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어긋난 일상에서 성실히 늙어가는 가을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어긋난 일상에서 성실히 늙어가는 가을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5-09-30 17:44
  • 신문게재 2025-10-01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김충일 북-칼럼리스트
일상(日常)은 우리 삶의 장소이자, 시간이며, 통로이다. 인간은 일상으로부터 누구도 벗어날 수 없고,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반복되고, 드러난 것이 없으면서 덧없이 지나간다. 그렇지만 우린 가끔 "오늘 나는 어제와 무엇이 다른 일상을 살고 있는가?"를 궁금해 하며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의 일상은 갖가지 주름과 상처, 다른 차원의 모습으로 민낯을 드러낸다. 하지만 자기가 가진 앎과 느낌의 한계로 인해 삶을 통째로 들여다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일상을 그려 보고, 의미를 묻고, 삶의 방향을 예단하는 일은 '좋은 삶'이란 지도를 그리기 위해 나침판을 준비하고 떠나는 여행과 같다.

되짚어 보니 지난여름 시간의 체를 거쳐 걸러진 일상의 어긋난 상처의 흔적들이 은미(隱微)한 가을바람을 타고 수묵화 되어 불어온다. 흘러가 버린 일상의 그림 속엔 마음먹은 목표를 이루어내려다 미끄러져 찢긴 희망의 잔해들, 내일의 번개를 기다리며 오늘이란 먹구름 속에서 어지럽게 겪어낸 일들, 기성에 안주하기보다 미완을 향해 손을 내미는 역할 기대에 맞장구쳐야 하는 일 등, 일상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어제의 '어긋남의 사건'들이 비 온 뒤 보도 위에 달라붙은 낙엽 되어 '지금, 여기'의 삶을 씁쓸하게 덮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은 이미 그 자체가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에 늘 '어긋남'의 기미가 부석거린다.



그렇다면, 파도처럼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일상 세계를 구성하는 '비틀림과 어긋남'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 삶은 복합적이고 관계적이기에 매사가 어긋난다. 어긋남은 일상에서 생기는 우발적인 불운한 사건이나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그 속에서 일어난 '자리다툼'의 구조에 연루된 인간들의 '잇속(利) 찾기'가 불러일으킨 피할 수 없는 그 어긋남을 가리킨다. 하여 어긋난 일상의 길을 걸어보라. 우린 사회라는 유리컵, 현실이라는 뚜껑 속에서 익숙해진 만큼만 틀에 맞게 살아간다. 게다가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단 부조리에 적응하게 되고, 차별에도 익숙해지며, 단단하게 굳어져 가는 체계에 침묵하는 '어긋난 세상의 일상인'이 되어 간다.

그러나 변화하는 세계와의 불화에서 생긴 틈(어긋남)에 치유의 윤활유를 바르고 새로운 일상의 길을 뚫어 보자. 이를 위한 실천 행위는 기존의 틀을 깨고,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 열기 위한 '틈'을 만들어 보는 일이다. 틈이란 단순한 어긋남이 아니다. 우리의 사고와 삶의 틀 속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이다. 그것은 멈추어 있던 사고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다층적인 세계를 감싸안으며 새롭게 생성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 공간은 우리가 마음먹고 행하려 했던 것의 머리말이고, 피할 수 없음에도 찾아야 하는 아름다운 질문이며, 우리가 늘 함께하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성숙해 가는 과정에서 더불어 꿈꾸는 지향점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끝없이 "고착된 적합성" 속에 갇혀 엇갈리고 비틀린 상태에 있다. 그럼에도, 우린 일상의 심연이 품고 있는 '어긋남의 미로 속에서 가능성을 다시 열기(틈 찾기)'란 새로운 선택지를 발견해야 한다. 그건 어떤 틀에 안주하지 않고, 매 순간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노력, 틈 만들기다. 여기에서 틈은 우리가 매일 던져야 할 질문을 불러온다. "오늘 나는 어제와 무엇이 다를 수 있는가?" 이 물음 속에 사고하는 삶의 균열(어긋남)이 시작되고, 균열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틈)이 자라난다. 어긋남 속의 창조와 사유의 틈이란 자유는, 그 어긋남 속의 틈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상상하는 힘으로 부터 나온다.

또다시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우리네 일상은 '어긋남 없는 틈'이 죽어야(虛) '틈이 있는 어긋남'이 살아난다(生). 주름지고 상처 난 일상에서 좋은 삶을 위한 틈 만들기를 화두 삼아 이런저런 생각을 공글리며 걷고 있는데 가을이 성실하게 늙어가고 있다. 김충일 북-칼럽니스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구미, 주민안전 무시한 보행자 보도정비공사 논란
  2. "아산페이 안 쓰면 손해"-연말까지 18% 할인 연장, 법인 10% 연장 할인
  3. 아산소방서, 전통사찰 화재 예방훈련
  4. 영천, '신성일기념관 개관 기념' 고향사랑기부 이벤트
  5. 천안시, 청소년유해환경 개선 합동점검·단속 및 캠페인
  1. 삼성디스플레이, 취약가정에 1억5천만원 후원
  2. 아산시 음봉어울림도서관, '시선 너머의 이야기' 전시
  3. 천안법원, 음주 측정 거부한 50대에 '징역형'
  4. 천안법원, 지인 간 법적소송에서 위증한 혐의 50대 남성 무죄
  5. 천안시 서북구, 동절기 제설작업 대비 안전교육 나서

헤드라인 뉴스


국정자원 화재 나비효과 막아라

국정자원 화재 나비효과 막아라

사상 초유의 국가 전산망 마비를 불러온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정부는 신속한 시스템 복구에 나서 최악의 상황은 막았지만, 이번 사태가 대전 등 충청권에 가져온 과제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지역 공공 자산인 국정자원 이전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온다. 공공기관이 특정 지역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달갑지 않다. 갈수록 심화되는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하고 국가균형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선 지역의 공공기관을 지키고 새로운 인프라를 유치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중도일보는 '국정자원 화재 나비효과 막아라' 시리즈를 통해..

한미 통상·안보 팩트시트 발표… 상호관세 15% 인하, 핵잠 승인 담겨
한미 통상·안보 팩트시트 발표… 상호관세 15% 인하, 핵잠 승인 담겨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 관세율을 포함한 한미 간의 무역 협상이 최종 마무리됐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포함한 양국의 안보 협상도 문서 형태로 공식화됐다. 대통령실과 백악관은 14일 오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양국의 관세·안보 협상에 대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를 동시에 공개했다.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직후 나올 예정이던 팩트시트 발표가 지연되면서 세부 내용에서 이견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지만, 이날 공개된 팩트시트에는 지난 정상회담 당시 발표된 내용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전시의회, "대전교도소 이전 지지부진…市 대책시급"
대전시의회, "대전교도소 이전 지지부진…市 대책시급"

대전교도소 이전사업이 8년째 진척을 보지 못하면서 대전시의 명확한 추진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제기됐다. 교도소 과밀화와 시설 노후 문제는 이미 한계를 넘었지만, 이전 사업이 장기간 답보 상태에 놓이며 후적지 개발 계획 역시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열린 대전시의회 제291회 정례회 도시주택국 행정사무감사에서 방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유성구2)은 "대전교도소는 수용률이 142.9%에 달해 전국 평균(122.1%)을 크게 웃돌고, 노후 시설로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선 권고까지 받..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3~4학년부 4강전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3~4학년부 4강전

  •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5~6학년부 예선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초등 5~6학년부 예선

  • ‘수능 끝, 해방이다’ ‘수능 끝, 해방이다’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