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공주인절미와 대전시치미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공주인절미와 대전시치미

  • 승인 2009-09-16 18:58
  • 신문게재 2009-09-17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관용표현에 ‘말짱도루묵’이 있다. ‘묵’ 맛을 본 선조가 은어(銀魚)라 했다가 나중 먹으니 임진왜란 피란길의 그 맛이 아니라 ‘도루묵’이라 명했다는 고사는 교과서에도 실렸지만 옛 문헌에는 ‘돌목’으로 나와 ‘도로(다시)’와 무관하다. 돌가자미, 돌붕어처럼 거칠고 품질 낮아 ‘돌’이라는 요소가 붙은 구조다.


중도일보에 며칠 전 소개된 인절미의 유래도 좀 비슷한 데가 있다. 공산성 쌍수정 아래 ‘인절미의 고향’ 안내판은 자세함을 넘어 동화책을 읽는 듯하다. 이괄의 난 때 한양이 점령당하자 공주로 피신한 인조가 먹고 “임씨라… 그것참 절미로다” 해서 임절미(任絶味)가 되고, 인절미로 됐다는 언어학적 근거까지 시시콜콜 곁들여 있다.

공주인절미는 백제문화제 때 썼던 754m짜리가 국내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잡아당겨 자르는 떡이라 인절병(引切餠, 인절미(引截米)로 적는다고 애써 내력을 무시할 일은 아니다. 떡이름 하사 이전에 떡이 있었듯 행주치마도 행주대첩 이전에 있었다, ‘거덜나다’의 ‘거덜’은 사복시라는 관청에서 말을 맡던 하인이었다, ‘구이’는 수라상의 고기나 생선을 구운 거였다, 이런 식으로 올라가면 한도 끝도 없다.

미스김, 미스리가 있는 역전다방, 샘다방의 ‘다방’은 이래봬도 차(茶)를 담당하던 궁중관청이었다. 매 잡는 관청 ‘응방도감’이 있었다면 말 다했고, 오늘은 ‘시치미’나 붙잡고 늘어지련다. 좋아한다고 마음을 털어놓아도 찻잔만 바라보며~. 소위 ‘뽕필’인 ‘시치미’의 가사처럼, 애타는 내 마음 알고서도 모른 체하면 얄미운 시치미다.

내숭이나 생청과 어감이 다르면서 여성에게 더 잘 어울리는 미묘한 이 말! 인도대륙 같은 정열의 30대, 북아메리카의 원숙기인 40대, 쇠퇴 일로의 유럽대륙인 50대, 시베리아 허허벌판처럼 주소만 덩그런 60대나 이런 시치미가 남았다면 그래도 젊다는 뜻이다.

그 옛날, 대광우리 철철 넘치는 게 성기라는 사연도 모르고 도라지타령을 하던 쑥스러운 입들, 너도 총각 나도 총각 하나씩 안고 에헤야 군밤아, 알지 못할 군밤타령을 열심히들 따라 불렀지. 공주 정안 군밤처럼 고소한 성적 감정의 비유라고 자수했던들 어디 음악책에나 실렸을까? 우리 모두는 원작자의 시치미에 놀아났다.

‘시치미’는 매의 꽁지에 매단 쇠뿔 이름표다. 이름표를 단 매가 날아들면 닭값이나 받고 주인에게 돌려줬는데, 견물생심의 양심불량이 혹간 있었다. 꽁지에 매단 시치미를 뚝 잡아떼고서 말이다. 시치미가 그렇듯이 보라매도 몽골어(색깔이름, poro)의 합성이다. ‘옹골지’라는 식당, 야무지게 잘해낼 때 쓰는 ‘옹골차다, 옹골지다’조차 몽골과 연관 있다.

