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저것 팔아 술 먹을까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저것 팔아 술 먹을까

  • 승인 2009-10-14 18:14
  • 신문게재 2009-10-15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조선사람 이덕무는 『맹자』를 팔아 밥 해먹고 유득공에게 휘리릭 달려간다. 자랑을 들은 유득공, 『좌씨전』을 팔아 술 사준다. 하긴, 밤낮 좌씨전 외고 맹자 읽으면 밥 나오나, 술 나오나? 논배미를 놋요강과 바꾼 내 친구 할아버지의 분방호탕한 일화도 여기서 빼면 울고 간다. 변변찮은 용돈을 아껴 수만 권 장서가가 되어본 나는 이런 ‘교환’의 전설들을 믿는다.


 모든 걸 경험하고 보는 견자(見者)가 되겠노라고, “구멍 난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나는 떠났네” 하며 랭보의 방랑을 흉내내보던, 배부르고 의기양양하던 시절의 후일담이다. 위의 경우 책은 어엿한 육신의 양식도 되며, 서점은 양식 저장고지만, 그저 쌓아놓는(stock) 곳이 아니라 지식과 문화가 흐르는(flow) 곳이다. 쌀집과 서점은 다르다.

 이러한 차별화를 못 견디고 무너져 내린 중부권 서점의 맏형, 1957년생 대훈서적의 몰골에서 쑹덩 잘려나간 한밭 정신의 기둥 하나를 본다. 화장실같이 익숙한 공간들, 베스트셀러 코너에 난생처음 진열됐던 내 책들도 안됐다. 독자인 소비자는 역시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2만원과 1만9900원의 차이를 느낀다. 홈쇼핑에서처럼 ‘얄짤없이’ 9자 돌림 29900원, 59900원을 2만원대, 5만원대로 여기는데, 바로 왼쪽자리 효과다.

 숫자가 시작되는 맨 왼쪽에 집중하면 책값 10% 할인에 쿠폰과 마일리지의 간접 할인은 대세를 가름할 큰 차이다. 1만원짜리 단행본을 9900원도 아닌 9000원에 파는 우세한 유인전략에 힘입어 온라인서점은 매출 점유율을 30%로 늘렸다. 읽기는 오프라인서점에서 공짜 해결하고 단수가격을 활용한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산다. 흔한 충동구매조차 책에는 예외다.

 대훈의 붕괴는 따라서 천안점 실패, 시청점 등 무리한 영업장 확대에 기인한 자금 경색에도 있지만 거대자본과 인터넷서점의 위세에 떠밀린 이익구조 악화 구조가 원인이다. 40년 전통의 대전 문경서적 부도 때는 원도심의 급속한 공동화도 이유로 들었다. 당시 소록도병원에 내 책이 들어간 감개에 더해, 내게 손실을 안긴 문경서적 부도를 ‘잊을 수 없는 작은 사건’들로 서문(序文)에 덧붙이기도 했다. 졸저 재판(再版) 발행 무렵이다.

 2003년, 그해 늦봄의 악몽은 이 가을에 재연된다. 대전 롯데백화점 내 세창문고와 심지어 직영점을 거미줄처럼 늘리는 교보문고마저 대전점 폐점을 단행했다. 경제논리가, 시장이 제일 유력한 검열장치임을 증명하듯 부산 청하서림·면학도서, 광주 삼복서점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문 닫았다. 위탁거래와 현금거래 등 복잡한 도서 유통 체계와 도서정가제로 밀치락달치락하는 사이, 지역 서점은 하루가 멀다 하고 도산한다.

 12년 전 5000개 넘던 전국 서점 수가 이제 2000개 이하로 줄었다. 출판유통 바로잡기는 독서문화가 영상문화에 치여 설 땅이 준 것과는 다른 각도이다. 딱하지만 대훈 사태에 뾰족한 수단과 방법은 없다. 그럴지라도 알게 모르게 독서 편식을 조장한 일부 단체의 책읽기 권유는 감이 떨어진다. 모금 운운의 ‘구서운동(救書運動)’은 서점업계 생리와 소비자 심리를 꿰뚫지 못한 계몽적 방식이다. 지역 기업 인수도 사실은 이상론에 불과하다.

