 혁신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술을 못 마시고,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을 끊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좋아했던 여행도 거의 하지 않고 있는데,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합니다. 그는 대신 '걷는 것'을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다정한 친구들과 웃음과 농담을 나누는 하루하루를 좋아한다고도 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이라는 엄청난 이벤트로 인한 왁자지껄한 축하와 웃음소리와는 거리가 멀지요.

한강 작가의 얘기를 들으면서 개인적인 삶의 '고요'를 느꼈지요. 사실, 저처럼 외향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가끔은 측량할 수 없는 고요가 파고들 때가 있고, 이럴 때 오히려 좁은 방에서 안락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따라서 고요한 삶이 따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현대 사회는 전례 없이 우리를 타인과 연결시키기 때문에 감정적 상실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각자가 특별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관용과 인내를 빼앗아 가기도 하지요. 이런 것들의 역설이 바로 외로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때는 외로움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홀로 있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부추긴 것이지요. 특히 낭만주의 시대에는 혼자 사는 사람을 별종처럼 느끼도록 만들었습니다. 사랑을 강조한 비틀즈의 노래도 그런 맥락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지금은 홀로 있는 것이 일상화되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혼술과 혼밥을 목격하게 됩니다. 모든 세대가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던 광경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어느 때는 무릎에 음식 쟁반을 올려놓은 채 텔레비전 앞에서 혼자 식사를 하거나, 가족과 같이 식탁에 앉아도 신문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느라 차가 식는 줄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같이 식사를 해도 진짜 함께하는 식사가 아닙니다.

물론 혼자 식사를 한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가짜 미소를 지으며 위선으로 둘러싸인 연회장에 있는 것보다는 평화롭고 소박한 식사를 하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겹겹이 쌓인 인생의 덮개를 걷어내고 자유롭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고, 이러한 것들이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끼리 '식사'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식탁에 앉아 함께 창밖을 보고, 햇볕이 좋을 때는 창문을 열고 식사를 한다면 꽃향기와 풀내음을 같이 먹는 것이 아닐까요? 식탁 위 작은 꽃병에 꽃 한송이를 꽂는 것도 분위기를 많이 바꿀 수 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고요한 삶도 예상치 못한 매력이 있지만,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일상에서 필요한 일이지요. 가을을 보내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가을 분위기에 맞겠지만, 즐겁고 따뜻함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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