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원’보다 ‘의원’으로 어필해야
암탉이 울면 흥한다, 신념이라도’…
현실은 하이힐 신고 사다리 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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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51~479년 세상에 다녀간 공자를 주제넘게 변호하는 이유는 선거판에서 특히 반여성적으로 해석됨을 경계하고자 함이다. 시대도 현실도 변했다. 여성인권 상황은 마치 우리 경제처럼 압축성장을 해왔다. 법과 제도 면에서나 사회 각 분야의 활약상에서 괄목할 진척을 보인 것만은 틀림없다. 교사 사회에는 여초(女超) 현상으로 남교사모임이 생겼다 한다. 그것은 숫자의 증가만 의미하지는 않을 터이다.
그러나 미미한 분야도 많다. 가부장제 그늘이 살짝 드리워진 지방자치의 영역에서도 여성은 과소대표다. “여성들이 안 찍어줄 것 같아 출마 못 하겠다”는 여성도 있다. 연구 결과, 여성 당선자의 반수 이상(62.86%)은 이 말을 부정한다(낙선자의 3/4은 긍정하지만). ‘여성의 적(敵)은 여성’은 지방선거의 장에서는 빗나간 통설이다. 발목만 보여도 유혹이라던 롱스커트 세대의 변설 같은 것이다.
이뿐 아니다. 당선된 여성의 71.4%(낙선 여성의 55.56%)는 남성이 호의적이라고 봤다. 여성 그 자체가 핸디캡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부터 국회의원 선거구마다 1명 이상 여성 후보를 할당하도록 했다. 이 같은 ‘공천 특혜’에 여성계가 ‘지방선거 남녀동수연대’까지 짰지만 나서는 사례는 드물고 비례대표만 선호한다. 그럼에도 여성 출마자가 넉넉잡아 2.6배 늘어날 6·2 지방선거는 정치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
지방자치가 ‘정치’보다 ‘살림’이란 관점에서는 생활정치, 일상의 정치로서의 지역정치와 여성의 역할을 짝지을 수 있다. 교육, 복지, 지역문화, 주거환경, 가족정책 등 주요 사무는 여성의 관심사와 상당 부분 겹친다. 지역 대표가 정치가이기보다 주민에 봉사하는 공복이라는 관념(Antolini)에서 보면 더 말할 게 없다. 이것만으로 물론 여성의 지방자치 진입의 필요성과 당위성이 설명되지 않는다.
2년 전 뉴욕타임스는 세계사를 바꾼 지난 20세기의 베스트 패션으로 ‘지퍼’를 선정했다. 입는 문화보다 벗는 문화, 즉 “(지퍼는) 빠르고 열정적인 섹스를 위한 것”이었다는 앨리슨 루리는 지퍼를 성 문화의 혁신을 가져온 의복의 ‘언어’로 간주했다. 나는 지난 20세기의 가장 큰 변화로 1991년 이래 점화된 여성의 지역정치 참여를 꼽는다. 지퍼에 버금가는 지각변동을 부를 것이라는 희망을 깔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연고주의, 조직선거 등 정치적 대표성 확장에 여성이 값해야 할 진입 장벽은 높다. 지역 정당 관계자들은 “여성에게 중요한 건 공천이 아니라 당선”이라고 한다. 지당하지만, 여성이 공천받기가 실제 당선보다 어렵다는 제도적 한계가 옛말이 되는 것만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이런 유의 내 긍정론은 여성 공천을 안 주는 정치 엘리트들의 음모가 옅어지고 있다는 밝은 전망에서 우러난다.
이렇게 여성의 지방의회 진출을 진정 아름다운 말로써 환영하는 것은 주변적인 안건에 머물렀던 주민생활과 밀착된 이슈가 지역정가의 주요 이슈를 선점하리라는 기대에서다. ‘여성으로서’ 남성과 같은 ‘지배’가 가능함을 성 평등적, 또는 젠더 중립적이거나 몰성적(沒性的)으로 보여주는 출마에 그친다면 선거 전략 측면에서는 부담스럽다. ‘여성의원’이 아닌 ‘의원’을 꿈꾸고, 지역 유권자의 선택 기준 또한 여성인지 아닌지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성 문제가 생애환경이 다른 여성에 무슨 문제 있는 것처럼 비쳐져서는 아니 될 일이다. 민주주의와 지방자치가 전혀 상관없다고 떠드는 학자도 있다. 여성의 지방의회 참여를 개념적·철학적으로 파고들면 같은 비관론이 가능하다. 따라서 왜 여성이어야 하는지, 상황에 따라서는, 암탉이 울어야 집안이 흥한다는 것까지 보여줘야 한다. 역시 여성에게 지방선거는 하이힐 신고 사다리 올라가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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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