배철수와 구창모부터 연상되는 ‘송골매’도 몽골말 ‘송고르’가 발원이다. 매 상납을 위해 귀송골, 거졸송골, 저간송골, 거거송골 등의 전국 수배령이 내려지던 시절은 역사 속 상상으로 족하다. 매사냥 기능을 보유한 프랑스, 벨기에, 체코 등 11개 나라 공동으로 대전 매사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사실이 그보다 중요하다.

고려응방과 국내 유일무이의 전통 매잡이가 있는 대전이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매잡이 본고장으로 주목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껑충껑충 잔솔밭 꿩을 쫓는 ‘북나들이’, 식장산 어디선가 수직으로 솟구치는 ‘봉솟굼’, 대전 하늘 휘저어 낚아채는 ‘공중잽이’…. 언제나 볼 수 있을까? 인간이 영악하면 자연도 영악해진다는데, 매들은 얼마나 그악스러워졌을까? /최충식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설동호 체제 마무리…오석진號 대전교육, 무엇이 달라질까
  2. 잇단 비위 문제터진 대전경찰… 수사권 재편 과정 하락한 신뢰도 문제
  3. [한화에어로 참사] “사람은 안 늘고 일만 늘었다”…원가 절감 기조 도마 위
  4. 한화에어로 참사 일주일 만에 아워홈 용인공장서도 끼임 사고
  5. 민선 4대 세종시의회 10일 개회… 유종의 미 거둔다
  1. 대전국토청 ‘2026년 상반기 충청권 교통안전협의체’ 개최
  2. '반국가단체' 몰렸던 청람회… 대전지검, 45년 만에 무혐의 처분
  3.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4. 국방과 우주과학 기술과 전문가 대전서 총집합
  5. 대전시장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및 전체회의

헤드라인 뉴스


삼전·하닉 충청권 투자 저울질…민선 9기 선제대응 시급

삼전·하닉 충청권 투자 저울질…민선 9기 선제대응 시급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충청권 투자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지역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민선 9기 시도지사 당선인들의 선제 대응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반도체 투톱으로 글로벌 메모리 대표 기업의 투자를 유치할 경우 충청권이 한국 경제 견인을 위한 신성장 엔진으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기업 투자 유치 여부는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이 사실상 제동이 걸린 가운데 지역 미래 발전을 위한 중대 변곡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전력투구가 요구된다. 10일 정치권과 산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와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도..

세종 첫 `Ready korea` 훈련…"열차 탈선에 항공유 폭발"
세종 첫 'Ready korea' 훈련…"열차 탈선에 항공유 폭발"

세종지역에서 처음으로 범정부 합동 복합재난 훈련 '레디 코리아'(Ready korea)가 실시됐다. 집중호우로 인한 열차 탈선과 이에 따른 폭발·누출 사고를 전제로 훈련이 진행됐는데, 대형·복합재난에 대한 지역 내 첫 범정부 대응체계 점검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번 훈련에는 국토교통부 등 중앙부처·기관과 세종시, 세종소방본부, 세종경찰청, 세종충남대병원,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대한적십자사, 32사단 등 25개 관계기관이 참여했다. 레디 코리아 훈련은 2023년 경기 성남 율현터널 고속철..

`대통령 세종 집무실` 당선작, 44일째 깜깜이… 재공모하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당선작, 44일째 깜깜이… 재공모하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건립이 2029년 8월 이후로 지연될 흐름에 놓이고 있다. 대통령실과 행복도시건설청간 조율 절차가 원활치 않으면서, 세종시와 지역 정치권의 능동적 대응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집무실 건립안은 문재인·윤석열 전 정부를 거치며 2027년 하반기 완공 목표로 제시됐으나, 정치적 격랑 아래 2030년 이후로 미뤄지는 수순을 밟아왔다. 새 정부 들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통해 다시 일정을 앞당기겠다는 뜻을 피력하면서, 상황은 달라지는 듯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임기 말인 2029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 놀이기구로 날리는 더위 놀이기구로 날리는 더위

  •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 ‘무럭무럭 자라거라’ ‘무럭무럭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