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스펙'이란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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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규]'스펙'이란 이름으로

[중도시감]이승규 교육문화팀장

  • 승인 2010-03-25 14:21
  • 신문게재 2010-03-26 21면
  • 이승규 기자이승규 기자
참으로 요지경속이란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스스로 위안과 이해를 구하려고 해도 금방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 이승규 교육문화팀장
▲ 이승규 교육문화팀장
언제부터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말일까. 요즘들어 '스펙'이란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은 인터넷을 뒤졌다. 그리고 백과사전에서 '스펙'은 지난 2004년 국립국어원에 신조어로 등록된 말로 영어단어 'Specification'의 준말이라는 설명과 함께 구직자들 사이에서 학력과 학점, 토익점수 외 영어자격증, 그외 관련 자격증들을 총칭하고 있다고 풀어 놓았다.

그렇다. 불과 몇년 전부터 '스펙'은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는 대학졸업반 학생들 사이에서 마치 졸업증명서처럼 인식돼왔다. 이른바 취업 3종세트와 취업 5종세트로 불리면서 스펙쌓기 열풍은 대학가의 신풍속도로 빠르게 자리잡아 왔다. 사전적 의미대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금의 '스펙'은 어떤 모습일까? 공룡이 돼있지 않을까. 얼마전 신조어로 등록된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 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는 일부 몇몇에 국한된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점점 길들여져가고 있는 요즘 세태에서 '스펙'은 더 이상 구직자들의 자기소개서를 담당하는 그 무엇을 넘어선 지 오래다.

몇년 전 이맘때 신학기 중학생들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봄의 마법'을 주제로 한 칼럼을 쓴 적 있다.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중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있어 교과환경의 변화에 따른 설렘보다는 짓눌림에 지쳐가는 현실이 마냥 안돼 보여 무거운 책가방 대신 파릇하게 움트는 새싹의 향연을 보며 맘껏 봄의 여유를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던 글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스펙쌓기가 고등학생에서부터 심지어 유치원생까지 경쟁에 뛰어들게 하면서 학창시절은 암울한 겨울일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차라리 그때가 그립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쪽에선 사교육을 전면 없앤다고 호언장담이고 또 다른 한쪽에선 새로운 사교육시장을 수소문하면서 스펙쌓기에 올인하는 현실에서 봄의 여유는 사치일뿐이라는 생각에 멈추고 만다.

누군가 그랬듯이 1등만 기억하는 세태속에서 스펙쌓기는 또 다른 경쟁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유치원부터는 곤란하다. 한창 재롱을 부릴 시절, 무슨 억겁의 죄를 지었다고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짜내다 안되면 부모님 머리까지 빌려서 그러는지….

어디 그뿐인가. 대학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해서 자기만의 독특한 자기소개서 및 포트폴리오 작성을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벌써 전설이 돼버렸다.

이러한 열풍에 이젠 진학코스도 변하고 있다.

그동안 열혈 학부모들이 권장하는 자녀들의 진학코스는 중학교때부터 외국에 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거나 국내 대학에서 외국의 유명대학으로 유학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초등학교 저학년(1~2년)때 어학연수를 나가 국제중을 거쳐 특수목적고나 자립형 사립고를 나와 이른바 SKY에 입학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들은 공부깨나 한다는 학생들이다. 때문에 요즘 어학연수는 초등학교 때 마치는게 정석처럼 돼버렸다.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라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외국으로 유학갔다 다시 국내 대학 '국제학부'로 되돌아오는 코스가 요즘 큰 인기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이 또한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재정적인 뒷받침이 돼야 꿈이라도 꿀 수 있기에 말이다.

이쯤되니 공교육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홀로 헤매는 사이 사(私)교육이 사(死)교육을 부르고 있음을 정부 당국자는 알기나 할까.

그리고 엊그제 뉴스에서 스펙은 스펙일뿐 정작 취업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갈증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라면 스펙쌓기에 올인하고 있는 이들에게 너무 고소하고 얄미운 생각일까. 봄날 다시 마법의 주문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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