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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단(杏壇)은 은행나무로 쌓은 단이다. 유교교육의 상징인 행단은 논어 전편을 눈 씻고 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데다 `살구 행(杏)' 자가 살구와 은행에 아울러 쓰여, 행단이 살구나무 단이라는 일설이 예부터 힘을 잃지 않고 있다. 행인(杏仁)은 살구씨, 행자목(杏子木)은 은행나무 목재다. 지명에 흔한 행촌(杏村)은 살구나무마을이거나 은행나무마을이다. 은행은 `은빛 살구', 영어의 `실버 애프리캇(silver apiricot)'도 같은 의미다.
어쩌면 유가의 행단은 실제 쌓은 단이 아닌, 상징화된 고대(高臺)일 수도 있다. 그보다 지금 짚으려는 게 학행과 덕행인데 무엇이면 무엇하랴. 탐구하되 탐닉하면 그 노예라는 사실도 챙겨본다. 천하를 얻자면 스승 1명, 책사 1명, 충복 3명이 필요하다는 말도 버리긴 아깝다. 대통령을 봐도, 한국시리즈를 봐도 그렇고,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다. 진짜를 알아야 가짜도 아는데 진짜를 외면하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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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말했듯이 암이냐 수냐, 살구냐 은행이냐보다 그 아래서 깨우치는 행단학습법의 실체가 종요롭다. 현대사회에 부족한 부분도 그런 걸 거다. 기생오라비 같은 아파트를 쑥쑥 올리고 요녀 같은 냇물을 철철 짓지만 기다림의 미학, 천년의 사랑이 거기 깃들 리 없다. 지구가 이야기 중심으로 돈다는 설동설(說動說)을 신봉한다면 그렇다. 전우치전의 전우치(田禹治)가 심은 논산 성동 은행나무가 정겨운 건 그런 이유다.
정신이든 실체든, 이제 은행나무를 심어야겠다. 달콤한 언어들, 오해와 파벌, 신종플루의 공포, 고양이 꼬리같이 쳐드는 의심을 거두고 허적한 마음자리에 딱 한 그루만 심는다. 그 은행나무 갈피에서 행간(行間)을 읽을 줄 안다면 책은 단지 참고서적에 불과하리라. 그런 생각으로 자신만의 행단을 쌓는다면 가는 가을이 덜 쓸쓸하겠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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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