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그대, 봄의 소리를 듣는가!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그대, 봄의 소리를 듣는가!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5-03-17 15:16
  • 신문게재 2025-03-18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풍경소리 김태열 수필가
김태열 수필가
봄이 오다가 독감에 걸린 듯했다. 입춘이 지나니 겨울나기(Wintering)는 더 힘들었다. 그 침울 속에서도 변화의 징조는 나무에서 나타났다. 냇가의 버드나무는 물이 올라 연노란색의 옷을 입고 있다.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나무들의 꽃망울은 부풀어 곧 꽃을 터트릴 기세다. 냉이와 달래 같은 봄나물들은 추위에 지친 미각을 자극할 것이다. 이 찬란한 대지의 율동 속에서 겨우내 숨죽여 가라앉아 있던 저 깊은 내면에서도 봄빛의 따사함으로 기쁨의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대지는 이렇게 봄옷으로 갈아입는데 우리를 짓누르는 공기는 여전히 추위에 머무르게 한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울린다. 길거리 상가에는 임대라는 딱지도 많이 보인다. 어떻든 버티는 수밖에 없다. 겨울의 혹한을 견뎌내고 봄이 소생한 것처럼.

작년에 박경리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여류소설가 실비 제르맹은 독자와의 대담에서 팔레스타인의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의 말을 인용했다. "써라, 그래야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읽어라, 그러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실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읽는 게 책만이 아니다. 만물이 살아있는 책이다. 자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살이는 듣보는 과정과 같다. 세상의 소리를 풍경소리라고 한다. 우리는 매일 대지와 인간의 소리를 듣는다. 대지는 끊임없이 생성·변화하는 공간이다. 봄·여름·가을·겨울로 바뀔 때마다 모습과 소리로 감정의 메아리를 울리게 한다. 하지만 세상살이의 분주함에 빠져 대지의 순환에 무관심하면 자연이 내는 소리를 눈치채지 못한다. 이 봄날, 저 꽃망울이 툭 터지는 소리는 천지를 일깨우는 몸짓이지만 문명의 소리에 갇힌 현대인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는 글을 쓴다는 것을 번역이라고 했다. 내 안에서 웅성거리는 생각과 감정을 살펴 언어로 물결을 내는 뜻이다. 옛날에는 종이가 귀하고 붓으로 글을 써야 해 생각을 조각하듯 글을 새겼다. 지금은 쓰기에 너무나 접근이 쉽다. 또한 속도가 생명인 세상이라 생각을 담금질하여 번역하지 못한다. 그러니 생명의 순환이 없는 가상공간에는 자극적인 글들만 넘쳐나 세상의 시비가 가라앉을 새가 없다.

봄의 전령사인 매화나무가 암향暗香을 퍼트릴 채비를 마쳤다. 곧이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벚꽃은 눈을 위한 꽃이다. 인생의 화려함과 무상함을 같이 느낄 수 있다. 활짝 피었다가 어느 순간 바람에 훌훌 날리며 꽃비로 내린다. 벚꽃의 낙화를 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사람의 걸음걸이는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속도보다 20배 남짓 빠르다. 우리는 그렇게 빠른 속도로 봄의 시간 밖으로 달아나고 있다.

인생 100년을 하루의 시간 단위로 나타내면 36,500일이다. 무슨 일을 한다고 시간을 보냈는지 지난날을 돌아보면 기억의 우듬지에 걸려있는 한 조각 구름일 뿐이다. 100살까지 산다고 하면 긴 듯한데 하루로 놓고 보면 왠지 짧다는 생각이 든다. 일 년이라는 단위는 길고 하루는 금방 지나가기에 심리적 시간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 테다.

