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선거와 주술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선거와 주술

송기한 대전대 교수

  • 승인 2025-05-12 10:13
  • 신문게재 2025-05-13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송기한 대전대 교수
송기한 대전대 교수
대통령 선거가 곧 시행된다.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일이니 모두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선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 달리 선거철만 되면 유독 분주해지는 곳이 있다. 바로 점집이다. 물론 점을 보는 일은 선거 직전뿐만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다반사로 일어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조상의 무덤을 이전했다고 하는가 하면, 소위 비방(秘方)을 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인간이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특히 머지않은 미래에 목표가 있게 되면 이를 알기 위해 더욱 조바심을 치게 된다. 알고자 하는 초조감, 그것이 인간을 주술로 인도한다. 주술은 맞건 틀리건 미래를 말해주고 목표 달성을 위한 비방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주술은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필요로 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발전시킨다. 특히 사회가 혼란스럽거나 민중들이 억압받을 때 더 강한 성장의 필연성을 요구받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왕조 교체기에 특히 그러했다.

이 전환기에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자천 타천으로 많은 영웅이 등장한다. 시대를 이끌어갈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적임자라고 민중들을 현혹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어떤 신비스러운 힘에 의해 선택받은 존재라는 것이 사실 여부를 떠나 유포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등장이 정당성을 보증받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스스로를 고상하게 세탁해야 했다. 그러한 변신이 가장 극심하게 일어났던 때는 아마도 신라 말기가 아닌가 한다. 미륵(彌勒)이나 도선(道詵)의 사상 등이 이때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륵 사상은 본디 불교에서 온 것이다. 미륵은 도솔천(兜率天)에 산다고 알려져 있거니와 그가 여기서 나와 지상에 올 때, 민중들은 비로소 질곡이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다고 믿었다. 미륵은 민중들의 꿈과 희망이었던 셈이다. 역사상 이 미륵 사상을 가장 먼저 선포한 사람은 백제의 무왕이다. 그는 선화공주와 더불어 익산의 미륵산 자락에 미륵사라는 절을 지어 천년 왕국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것이 궁예이다. 그는 자신을 미륵이라고 자처하면서 혼란한 시대를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설파하고 다녔다.



그런데 이때 이 미륵 사상을 넘어선 것은 다름 아닌 도선의 풍수 사상, 곧 주술이었다. 도선은 고려 태조 왕건의 등장을 예언했다고 알려져 왔거니와 실제로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그러니 도선 사상은 그 시대의 절대 선이 되었고, 그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도선비기(道詵秘記)'는 모두가 배워야 할 교과서가 되었다. 하지만 도선 사상은 고려 말 다시 미륵 사상에 중심 자리를 내주게 된다. 사회가 혼란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미륵사상이 다시 부상했거니와 논산의 돌미륵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조선 시대에는 민중들을 미혹하는 이런 사상들이 일시적이나마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직관과 모호한 감성에 바탕을 둔 인식 체계들이 정도전의 '불씨잡변'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극복되었기 때문이다. 정도전이 유교적 입장에서 이 사유 체계를 비판한 것이기에 약간의 독단과 편견이 있긴 했지만, 사물의 본성을 인과관계에서 보고자 한 것은 어느 정도 과학성을 담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주술에 대한 일련의 사고 체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감록'을 비롯한 이지함의 '토정비결', 남사고의 '격암유록' 등이 이때에도 계속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가올 미래는 알 수 있는 것인가. 무엇이 궁금해서 안달들인가. 과거의 주술들은 민중들의 억울함 등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했기에 그나마 정합성이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떠한가. 오직 자신의 출세와 영달만을 위해 주술을 끌어들인다. 그러한 까닭에 거의 비방이나 비책((秘策)에 가까운 수법들이 동원된다. 일찍이 만해 한용운은 '알 수 없어요'라는 시에서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라고 물은 바 있다. 답은 '알 수 없어요'다. "오늘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내일의 결과는 달라지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미래란 결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송기한 대전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2.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3.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4.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1. 필수의료 공백 대응 '포괄2차종합병원' 충청권 22곳 선정
  2. 폭력예방 및 권리보장 위한 협약 체결
  3. 임채성 세종시의장, 지역신문의 날 ‘의정대상’ 수상
  4. 건물 흔들림 대전가원학교, 결국 여름방학 조기 돌입
  5. 세종시, 전국 최고 안전도시 자리매김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