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자매'여서 더욱 슬픈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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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자매'여서 더욱 슬픈 이름

  • 승인 2010-03-31 12:43
  • 신문게재 2010-04-01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상승적으로 발달한 말에 '겨레'가 있다. 겨레는 근대에만 해도 친척, 종족에 한정됐으나 지금은 민족, 동족으로 넓혀 쓰인다. '계집 녀(女)'로 배운 기억을 살려보면 알 일이지만 '계집(겨집)'은 '여자'의 통칭이었다가 '아내(처)'로 쓰이더니 이제는 거의 경멸적으로 쓰인다. 의미론에서 보면 '타락적 발달'이라 하겠다.


요즘은 서양에 가면 ①어린이 ②노인 ③여자 ④애완견 ⑤남자가 존중받는 순위라 한다. 옛날과 완전한 역순으로 뒤집혔다는 것이다. 장구한 세월은 말의 의미마저 갈아치운다. 우리가 새신랑 때 처음 듣고 감읍해 마지않는 '서방(書房)'은 고려시대 기관이기도 하고, 남편의 낮춤말이기도 하다. 남자들이여! 처갓집에서 듣는 고색창연한 '○ 서방'에는 될성부른 공부해서 입신출세하라는 모종의 기대치가 숨어 있다. 훗날 '사기 캐릭터'가 될 때 되더라도 가슴 설렌다고?

새로 하는 사극을 보는데, 질리도록 듣고 자란 호칭이 튀어나온다. 다름 아닌 '삼촌'인데, 제주도에서 남녀 구분 없이 부르는 말이라는 자막이 곁들여졌다. '삼촌'은 젊은 남자에 대한 정겨운 부름말일 뿐 아니라, 여자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불러, '영미 삼촌', '미란 삼촌'도 있다.

사내들의 '언니' 호칭을 실로 오래간만에 들은 것도 드라마에서다. 여행 중 비좁은 공간에서 샌드위치를 먹다 보니 오른편 바짝 앞은 점원 아가씨 얼굴이, 정면은 지나치게 큰 TV가 점하고 있었다. TV를 봐야 했다. 남자끼리 서로 '언니'라며 옥신각신하는 장면이 흘러갔다. 이미 막을 내렸지만 내가 느지감치 그 드라마를 본 동기는 배짱과 포용력, 그리고 남자 언니들의 '낯설게 하기' 덫에 걸려든 결과라 해도 좋을 것이다. 남자 사이에 '언니'가 부활한다면 거친 마음성(性)에 부드러운 윤활유가 되고 차별이 줄어들며, 또 재미있어질 것 같다.

언니는 동성(同性)인 손위의 사람을 일컬었다. 큰형을 큰언니, 작은형을 작은언니라고도 했다.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형' 소리 들은 기억으로 미뤄 신기해할 일만은 아니다. 언니와 달리 '누나'는 20세기 바짝 전(1897년)에야 한영자전에 나타난다. 이전에는 평칭의 '누의'와 존칭의 '누의님'만 있었다. '오빠'는 '계집애가 오라비를 부르는 말'로 조선어사전에 보인다.

말의 관계망을 따지면 자매(여자+여자)나 오누이(남자+여자)는 아우, 자매, 동생, 누나를 다 아우르는 '형제'에 종속적이다. 파생의 용례도 자매기관, 자매도시, 자매결연, 자매학교의 자매와 형제지국, 형제애, 형제궁의 형제는 어딘지 달라 뵌다. 국가, 정의, 하늘의 관념이 섞인 형제에서 크기와 통이 더 느껴진다 할까.

그러면 왜 자매결연은 있고 형제결연은 없냐고 반문할 차례다. 한자문화권에서 사물에 관련되면 '자매', 사람과 관련되면 '형제'라는 풀이는 정통하지 않고, 친한 관계의 것들에 'sister'를 붙이고, 자매도시를 'sister city'라 하는 영어의 영향이라 봐야 타당하다. 자매의 관계 맺기란 어쨌거나 예사 인연으로는 안 된다.

비운의 해군 초계함 천안함은 천안시와 자매결연한 사이다. 전례에 따라 붙인 이름이긴 해도 천안시와 천안함이 지난 20년 간 나눈 언니 동생의 교분자별(交分自別)함을 생각하니 비통함이 더한다. 천안함과 같은 계통, 같은 급으로 군산함, 경주함, 제천함, 진주함, 여수함, 순천함, 공주함, 원주함, 대천함 등이 있다. 천안함을 깊이 애도하며 이들 자매함들의 무운 장구를 빌어본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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