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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선 나성유치원 교사 |
생태와 그림책을 주제로 수행한 연구년제를 마치고 복직한 근무지가 지금의 생태유치원이다. 감사하게도 자연·인간·관계·순환에 대한 연구과제를 교육과정으로 펼쳐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근무지를 이동하고 적응해야 하는 타 교사들처럼 나 역시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은 필요했다. 손 내미는 동료들과 학급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덕분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유치원이 생태 환경에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니 감사함이 더해져 행복해졌다.
우리 유치원 마당에는 큰 텃밭과 높다란 흙산이 있다. 가까이에는 제천이 흐르고, 영차영차 북돋우며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는 여러 공원과 숲이 있다. 무엇보다 유치원 마당에 텃논과 화덕이 있다. 텃논이 있어 매년 아이들과 함께 모를 심고 벼를 수확한다. 텃밭과 텃논에서 가꾸고 수확한 것은 화덕을 활용해 요리도 하고, 단오 때는 창포물을 삼아 전체 아이들이 부드러운 머릿결이 되도록 머리 감기도 한다.
'찰칵찰칵' 매일 아침 나의 출근길에 들리는 소리다. 유치원 마당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텃논의 사진을 매일 찍는다. 높다란 아파트 도심 속에서 푸릇하게 자라나는 초록 모들을 보며 마음이 저절로 힐링된다. 매일 쑥쑥 크는 우리 아이들처럼 자라나는 모의 키도 재고 그림도 그리고, 논에 사는 생물도 관찰한다. 급식실에서는 나도 우리 반 아이들도 점심때마다 텃논에 찾아오는 까치·까마귀·참새 등 여러 새를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다. '우와 새 왔다.' , ' 2마리야. 아니야, 저기 한마디 또 있어.'라고 말하며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찾아온 새의 수를 세며 우리가 만든 자연환경 '텃논'에 놀러 온, 원래 자연 속 주인들을 반가워한다. 하지만 곧 벼알이 맺히고 그것을 쪼아먹는 새의 방문을 아이들이 그때도 반길지는 모르겠다. '새야, 우리 아이들이 안 볼 때, 조금만 그리고 맛있게 먹고 가렴"하고 말을 걸어본다. 얼마 전 옆 반 친구들은 교실에서 부화시킨 개구리 '몽실'이를 텃논에 방생했다. 그래서 텃논에 새가 찾아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본다. 나 역시 걱정은 되지만, 얼마 전 아이들과 텃논 주변을 뛰어놀며 개구리 소리를 들었다. '몽실'이 소리라고 믿어본다.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와 옥수수를 화덕에 삶고 전체 학급이 마당에 나와 알록달록 돗자리를 펴고 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 · 겨울 요리 활동 김장 후 화덕에 삶은 수육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장작불을 지펴 감자와 옥수수, 수육을 삶아내려고 고생하는 교직원들과 학부모님들의 모습에서 하나가 됨을 느낀다. 우리 유치원 공동체가 하나 됨을 느끼는 건 교사인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여름 절기 '소만' 때 아이들과 모내기를 끝낸 며칠 후, 쌀을 활용하여 요리실에서 밥 전을 만들었다. 밥 전은 "조리사 선생님들은 매일 우리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시잖아요. 우리도 맛있는 음식 만들어서 대접하고 싶어요"라는 우리 반 아이들의 요청으로 만들게 되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밥 전을 유치원에 계시는 여러분께 드린 후 함께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우리 반의 가장 어린 여자아이가 "선생님, 이렇게 있으니까 우리 가족 같아요."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밥 전의 향기와 맛 그리고 나눠 먹는 행복이 배가 되는 그 순간, 아이들도 교사도 모두가 함께라는 기분이 서로에게 와 닿은 것 같았다.
올해 선생님들과 생태교육과정을 담은 책 출판을 준비 중이다. 방학 기간에도 자료를 공유하며 집필에 여념이 없는 동료들과 함께 리처드 루브의 책 제목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이 아닌 "자연에 가까워진 아이들"로 자라날 수 있도록 조력하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도 힘차게 자연으로 출근한다. /김혜선 나성유치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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