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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용 교수 |
"건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마치 삶의 본질을 묻는 철학적 성찰처럼 다가온다. 오랜 시간 건축 교육과 실무, 연구를 거쳐오며 내린 결론은 이 한 문장에 담긴다. "건축설계는 인문학, 건축시공법은 과학적 신뢰, 유지관리는 경제학이다." 건축을 건축으로 만 알아 왔던 필자의 한계에서 이제 좀 철이 들어 뒤늦게 깨달은 나의 건축학개론이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이는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사람이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작업이며, 인간의 감각, 심리, 문화, 사회적 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의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 건축의 전 생애주기를 관통하는 본질적 원리이자, 가장 중요한 철학적 요소는 "인간 중심성"이며, 건축은 기술 이전에 "인간학"이다.
풍수지리는 고대의 인문학적 공간 해석 도구였고, 현대 건축기술은 과학과 데이터로 새로운 공간 생성 도구가 되었다. 두 접근 모두 "인간이 어떻게 더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공통된 인문학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풍수와 현대 건축기술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대화의 장이며, 기술과 철학이 함께 발전해야 할 통합적 건축문화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건축은 인간 존재와 환경 사이의 관계를 공간으로 해석하고 구현하는 행위이다." 단순한 공간 구성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맥락을 해석하여 공간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좋은 건축설계는 그 시대의 정신을 담고, 그 지역의 풍토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반영한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이해의 태도'이며, 인문학적 사유의 결과다. 건축설계는 필연적으로 인문학적 기반이 되어야 하며, 삶의 공간은 기능을 넘어 삶의 이야기와 기억을 품는다.
다음으로, 건축시공법은 과학적 신뢰다. 설계가 이상이라면, 시공은 그것을 실현하는 생산과정이다. 수많은 재료, 구조, 공법이 정밀한 과학적 검토를 바탕으로 조합되며, 수치와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 모든 과학의 기반에는 '신뢰'가 있다. 도면의 해석, 공정의 순서, 품질의 확인은 사람과 기술 사이의 신뢰가 없으면 무너진다. 과학은 정확성을, 신뢰는 지속성을 보장한다.
건축은 공공의 삶에 대한 '윤리적 약속'이다. 이미 기원전 18세기경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 법전(Hammurabi Code)에서 건축적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건축가가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무너져 주인이 죽었다면, 그 건축가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와 같이 인명피해에 대한 엄정한 조항이외에도 물적 손해에 대한 금전적 배상의무 등의 조항으로 규정하였다. "건축은 공공성과 생명을 지키는 일"로서 건축가의 기술력뿐 아니라 도덕성과 책임의식을 제도화한 인류 최초의 '건축윤리적 선언'이다. 오늘날에도 건축가와 기술자가 지녀야 할 '전문성과 윤리성의 균형'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끝으로, "건축은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흐르는 자산으로서 유지관리의 경제학적 의미를 지닌다." 건축물의 완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건축물은 단지 소비재가 아닌, '시간이 축적되는 자본재'이며 건축의 '유지관리'는 경제학적 관리 대상으로서 자산가치의 생명연장 전략이 필요하다.
유지관리의 효율성, 에너지 성능, 수선주기와 비용 최적화는 건축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 특히 고령화, 탄소중립, 재정 위기라는 시대적 과제를 마주한 오늘날, 건축유지관리는 단순한 기술행위가 아닌 경제학적 전략이다. 건물을 오래도록 가치 있게 사용하는 일은 자산관리의 영역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다. 즉, 건축의 자산가치는 "삶과 경제가 흐르는 그릇"인 것이다.
건축은 예술과 과학, 인간과 기술, 감성과 논리를 아우르는 총체적 행위이다. 이 세 가지 관점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자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나의 건축학개론은 건축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자, 우리가 건축을 왜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되묻는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도시와 건축의 공간에서 삶의 가치와 인문학적 품격, 사회적 신뢰, 풍요로운 자산가치를 영위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김규용 충남대 스마트시티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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