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공생하는 솔로몬 해법은
“저 사슴=말[馬]이야” 억지 버리고
‘행복하지 않은 도시’ 장막 걷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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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어를 접하는 순간, 우선 4대강과 세종시를 떠올렸다. 교수들의 눈높이에 무릎을 치면서 아쉬움도 고개를 든다. 이왕 4대강, 세종시가 들어 있으니 반계곡경(盤溪曲徑, 서려 있는 계곡과 구불구불한 길)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반계’는 강을, ‘곡경’은 세종시를 바로 대입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무엇이 ‘반계’이고 ‘곡경’인가. 길[道]은 구부러지지 않은 곧바른 길, 어정쩡한 길이 아닌 진정한 길을 가리킨다. 정도(正道)가 없는데 중도(中道)가 있을 턱이 없다. 사생관두(死生關頭, 죽느냐 사느냐의 고비)의 세종시 정국은 말할 나위 없다. 수정 강행군에 나선 정운찬 총리를 보니 조금은 시시한 영감(?)이 스쳐간다.
때는 석기시대다. 동굴 무리 중 앞선 동굴인이 쉿, 신호를 보낸다. 모두 긴장한 가운데 선두에 선 사내, 일진광풍의 대포방귀를 분사한다. 일동, 배꼽을 싸쥐며 웃는다. “시원하겠습니다!” 와중에 추임새 넣고 코 벌름거리는 세력은 자고로 꼭 있다. 방귀는 방귀일 뿐이니라, 선언이라도 하면 후련하겠다.
태생적으로 행정도시(=세종시)는 행정수도 이래 심산궁곡(深山窮谷, 깊은 산속 험한 골짜기) 같은 데서 출발했다. 그리 산뜻하지 못하나마 국가 미래의 옷을 입었지만 기어이 위기가 왔다. 세종시를 ‘세종공단’화하는 동족방뇨(凍足放尿, 언 발에 오줌 누기)의 가설들에, 중앙집권 치하의 동력이던 집중화 효율에, 편익이 거세된 반쪽짜리 비용편익분석에 절반의 진실이 숨겨진 상태다.
가장 큰 결함은 법 아닌 힘에 의해 작동된다는 점. 수정 명분에 가려 공론(公論)이든 충청도 향론(鄕論)이든 그 만드는 과정이 생략됐다. 공론이 왕의 사론(私論)이거나 재상들 의견이던 조선시대 저리 가라는 대목이다. 당정 따로 주민 따로, 과잉의 애국주의, 다름을 향한 분노와 증오의 수사학이 겉돈다. 말로는 충청민심 섭섭잖을 카드를 찾겠다면서 민심 없는 민심, 대화 아닌 대화만 나뒹군다.
구복지루(口腹之累, 먹고살 걱정) 때문인지, 세종시 편입 자체를 원치 않는 부용면 이장 몇몇 모아 박수 받고 ‘충청권 온도차’로 선전하는 것도 샛길[방기]이다. 전 국토를 한 캔버스 삼아 그리는 사업임을 철석같이 믿고 조상묘까지 내준 진짜 주민, 실제 민심은 요지부동인데 변화했다고 믿는 제3자 효과가 굽은 길[곡경]이다. 구지부득(求之不得, 아무리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함)인 충청 민심의 이유가 여기 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원래 세종시는 중앙권력을 약화하는 환부작신(換腐作新, 낡은 것을 바꿔 새것으로 만듦)의 분권화 차원을 빼고 논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교묘한 견강부회(牽强附會, 이치에 안 맞는 말을 유리하게 끌어 붙임)로 부당함이 정당함을 밟는다. 법이 있는데 편법이 자행되며 법을 불온시한다. 지방화의 과도기를 거쳐 지방시대로 가자는 야무진 꿈은 수직 위계적 사고에 치여 주객전도(主客顚倒), 객반위주(客反爲主)가 됐다.
주민들도 아는 사실이다. 알기에, 세종시를 정치경제학적 골칫거리로 만들고 청하는 대화엔 시큰둥하다. 옷고름 푼다고 가슴속 음심(淫心)이 보이냐는 반응이랄까. 세종시민이 될 연기군민들은 어제도 ‘행정도시 백지화 저지’를 위해 궐기했다.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 등 거창한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우김)에 대한 거부 메시지 같다. 물론 원안(原案)에는 옥석혼효(玉石混淆, 옥과 돌이 뒤섞임)가 있다. 그 절장보단(絶長補短, 장점으로 단점을 보충함)이 ‘플러스 알파(+a)’인 것이다.
행복도시는 그러나 ‘행복한 도시가 아니다’(Un-Happy City ※필자 영어)라는 마케팅 캠페인에 전면 가려져 있다. 그 장막을 걷고 백일청천(白日靑天, 밝은 해가 비치는 푸른 하늘)의 새해를 맞기를 염원한다. 충청의 마음이다. 샛길, 뒤안길, 굽은 길 말고 천하 대도를 걷자. 정당한 길을 당당히 가라. 행불유경(行不由徑, 길을 가는데 지름길을 취하지 않고 큰길로 감)을 세종시 해법이 담긴 사자성어로 필자가 추천한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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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위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