 이렇게 진퇴양난일 때 사람들은 기적을 꿈꾼다. 빨간 클립을 15번 교환만에 2층집으로 물물교환한 캐나다 청년, 전답과 놋요강을 맞바꾼 할아버지의 모험담을 빌려서라도, 대훈서적이 정보의 맛과 장소성을 깨우치고 우리 정신의 틈새를 막아주며 거기 있길 바란다. 세계의 패러다임, 인식론적 틀이 바뀐 디지털시대에도 라디오만한 영화 없고 책만한 라디오 없다고 믿는 애독자로서, 그런 기적이라도 좋겠다. /최충식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설동호 체제 마무리…오석진號 대전교육, 무엇이 달라질까
  2. 잇단 비위 문제터진 대전경찰… 수사권 재편 과정 하락한 신뢰도 문제
  3. [한화에어로 참사] “사람은 안 늘고 일만 늘었다”…원가 절감 기조 도마 위
  4. 한화에어로 참사 일주일 만에 아워홈 용인공장서도 끼임 사고
  5. 민선 4대 세종시의회 10일 개회… 유종의 미 거둔다
  1. 대전국토청 ‘2026년 상반기 충청권 교통안전협의체’ 개최
  2. '반국가단체' 몰렸던 청람회… 대전지검, 45년 만에 무혐의 처분
  3.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4. 국방과 우주과학 기술과 전문가 대전서 총집합
  5. 대전시장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및 전체회의

헤드라인 뉴스


삼전·하닉 충청권 투자 저울질…민선 9기 선제대응 시급

삼전·하닉 충청권 투자 저울질…민선 9기 선제대응 시급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충청권 투자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지역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민선 9기 시도지사 당선인들의 선제 대응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반도체 투톱으로 글로벌 메모리 대표 기업의 투자를 유치할 경우 충청권이 한국 경제 견인을 위한 신성장 엔진으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기업 투자 유치 여부는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이 사실상 제동이 걸린 가운데 지역 미래 발전을 위한 중대 변곡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전력투구가 요구된다. 10일 정치권과 산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와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도..

세종 첫 `Ready korea` 훈련…"열차 탈선에 항공유 폭발"
세종 첫 'Ready korea' 훈련…"열차 탈선에 항공유 폭발"

세종지역에서 처음으로 범정부 합동 복합재난 훈련 '레디 코리아'(Ready korea)가 실시됐다. 집중호우로 인한 열차 탈선과 이에 따른 폭발·누출 사고를 전제로 훈련이 진행됐는데, 대형·복합재난에 대한 지역 내 첫 범정부 대응체계 점검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번 훈련에는 국토교통부 등 중앙부처·기관과 세종시, 세종소방본부, 세종경찰청, 세종충남대병원,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대한적십자사, 32사단 등 25개 관계기관이 참여했다. 레디 코리아 훈련은 2023년 경기 성남 율현터널 고속철..

`대통령 세종 집무실` 당선작, 44일째 깜깜이… 재공모하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당선작, 44일째 깜깜이… 재공모하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건립이 2029년 8월 이후로 지연될 흐름에 놓이고 있다. 대통령실과 행복도시건설청간 조율 절차가 원활치 않으면서, 세종시와 지역 정치권의 능동적 대응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집무실 건립안은 문재인·윤석열 전 정부를 거치며 2027년 하반기 완공 목표로 제시됐으나, 정치적 격랑 아래 2030년 이후로 미뤄지는 수순을 밟아왔다. 새 정부 들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통해 다시 일정을 앞당기겠다는 뜻을 피력하면서, 상황은 달라지는 듯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임기 말인 2029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 놀이기구로 날리는 더위 놀이기구로 날리는 더위

  •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 ‘무럭무럭 자라거라’ ‘무럭무럭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