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엄마 영이엄마 간첩잡아 곗돈붓자’
인터넷 유머란을 보다 피식 웃어버렸다. 공감의 웃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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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의화 편집팀장 |
형식에 맞게 4-4-4-4 댓구로 지어내라는 표어는 늘 막막한 숙제였고, 분홍색을 좋아하던 꼬맹이에게 빨강과 검정 파랑 같은 5가지 원색으로 그려내라는 포스터는 재미없는 숙제들중 하나였다. 그 때 쓰던 동그란 포스터 물감들을 요즘의 초등생들도 쓰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시민회관에선가 보았던 만화영화 ‘똘이장군’도 새록새록하다. 만화의 끝에서 무섭고 거대하게만 보이던 김일성이 돼지로 변하던 모습이란…
고교 시절 6월은 푸르스름한 면도 자국이 멋졌던, 젊은 선생님의 흥분된 목소리가 선명하다. 당시 서울에서는 대학생 한명이 데모하다 최루탄에 맞았다고 하고 대전 시내에서는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모여 데모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상기된 얼굴로 들어온 젊은 선생님은 ‘방금전 중요한 선언이 있었다’고 했다. 어떤 말을 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떨리는 목소리와 얼굴을 보며 ‘뭔가 세상이 변하는구나’ 흥분이 전염되는 것 같았던 6월의 끝 무렵, 초여름날의 설레임은 지금도 생생하다.
20대 들어서 맞은 6월은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텁텁한 막걸리였다.
고교시절 젊은 선생님이 흥분하며 말하던 그 선언이 무엇이었는지, 서울에서는 왜 대학생이 최루탄에 맞아 숨져야했는지 뒤늦게 알아가며 분노하던 시절, 교내 막동(막걸리 동산)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부르던 시절, 명지대 1학년이었던 강경대군이 숨진 그해 6월의 최루탄 냄새는 유난히도 지독했다.
30대에 맞은 6월은 편집기자로서도 신선한 충격과 뜨거운 감동이었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손을 잡던 날은 신문 편집에서도 한 획을 그은 날이었으니 사진 한장이 신문 1면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파격 편집이 나왔다. 하단 광고를 없애며 과감하게 기존 틀을 깬 중앙지의 편집을 보며 편집기자로서의 ‘한수’를 배웠던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2년뒤인 2002년, 월드컵이 열렸던 그해의 6월은 참으로 찬란했다. 박지성이 히딩크 감독과 포옹하던 모습이며 대전서 열렸던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전세계를 놀라게 한 붉은 물결은 지금 돌아봐도 뭉클하다. 서대전 시민광장에 빼곡이 들어선 붉은 물결을 보며 우리 자신조차 우리의 역량에 놀라고 감동했기에 그해의 6월은 소중한 기억이다.
하지만 그해 6월에도 아픔은 있었다. 6월29일, 터키와의 3/4위전에 온국민의 귀와 눈이 쏠린 날 서해에서는 북한과의 제2 연평해전이 일어났고 젊은 장병 9명이 숨졌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난 2일에는, 당시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딴 해군의 ‘윤영하 함’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작전 수역에 배치됐다. 9년전에 손 잡았던 남과 북의 관계는 이제는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격동의 6월, 상투적인 표현 같지만 현대사를 관통한 6월은 우리들 각자의 삶에도 알게 모르게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오고 있다.
내일은 호국영령의 뜻을 기르는 현충일이다. 전쟁의 상처로 기억되는 호국보훈의 달이지만 6월은 낮의 길이가 제일 길다는 하지가 들어있는 달이기도 하다. 해가 어둠을 몰아내듯이 보다 희망찬 6월,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6월을 소망해보며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역사를 만드는건 결국 사람의 몫, 우리 자신의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7년전 월드컵 응원가가 넘쳐났던 서대전 시민 광장에 올해는 국화와 촛불의 행렬이 이어졌다. 흐르는 세월 속에 386이 486이 되고 사람은 누구나 변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자던 그 마음만은 잊지 않기를, 희망의 6월을 꿈꾸며 두손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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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편집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