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이중 도시’에 사는 우리들, 행정구역 너머의 삶을 상상하자

  • 오피니언
  • 전문인칼럼

[전문인칼럼] ‘이중 도시’에 사는 우리들, 행정구역 너머의 삶을 상상하자

권인호 스페이스해킹 대표, 대전공동체운동연합 운영위원

  • 승인 2026-01-25 11:26
  • 수정 2026-02-10 17:50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KakaoTalk_20250822_173708463
권인호 스페이스해킹 대표, 대전공동체운동연합 운영위원
영국의 SF 작가 차이나 톰 미에빌의 소설 『이중 도시(The City & The City, 2009)』는 가까운 미래의 가상 도시국가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 속 도시는 '베셀'과 '울코마'라는 두 국가로 나뉘어 있지만, 기이하게도 같은 공간 위에 겹쳐 존재한다. 법과 규칙에 따라 서로의 모습과 움직임을 보아도 보아서는 안 되는 도시, 그것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도로와 길은 연결돼 있고, 사람과 자동차가 눈앞에 나타나도 모른 척해야 한다. 이 소설은 도시 안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와 차별, 시스템의 통제, 그리고 그 안에 숨은 모순을 집요하게 그려낸다.

특히 '침범국'이라 불리는 조직은 두 도시 사이에서 발생하는 침범을 감시하고 관리한다. 더 인상적인 점은, 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이 통제와 경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왜 따라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의 설정이 그다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대한민국, 그리고 우리가 사는 동네 역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이미 생활권과 관계, 네트워크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행정구역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는 효율성과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반면, 실제 삶의 흐름과는 종종 괴리를 만들어 왔다.

나는 동네와 마을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의 문제를 발견하고, 계획을 세워 사업을 실행하는 주민자치회의 현장에서 일해왔다. 대덕구 주민자치회 자치지원관과 대덕구공동체지원센터 주민자치팀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주민들의 열정과 바람을 담아내기에는 주민자치회가 행정체계에 지나치게 구속돼 있다는 현실이었다.

주민들의 생활권은 동네와 동네, 지역과 지역을 넘나든다. 내가 사는 송촌동의 주민들은 중리동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비래동 길치문화체육센터에서 운동을 하며, 장동 삼림욕장 입구에서 황톳길 걷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스러운 생활권을 바탕으로 한 계획을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행정 경계를 넘는다는 이유로 동과 동, 지역구 간 정보 공유와 협력은 번번이 가로막혔다.

도시의 생활권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충남에 사는 사람이 세종으로 출근하고, 대전에서 여가를 보내는 일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교통과 네트워크의 발달로 대전을 중심으로 한 광역생활권은 빠르게 확장되고 있으며, 지역소멸 시대를 맞아 광역 도시를 중심으로 한 소도시 간 연계와 협력의 중요성 또한 커지고 있다.

행정 경계를 넘어 동네와 마을의 협력과 연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초정부, 즉 시·군·구청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광역정부가 도시 전체의 큰 계획과 재정, 개발을 담당한다면, 주민과 가장 가까이에서 소통하며 일상의 행정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핵심 주체는 기초정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행정 구조만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조직과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 변화가 쉽지 않은 이유는 정보 공유의 부족, 주민 주도의 변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여론 형성의 미약함, 그리고 정치적·행정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저항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행정통합은 하나의 균열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광역정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자치분권을 확대하고, 기초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며, 지역 간 협력의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향은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되며, 관련 법안과 제도 속에 분명하게 담겨야 한다.

최근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우려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정치적 결단만큼이나 충분한 정보 공유와 사회적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정책이라도, 삶의 현장을 살아가는 주민이 공감하고 스스로 만들어 가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은 분명 중요하다. 도시 간 연합이나 메가시티 등 다양한 패러다임이 논의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밀도와 관계망, 그리고 클러스터로 형성되는 생활 생태계다. 그동안 대규모 개발 중심의 제도와 낙수효과에 기대어 온 정책이 한계를 드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설 『이중 도시』의 주인공 볼루 경위는 이렇게 말한다."나는 중간 지대에 살지만, 이 도시와 저 도시 모두에 살고 있다."

이 도시와 저 도시 모두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까. /권인호 스페이스해킹 대표, 대전공동체운동연합 운영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연축지구 개발 탄력받나… 공공기관 유치 준비 주목
  2. 증산도 한연선 종도사(宗道師) 입극(立極) 대천제(大天祭) 봉행
  3. 천안시, '서북구문화원' 신축·이전 준공
  4. 중도일보 김원식 회장·김현수 대표이사 부자(父子) 아너 소사이어티 탄생
  5. 대전 택시 기본요금 11월부터 4800원… 3년 만에 인상
  1. 잇단 산하기관 잡음… 세종시 관리·감독 문제 도마 위
  2. 세종시민과 기업의 상생 축제… 31일 도담동서 개막
  3. 천안시민한마음체육대회 성료…31개 읍면동 24개 종목 열전
  4. 죽동중·성남중 설립 목소리 커지는데…대전교육청 '해법 찾기' 고심
  5. 천안법원, 전 여친 성폭행 후 살해하려 한 30대 남성 '징역 12년'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 초읽기…대전 `우선 배치` 촉각

李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 초읽기…대전 '우선 배치' 촉각

이재명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로드맵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전 지역사회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서울과 가까운 관계로 이전 대상 기관들의 대전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의 후발 혁신도시 우선 배치 여부도 아직 안갯 속이기 때문이다. 대전은 우리나라 연구개발(R&D) 메카이며 국토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 과학기술 및 균형발전 성과를 영호남, 강원 등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장점이 크다. 이재명 정부가 대전에 관련 공공기관을 전략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27일 중도일보..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인력 불균형… 전국 최대 11.5배, 충청권 5.9배 격차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인력 불균형… 전국 최대 11.5배, 충청권 5.9배 격차

전국 고용센터별로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 인력의 업무 편차가 천차만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사 1명이 관리하는 참여자 수가 전국적으로 최대 11.5배 차이가 났으며, 충청권 내 13개 고용센터에서도 최대 5.9배 격차를 보였다. 27일 본보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어기구 의원(더불어민주당·충남 당진)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고용센터별 국민취업지원제도 상담인력'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9월 기준 전국 102개 고용센터의 상담인력은 총 792명으로, 상담사 1명당 평균 126.2명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정자원 대전 잔류 위해 추가 부지 발굴… 유치 경쟁 속 대응 본격화
국정자원 대전 잔류 위해 추가 부지 발굴… 유치 경쟁 속 대응 본격화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의 대전 내 대체 시설 확보를 위한 대전시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충남과 세종까지 국정자원 유치에 나선 가운데 당초 제안한 2개 후보지 외에도 추가 부지를 발굴하며 대전 내 재설립을 위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전시의 이같은 행보는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앞두고 신규 기관 유치뿐 아니라 기존 기관 붙잡기에도 힘을 쏟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27일 대전시에 따르면 허태정 대전시장은 이날 민선 9기 자치구 상생투어의 마지막 일정으로 서구를 방문해 국정자원 본원의 대전 내 재설립 필요성을 강조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스토킹에 의한 여성 살해 국가가 책임져라’ ‘스토킹에 의한 여성 살해 국가가 책임져라’

  • 스토킹 살해 피의자 영장실질심사 스토킹 살해 피의자 영장실질심사

  • ‘울긋불긋’ 대전 도심 ‘울긋불긋’ 대전 도심

  •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