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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
국군의 날하면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퍼레이드다. 로마의 개선식은 승리한 장군이 노예와 전리품을 이끌고 들어오는 '보여주기 정치'였고, 냉전기 군사 퍼레이드는 미사일 껍데기를 끌고 다니며 '우리 것이 더 크다'를 자랑하던 심리전이었다. 퍼레이드에서는 군악대가 북을 울리고, 장병들이 절도있게 행진한다. 하늘에는 전투기가 편대를 이루고, 땅에서는 전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국방의 무대는 언제나 기술이 주도했다. 활과 창에서 화약, 화약에서 전차와 항공기로, 그리고 미사일 경쟁까지. 그런데 머지않아 이런 장면은 '추억의 국군의 날' 영상 속에서만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21세기 국방의 무대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단순히 무기의 위용이 아니라 기술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국방의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총검술 대신 드론 편대 비행, 탱크 대신 자율주행 전투차량, 그리고 구령에 맞춰 걷는 병사 대신 기계음으로 '충전 완료'를 알리는 로봇이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 AI 병사가 등장할 수도 있다. 드론이 군악대 대신 하늘에서 멋진 도형을 그리며 축포를 쏜다. 로봇 병사는 사람처럼 구보를 하다가도, 체력 소모가 크면 스스로 충전소로 향할지도 모른다. 인간 병사가 '전우야 잘 자라'를 부르던 시절은 지나고, 로봇 병사는 '배터리야 잘 충전해'라는 노래를 흥얼거릴지도 모른다. 구경 나온 시민들은 "도대체 이게 군대냐, 전자제품 박람회냐?"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AI가 지휘하는 전장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AI가 지휘하는 전장은 인간 병사가 단순히 체력과 근력을 뽐내던 시대는 아닐 거다. 오히려 기술을 다루고, AI와 협력하며, 전쟁을 막는 전략을 세우는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 국방의 날은 과거의 '무력 과시'에서 '지능 과시'로 변모할 것 같다. 강한 팔뚝보다 스마트한 두뇌가 더 절실한 시대다. 적군의 탱크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이버 공격이고, 대포보다 위협적인 것은 전력망과 통신망을 마비시키는 해킹이다.
물론 AI 병사도 약점은 있다. 인간 병사는 비를 맞아도 걷지만, 로봇 병사는 물에 젖으면 합선이 난다. 인간은 배고파도 버티지만, 로봇은 전원이 꺼지면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무엇보다 와이파이가 끊기면 곧장 대열이 무너진다. 어쩌면 야간 행군 중 신호가 약해지면, 대열이 산속에서 길을 잃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이버 공격에 당하면 "적군 격파!" 대신 "시스템 오류!"만 외칠지도 모르겠다. 장병의 사기를 올리던 군가는 이제 보안 패치 완료 알림으로 대체될지 모른다. 국방 환경이 급변하는 과정에서 힘자랑과 각개전투가 필요했던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 병사의 임무는 드론을 조종하고, AI를 감독하며, 무엇보다 '기계가 사고를 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 될 것이다. 국군의 날은 이제 무력 과시의 날이 아니라 '테크 페스티벌'에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
안보의 개념은 변했다. 국군의 날은 이제 총검술 대신 키보드 보안술, 대포 대신 드론, 전우 대신 데이터와 함께 하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 국토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우리의 전기와 인터넷, 그리고 우리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국방의 과제가 되었다. 국군의 날은 단순히 무기를 보여주는 날이 아니다. 국민에게 안보의 의미를 되새기고, 군의 존재 이유를 되묻는 자리다. 로봇은 명령만 따르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 '배터리 충전'이 아니라 '평화를 선택하는 용기' 말이다. 아무리 로봇 병사가 늘어나도 결국 '국군의 날'이라는 이름을 지켜줄 존재는 사람이다. 로봇은 배터리로 움직이지만, 인간은 신념과 의지로 움직인다. 국군의 날이 계속을 의미를 가지려면 '충전된 기계'보다 '평화를 선택하는 인간'이 먼저다. 과거의 국군의 날은 '힘'을 과시했다면, 미래는 '지혜'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AI시대에도 여전히 국군의 날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원구환 한남대 기획조정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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