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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난순 교열팀장 |
강간은 전쟁 시에는 조직적으로 자행되기도 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프로이트는 인간에게는 파괴본능이 내재돼 있다고 주장했다. 해서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형태의 남성성은 전쟁을 통해 표출된다는 것이다. 원시적인 지배본능과 남성성을 재확인하는 방편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여자들을 '위안부'로 삼은 일본 군인들의 행위는 남성으로서의 권력을 행사하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유고내전에서 세르비아인이 '인종청소'라는 이름아래 자행한 집단강간은 계획된 것이라고 밝혀져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문명의 발달로 폭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인식하는 세계를 향해 중세적인 잔학성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재현은 다시 존재한다'고나 할까?
요 근래 성인강간은 물론 아동강간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성폭력을 당한 아이는 모든 문제가 유년기에서 유래되는 만큼 더 깊고 치명적인 피해가 정서적·정신적 미래를 위험에 빠뜨린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는 김부남 사건에서 보듯 어릴적 성폭력의 경험은 훗날 성인이 돼서도 정상적인 삶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지난 23일 아동 성범죄 대책을 마련, 상습적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를 검토한다고 했다. 범죄자라도 최소한의 인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성범죄는 재범률이 높은만큼 적절한 조치일 듯 싶다. 교회 고위층의 딸 엘로이즈와 결혼한 중세 프랑스 철학자 아벨라르는 자신의 거세된 운명을 철학적·종교적으로 승화시켰다. '거세된 남자' 아벨라르의 정신적 고양을 '말로 들어먹지 않는' 성범죄자에게 바란다는 건 택도 없겠지만 말이다. /우난순·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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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