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 ‘이야기 경제’ 옷 입고
문화원형서 답 찾는 명품가도 열풍
스토리텔링·프로그램으로 승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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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들은 특징이 있다. 얼마간은 문화원형과 연계한 이야기 길(story road)이라는 점이다. 나름대로 '따라잡기(벤치마킹)' 대상도 있다. 제주도 올레길, 멀리는 강원도 동해안 '낭만가도'의 모델인 독일 로만틱가도, 걷기 성지(聖地) 산티아고 순례길…. 9개 도시를 넘나들며 괴테의 옷깃과 숨결만 스치면 관광자원화하는 '괴테가도' 하며, 명품길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날 선 원조 다툼에 시·도계를 넘으면 선부터 긋는 속 좁은 짓은 안 한다.
주목할 것은 가시성이 뛰어난 하드웨어인 길과 잘 포장된 이야기라는 소프트웨어다. '길 이야기' 개념이 막연하다면 문경새재길이라도 넘어 보자. 금의환향 꿈꾸며 넘던 고갯길, 낙방하여 다시 넘는 유생의 쓰라림을 느낀다면, 그 느낌일 것이다. 점 여행인 비행기 여행, 선 여행인 기차 여행과 달리 걷기는 온몸 여행이다. 그래서 노고산성 해맞이길에서 마주친 쇠점고개 스토리는 걷기 좋은 무대로 만드는 힘이며, 풍경은 이야기로 남는다.
바로 그 이야기보따리를 어떻게 푸느냐. '스캔들'도 자원인 것이 길의 속성인지라 너무 무겁게 접근할 일이 아니다. 모나코 공국은 미국 배우였던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로맨스를 상품화하여 관광국 입지를 굳혔다. 화투짝이나 팔던 닌텐도사(社)가 오락산업 강자로 군림한 것도 이야기의 접목으로써 가능했다.
그런 중량감 있는 이야깃거리가 없다? 노은동, 용호동 유적에서 보듯이 대전의 뿌리는 구석기로 뻗어 있고 충청권은 역사의 보물창고다. '천안함' 정국 한켠에서 조용히 주목받은 안동의 '퇴계 예던길'과 같은 '우암 예던길', '동춘당 예던길'을 대전에 못 만들 이유가 없다. 심훈의 당진 필경사 길, 만해의 홍성 길, 백범의 공주 마곡사길, 예산 200리길의 '추사길'이 어렵잖다.
스토리텔링의 문제다.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유네스코 실사단을 움직인 것은 그들이 잘 아는 햄릿을 연상시키는 사도세자 스토리였다. 장릉 길손들은 궂은비를 보고 사도세자 눈물이라 부른다. 애틋한 미장센(장면화) 아닌가. 명성황후와 마리 앙투아네트, 콩쥐팥쥐와 신데렐라도 어딘가 닮았다. '이야기하기'와 '거짓말하기', 스토리텔링이 갖는 두 뜻은 이야기의 생존 방식을 함의(含意)한다. 이것만 추출해내면 태안 별주부 무대는 로렐라이 언덕에 꿀리지 않는다.
대기업이 알아 모시는 '총각네 야채가게'의 성공에는 “이문세가 좋아하는 당근”, “나도 붉은 악마-홍고추”, “어머 쪽팔려-쪽파” 등등, 창의성을 띤 이야기가 주효했다.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다'던 이야기가 문화콘텐츠 생산 방법이며 돈이 된다. 뜨개 전문점도 패션도 스토리텔링 옷을 입는다. 스코틀랜드 목동의 자치기는 골프로 진화했다. 사견이지만 우리가 골목길 자치기를 잃은 건 놀이 기능보다 이야기를 잃어서다.
필자는 저번에 현충·상록수·추사·몽유도원도 밥상에 올려진 '이야기'에서 미래학자 롤프 얀센의 '이야기 경제' 시대를 예감했다. '길 사업'도 스토리 경영을 아는 스토리 매니저인 단체장이 잘할 것이다. 물론 청주 양버즘나무길, 안동 배롱나무꽃길, 담양 메타세쿼이아길은 길 자체로 아름답다.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박경리의 '토지'길은 이미 이야기가 철철 넘친다. 그렇다고 그냥 안주하면 얼마 못 간다. 게다가 걷기 열풍의 거품을 걷으면 국내 생태관광 비중은 아직 5.7%(세계 10~15%)로 미약하다.
좋은 길 하나 열 공장 안 부러울 오리지널 올레길. 거기서는 자식 공부시킨 감귤밭의 은유인 노란 길 안내용 끈까지 이야깃거리다. 사람들은 탑이 얼마나 더 기울어졌나 보러 피사의 사탑을 찾는다. 심오한 과학 원리의 좌뇌적 사고를 벗어난 이야기를 즐긴다. 잠깐, 힌트 하나를 더 얻는다. 호모 나랜스(Homo narrans·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스콘과 아스팔트 아닌, 대전·충청의 역사·문화·자연 이야기로 박음질한 길을 걷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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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