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얼음남녀'들의 금빛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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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얼음남녀'들의 금빛 유혹

  • 승인 2010-02-17 12:22
  • 신문게재 2010-02-18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개콘'을 보다 식구들이 한꺼번에 격조를 잃어버리고 빵 터진 부분이 있다. 코너 중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발작적인 대사다. 승자 독식사회를 향한 이유 있는 주정 앞에 그저 배꼽을 잡는다.


승자의 여유 앞에 역설적이리만치 평온이 느껴지는 아침이다. 이상화, 모태범, 이정수의 동계 올림픽 승전보가 정치의 무기력함에 찌든 국민에게 생동감 있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우리처럼 은메달 10개보다 금메달 1개를 쳐주고, 국가별 종합순위가 금메달로 깔끔히 정리되는 나라도 드물다. 모든 메달은 소중하다니, 얼마나 위선적으로 들리는가.

선수 입장에서는 그래서 한없이 부담스럽다. 피겨의 전설 미셸 콴은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에게 금메달 부담감을 잊고 경기 자체를 즐기라고 했다. 콴, 그녀가 한마디한다. “이길 때가 있으면 질 때도 있는 게 인생”이라고. '여자 싱글 금메달 후보 0순위=김연아'의 압박감이 마술처럼 스러져버릴 만한 조언이다.

현실은 다르다. 금메달에는 영웅 대접, 못 따면 죄인 취급이다. “언론 무관심에 '오기'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사상 처음) 금메달을 땄다”는 모태범을 보라. 세계스프린트선수권 종합 1위를 하고도 김연아에 가려 서운했을 이상화를 보라. 신문 스포츠면에 갈 것이 메달 색이 바뀌면 1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오기든 과시욕이든 이롭게 승화해야 이롭다.

사족을 달면, 인간의 과시욕>성욕이 성립한다. 배우 카메론 디아즈와의 하룻밤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중 어느 쪽을 택할까. 둘 다 사양하겠다? 사람들은 자신이 디아즈와 식사하는 레벨임을 공개하는 것을 은밀한 정사보다 가치 있게 여긴다. 만민이 지켜보는 중에 메달을 목에 거는 기분처럼(?).

행복지수로 치면 금 다음이 동일 때가 많다. 금은 금이어서 행복하고 동은 못 딸 뻔하다 따니 행복하다. 2등은 1등이 기준이지만 3등은 자기 밑 전체를 준거 삼는다. 은메달은 동메달보다 스트레스가 더하다. 가구소득 증가와 행복도가 비례관계를 그리다 월 500만~600만원에서 주춤 꺾이는 이치도 그렇다. 다음 구간에서 다시 상승곡선이다. '은메달 스트레스' 기제가 작동하는 증거다.

“인생의 비극은 목표에 못 미친 것이 아니다. 비극은 도전할 목표를 갖지 못한 것이다.” 남아공의 외발 수영 선수 나탈리 뒤 투아의 방 벽에 걸린 격문에 힘이 솟는다. 사실 우리는 쇼트트랙 이정수의 금빛 질주도 기억하지만 이호석과 성시백의 날아가버린 메달을 더 기억해야 하는지 모른다. 억울함, 안타까움 때문만일까. '열려라 참깨' 효과를 내는 금메달, 포상금과 병역특례가 따르는 금메달보다 빛나는 노메달도 있을 수 있다.

- 금메달 따면 울 것 같아요.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사상 첫 금 도전에 나서던 이상화의 하루 전 소감이다. 그녀는 어제(17일) 금메달을 땄고, 울었다. 집념, 최선을 다하는 노력도 금메달감이다.

신속하고 정확한 조준 - 도시철도 판암역 화장실에서 만난 익살맞은 경구다. 신속·정확은 중도일보 사시(社是)다. 그리고 빠른 속도를, 그러나 침착함을 유지해야 하는 스피드 스케이팅의 세계다. 밴쿠버의 남은 경기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주렁주렁 감자 달리듯 메달 싹쓸이라도 하길 기원하는 마음이지만 2등·3등, 꼴찌도 기억해야겠다. 꼴찌 주자에 대한 '더 육친애적인, 희열을 동반한' 박완서 식의 갈채는 어렵더라도 말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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