봄은 추위라는 질곡을 이겨야 찾아오는 계절이다. 영어로는 봄을 'Spring'이라 하며 응축되어 뻗치는 힘을 상징한다. 봄의 소리는 생명을 깨운다. 살아있음은 계절의 변화에 동참하는 것, 겨우내 조심조심 지켜왔던 몸의 두 팔을 벌려 기지개를 쭉 펼쳐보자. 산으로 들로 물가로 가서 봄 내음을 맡아보자. 봄바람은 개구리울음 같은 자유의 바람이고 황소 울음 같은 정겨운 바람이다. 봄바람에 묻어 전혀 오는 감정은 그리움이고 속삭임이고 재잘거림이고 부드러움이다.

이 봄날, 그대는 어떤 소리를 들을 것인가. 봄날은 생명의 약동과 생명의 소리를 들려주는 시간이다.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기보단 지금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봄의 찬가를 들어보자. 봄이 왔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 떨림은 나이 잊은 청춘의 축복일 것이다. 바람이 가슴의 빈틈으로 스며든다. 그렇다! 달뜨는 봄이다. /김태열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충원 하이패스 IC' 재추진 시동…타당성 조사 연말 완료
  2. "석식 재개하라" 둔산여고 14일부터 조리원 파업 돌입… 4~5개교 확산 조짐
  3. "캄보디아 간 30대 오빠 연락두절 실종" 대전서도 경찰 수사 착수
  4. "대법원 세종으로 이전하자" 국감서 전격 공론화
  5. 수능 한 달여 앞…긴장감 도는 학교
  1. '오늘도 비' 장마같은 가을 농작물 작황 피해… 벼 깨씨무늬병 농업재해 조사
  2. 추석 지난지가 언젠데…
  3. 세종시 '버스정류장' 냉온열 의자 효율성 있나
  4.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내년 지방선거 앞 존재감 경쟁
  5. 가을비 머금은 화단

헤드라인 뉴스


정부 거점국립대만 키우나… 지역 사립대 불안감 높아져

정부 거점국립대만 키우나… 지역 사립대 불안감 높아져

새 정부의 전국 9개 거점 국립대 육성 기조에 지역 사립대학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 등 향후 고등교육 예산이 거점 국립대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자 수도권과 비수도권뿐 아니라, 지역 내 국공립대·사립대 간 격차가 심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과 지역 인구소멸 위기 해소에 맞는 교육부의 실행 계획도 부족해 보완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크다. 지난달 말 교육부는 이재명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5극 3특' 균형발전 실현을 위한 교육 분야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지역..

코스피 종가 기준 최고가 경신... 3657.28에 장 마감
코스피 종가 기준 최고가 경신... 3657.28에 장 마감

미중 무역갈등 재격화 우려 속에서도 상승 출발, 3600선을 재탈환하며 장중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코스피가 종가 기준 최고가마저 경신했다. 15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95.47포인트(2.68%) 오른 3657.28로 거래를 종료했다. 지수는 18.83포인트(0.53%) 오른 3580.64로 개장한 이후 꾸준히 고점을 높여갔고, 장 막판 한때 3659.91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코스피는 전날에도 장 중 한때 3646.77까지 상승, 직전 장중 최고치(3617.86·10월 10일)를 갈아치웠으나 이후 급락해 3561.81로 장을..

`한국의 루스벨트`… 이상민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 별세
'한국의 루스벨트'… 이상민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 별세

'한국의 루스벨트' 이상민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67세. 고인은 1958년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중, 충남고, 충남대를 졸업했다.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24기)를 수료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 17대 총선에서 대전 유성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한 후 21대까지 내리 5선을 지냈다. 유성은 물론 대전, 나아가 충청발전을 위해 힘썼고, '법의 정의'를 지키고 소외계층과 사회적약자를 위한 지원에도 앞장섰다. 2023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뒤 이듬해 1월 국민의힘에 입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포스트시즌 준비하는 대전한화생명볼파크 포스트시즌 준비하는 대전한화생명볼파크

  • 굿잡 일자리박람회 성료…취업열기 ‘후끈’ 굿잡 일자리박람회 성료…취업열기 ‘후끈’

  • 수능 한 달여 앞…긴장감 도는 학교 수능 한 달여 앞…긴장감 도는 학교

  • 가을비 머금은 화단 가을비 머금은 화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