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성장하며 한번 쯤 거쳐야하는 통과의례 정도로 곱게 봐 주는 문화가 아니었을까?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보고도 못 본 척 묵인 해 주었다. 아이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다만, 그 특권에도 규칙이 있다. 혼자 하면 안 된다. 여럿이 재미로 해야 한다. 절대로 축적하거나 집으로 가져와도 안 된다. 밖에서 함께 나누어야 한다. 따라서 당장 먹어치워야 하는 적은 양이어야 한다. 이러한 정서적 규칙이 있어 용서도 가능하다.
서리 대상은 먹거리가 대부분이었다. 놀이로 봐주기도 하지만, 없던 시절 가슴시린 추억이기도 하다. 허기진 탓이겠지만 어느 것이고 참 맛있었던 기억이다.
콩도 서리 대상 중 하나로, 주로 '서리태'였다. 묵은 짚이나 검불을 모아 불을 지르고 그 위에 뿌리 채 뽑은 콩대를 얻는다. 아직 푸른 가지라 연기가 많이 난다. 불길이 잦아들면 구워진 콩을 까먹는다. 그 맛을 어디에서 다시 만나랴. 모르는 사이 손이며 얼굴은 껌정으로 분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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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이미지 뱅크 |
동산에 떠오르는 둥근 달을 바라보며 온 가족이 모여앉아 송편을 빚는다. 울안 가득 보름달과 다르지 않은 함박웃음이다. 송편 모양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누가 빨리 만드나 내기 하자 어른다. 손길이 바쁘다. 조금 지루하다 싶을 때, 두레상 갓부터 줄지어가던 송편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상위에 가득하다. 일그러진 얼굴로 함지박에 가득하던 반죽도 사라진다.
떡을 둥글게 비빈다음, 오목하게 만들고 소를 넣는다. 오므려 붙이는 방식, 만드는 사람 솜씨에 따라 모양이 제각각이다. 자연스레 반달 모양이 되므로 가장 많이 눈에 띈다. 반달 모양이 달을 연상하게 되고 달은 다시 둥근 보름달로, 보름달은 풍요와 행복, 함박웃음으로 마음에 안긴다.
가마솥에 적당히 물을 붓고, 채를 놓은 다음 솔잎을 편다. 그 위에 송편을 놓고 다시 솔잎을 깐다. 같은 방법으로 켜켜이 놓는다. 아마도 주안점은 솔잎을 까는 것이리라. 낮에 아이들이 소쿠리 들고 산에 올라 솔잎을 채취한다. 향기 차이일까 어른들은 토종 소나무 잎을 따오라 주의를 주셨다. 떡에 솔 향이 짙게 밴다. 떡살이 서로 달라붙지 않는 역할도 한다. 노래진 솔잎을 떼어내며 먹는 것 또한 맛을 돋운다. 솔잎을 넣지 않고 찐 떡은 송편이 아니다.
소나무하면 떠오르는 것이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 ~ 1856, 조선후기 문신, 실학자, 서화가)의 「세한도」이다. 발문이나 논어의 인용 구절을 정리하면, 시절이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늘 푸른 것을 안다는 것이다. 추사가 제주에서 9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본인의 억울함, 단심을 표현한 그림이다. 소나무는 지조, 절개, 단심, 신의의 상징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민족은 음주가무에 출중하다. 막걸리 한 사발에 온종일 노래할 수 있는 민족은 한민족뿐이란다. 끼와 흥이 넘친다. 그렇다고 술상을 산해진미로 차리지 않는다. 개다리소반에 차려진 소박한 음식이라도 흥겹게 먹고 즐긴다. 차례상이나 제사상도 다르지 않다. 귀한 음식으로 차리는 것이 아니라 평소 가꾸고 거둔 곡식과 먹거리로 한다. 한가위 차례상은 햇것으로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집집마다 술도 빚었다. 정겹게 나눌 심산으로 양은 넉넉하게 준비한다.
역사는 제각각이나 대부분 나라가 추수에 대한 감사행사를 한다. 명칭, 시기는 다를지언정 종교 집단도 다르지 않다. 어쩌면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행사이기도 하다.
문화는 집단적 정서의 발로이다. 명절 대이동으로 많은 시간 길거리에서 보내는 고충이나 어려움, 수고로움은 문제가 아니다. 매년 겪는 일이요, 명절증후군 운운하기도 하지만 기꺼이 고향으로 향한다. 모든 일가친척과 이웃, 나아가 우리 한민족이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나누는 멋진 축복의 시간이다. 웃음꽃이 만발하고, 행복 가득한 고운 한가위가 되기를 염원해 본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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