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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규 문화교육팀장 |
정말 이런 생각이 고루한 생각일까. 아예 말이 없으니 글로 표현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반문할 수도 있겠다.
또 손짓, 발짓으로 자신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하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래저래 답답함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소리가 없는 세상은 어떨까. 아무소리도 없는 세상, 역시 생각하는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더군다나 말은 소리로 전달되어지는데 소리가 없다면 당장 무슨 수로 말을 전달할 수 있을까.
말과 소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다. 그런데 두 낱말의 의미를 찾아들면 말과 소리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말〔言〕을 정의해 보자. 말은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다. 곧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목구멍을 통해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를 가리킨다고 사전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비슷한 말로 어사(語辭)가 있다. 또 다른 뜻으로는 음성 기호로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행위. 또는 그런 결과물이다. 이는 소리와 비슷하다.
그럼 소리는 뭘까. 소리는 탄성체를 매질로 전파되는 파동을 가리키며 음(音) 또는 음파(音波) 라고 한다. 좁은 뜻으로는 사람의 귀에 들리는 것을 가리킨다. 말은 생각이나 느낌이지만 소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사람의 귀에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말과 소리가 구별되어져야 한다.
“말과 소리는 다르다. 말은 스스로 의미를 담고 있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하는 것이고 소리는 그저 스쳐가는 바람결이다.”
굳이 김수환 추기경께서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중 `말과 소리'를 머릿 속에 떠올리지 않아도 말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권을 비롯한 온 나라가 말인지 소리인지 구별조차 못하고 시끄럽다. 세종시 문제가 그렇고, 4대강 살리기 계획도 그렇다. 또 사교육비 등 교육전반에 걸친 현안들이 그렇다. 한 쪽은 말을 하고 또 다른 한 쪽은 소리로 받아 들인다. 그러다 다른 한 쪽이 말을 하면 이번에는 정작 말을 했던 한 쪽이 소리로 대꾸한다. 한 쪽은 스스로 의미를 담고 있는데 다른 한 쪽은 바람결로 생각하니 시끄럽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말〔言〕은 소통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말이 없는 세상과 뭐가 다를까. 말〔言〕과 말〔言〕이 통해야지 쌍방간 대화가 이뤄진다. 말〔言〕과 소리는 일방일 뿐이다.
말〔言〕은 약속이다. 약속은 곧 실천을 의미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지기 위해 있는 것이지 깨지라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이 아닌 소리는 바람결에 지나치는 소리로 밖에 간주될 수 밖에 없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신뢰와 믿음을 주지 않는 말에서 어떻게 천냥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지나쳐 가는 바람결같은 말에 천냥 빚을 갚을 수 있을까? 물론 말도 안된다고 할게 뻔하다.
그런데 지금 소리로 천냥 빚을 갚으려고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약속은 온데 간데 없고 언제 그랬냐는 식의 바람결보다 더 무서운 소리로 말이다. 당리당략도 좋다. 정쟁도 좋다. 그러나 소리로서는 곤란하다. 말〔言〕을 두고 소리로 하는 것은 시간낭비는 물론 한낱 소모전에 불과하다.
서로간 잘잘못을 따질 때는 일단 말〔言〕이 통해야 한다. 말이 아니면 차라리 가만 있으면 둘째는 간다. 서로 옳다고 주장하면서 일방의 소리로 내 지를땐 싸움밖에 안된다. 옳고 그름은 소리가 아닌 말이 앞서야 한다.
세종시가 정부의 뜻에 반한다면 왜 반하는지 논리로 설명되어져야 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지금 당장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 그 역시 논리로써 설명되어져야 한다.
가만히 있는 국민을 팔아서 당연시 하는 것은 곤란하다. 정치권은 국민의 심부름꾼을 자처한다면 철저히 국민의 심부름에 응해야 한다. 국민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귀담아 들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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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