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독배 들고, 러브샷 하고…

  • 오피니언
  • 데스크시각

[김학용]독배 들고, 러브샷 하고…

[중도시평]김학용 논설위원

  • 승인 2009-09-22 15:01
  • 신문게재 2009-09-23 20면
  • 김학용 논설위원김학용 논설위원

▲ 김학용 논설위원
▲ 김학용 논설위원
‘러브샷’이 항상 좋아 보이는 건 아니다. 어색하고 내키지 않는 건배도 있다. 지난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완구 지사에게 권한 러브샷이 그랬다.
지난 16일 이 대통령은 만찬을 겸해 열린 시도지사회의에서 행정도시 공방의 맞수처럼 돼 있는 이 지사와 김문수 경기지사에게 “사이좋게 지내라”며 러브샷을 권했다고 한다. 이 지사가 어떤 표정으로 응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으나 분위기에 맞추는 건배를 거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TV 카메라만 없으면 원수도 금방 형제처럼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정치인들이고, 이 지사 또한 국회의원 출신이어서 ‘행정도시 불가론자’가 돼 있는 김 지사와의 러브샷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도 작금의 상황에선 분명 어색한 건배였다.

그런가 하면 행정도시를 뭉개기 위해 고른 게 분명한 ‘충청총리’는 들어선 안 되는 ‘달콤한 독배(毒杯)’였다. 충청도는 독배와 러브샷에 흔들리고 있다. 충청총리는 행정도시를 없애는 데 앞장서는 처지가 되었고, 지역의 최고 대표자인 이 지사는 행정도시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는 데도 러브샷 한 잔에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정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행정도시는 비효율적”이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그에게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설사 그의 입장이 바뀐다 해도 총리는 어차피 대통령의 아랫사람일 뿐이다. 고향을 팔아서 총리로 들어가는 꼴이 되어 ‘매향노(賣鄕奴)’ 소리까지 듣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는 이 지사가 나서야 할 때다. 그날의 ‘러브샷’이 찜찜했어도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잘못은 세종시 문제를 말하지도 못한 것이다. 이 지사는 그날 대통령 앞에선 행정도시의 ‘행’ 자도 꺼내지 못했다. 본인도 그게 걸렸던지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행정도시의 정당성을 전달했다고 한다.

‘예민한 문제’는 거론하지 말아달라는 청와대 측의 사전 주문 때문이었다고 해도 이 지사의 그날 `침묵'은 충남도 대표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충청인의 희망이라던 국가적 사업이 날아갈 판인 데 대통령을 만난 도지사가 러브샷만 하고 돌아올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대통령은 행정도시 문제의 키를 쥔 유일한 사람이다. 행정도시가 다시 논란을 빚게 된 것도 대통령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의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정운찬 총리의 ‘행정도시 수정론’은 곧 대통령의 생각이다. 이 지사가 틈만 나면 맞짱토론을 주문하는 대상이자 ‘정치 스파링 파트너’ 김문수씨는 행정도시에는 아무 권한도 없는 ‘개꾼’이다. 반대론자의 한 명일 뿐이고, 토론의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젠 도지사가 직접 나서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 내 기억으론, 이 지사는 행정도시 문제에 대해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이 대통령에게 이 지사는 늘 ‘착한 이완구’였다. 러브샷이 있던 날의 이 지사의 침묵도 꼭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역 최대 국가적 사업이 변질되는 상황에서 민선도지사가 대통령에게 말도 못 꺼낼 이유가 뭔가? 자칫 도지사가 정부에 밉보여 충남도 행정에 어려움을 겪을까 걱정인가? 그렇다면 행정도시가 날아가는 손실보다 더 큰 게 또 있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정운찬씨처럼 나중 이 대통령 품에 안기려는 생각이 없지 않은 때문인가? 그도 아니라면 내년 공천 걱정 때문인가?

이 지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충청도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평소 ‘정치력 있는 도지사’로 자평하던 이 지사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할 때가 되었다. 도지사는 충청 도민과 함께 행정도시 사수를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 외자유치도 좋지만 지금은 외국에 나다닐 때가 아니다.

이 지사는 “누구든 행정도시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정치생명을 걸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마찬가지로 이 지사는 행정도시를 지키려면 정치생명을 걸어야 한다. 행정도시를 축소하려는 그 어떤 세력에도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설동호 체제 마무리…오석진號 대전교육, 무엇이 달라질까
  2. 잇단 비위 문제터진 대전경찰… 수사권 재편 과정 하락한 신뢰도 문제
  3. [한화에어로 참사] “사람은 안 늘고 일만 늘었다”…원가 절감 기조 도마 위
  4. 한화에어로 참사 일주일 만에 아워홈 용인공장서도 끼임 사고
  5. 민선 4대 세종시의회 10일 개회… 유종의 미 거둔다
  1. 대전국토청 ‘2026년 상반기 충청권 교통안전협의체’ 개최
  2. '반국가단체' 몰렸던 청람회… 대전지검, 45년 만에 무혐의 처분
  3.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4. 국방과 우주과학 기술과 전문가 대전서 총집합
  5. 대전시장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및 전체회의

헤드라인 뉴스


삼전·하닉 충청권 투자 저울질…민선 9기 선제대응 시급

삼전·하닉 충청권 투자 저울질…민선 9기 선제대응 시급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충청권 투자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지역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민선 9기 시도지사 당선인들의 선제 대응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반도체 투톱으로 글로벌 메모리 대표 기업의 투자를 유치할 경우 충청권이 한국 경제 견인을 위한 신성장 엔진으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기업 투자 유치 여부는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이 사실상 제동이 걸린 가운데 지역 미래 발전을 위한 중대 변곡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전력투구가 요구된다. 10일 정치권과 산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와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도..

세종 첫 `Ready korea` 훈련…"열차 탈선에 항공유 폭발"
세종 첫 'Ready korea' 훈련…"열차 탈선에 항공유 폭발"

세종지역에서 처음으로 범정부 합동 복합재난 훈련 '레디 코리아'(Ready korea)가 실시됐다. 집중호우로 인한 열차 탈선과 이에 따른 폭발·누출 사고를 전제로 훈련이 진행됐는데, 대형·복합재난에 대한 지역 내 첫 범정부 대응체계 점검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번 훈련에는 국토교통부 등 중앙부처·기관과 세종시, 세종소방본부, 세종경찰청, 세종충남대병원,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대한적십자사, 32사단 등 25개 관계기관이 참여했다. 레디 코리아 훈련은 2023년 경기 성남 율현터널 고속철..

`대통령 세종 집무실` 당선작, 44일째 깜깜이… 재공모하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당선작, 44일째 깜깜이… 재공모하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건립이 2029년 8월 이후로 지연될 흐름에 놓이고 있다. 대통령실과 행복도시건설청간 조율 절차가 원활치 않으면서, 세종시와 지역 정치권의 능동적 대응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집무실 건립안은 문재인·윤석열 전 정부를 거치며 2027년 하반기 완공 목표로 제시됐으나, 정치적 격랑 아래 2030년 이후로 미뤄지는 수순을 밟아왔다. 새 정부 들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통해 다시 일정을 앞당기겠다는 뜻을 피력하면서, 상황은 달라지는 듯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임기 말인 2029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 놀이기구로 날리는 더위 놀이기구로 날리는 더위

  •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 ‘무럭무럭 자라거라’ ‘무럭무럭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