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테크노동'과 '도로 관평동'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테크노동'과 '도로 관평동'

  • 승인 2010-07-21 11:39
  • 신문게재 2010-07-22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기분 좋은 기사 하나를 읽는다. 오늘 본회의에서 뚜껑이 열리지만 전국 최초의 영어 행정동명으로 화제를 모은 대전 유성구 ‘관평테크노동’이 ‘관평동’으로 바뀐다는 기사다. 꼭 석 달 전, 민선 4기 유성구의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주민 뜻”인데 지방자치의 ‘지’ 자도 모르냐며 외통수로 밀어붙인 사안이다. 격세지감이라기엔 이르지만 반갑다.

유성구를 찾아 항의했던 한글문화연대도 지금 “잘된 일”로 반기고 있다. 물론 필자는 국수주의적 한글운동엔 반대다. 어떤 분이 우리말의 아킬레스건인 사이시옷 하나를 무기로 대전의 아파트를 휘젓고 들쑤셔 잡지에 썼는데 방식이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해님'인데 왜 '햇님'이냐는 트집, “알려줘도 고치겠다고 하지 않은 것은 매우 어긋난 일”이라며 심판자연(然)하는 태도도 걸린다.

비위가 상한 해당 아파트에서 판정을 의뢰해 살펴보니 새주소 도로명의 표기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그분이 한때 지명위원이었던 터라 더 좀 연구하려던 불과 며칠 사이 도로명이 싹 바뀌어 써보기 전에 새주소는 '헌 주소'가 돼 버렸다. 황당했다. 어둑한 노래방에서 '화장을 고치고'를 들을 때의 왠지 모를 그 묘한 기분과 비슷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아이들이 태어난 마을이 길('로')이 된다는 것은 꽤나 문화적 충격이다. 그래서 생각나는 『여유당전서』다. 정다산이 '이(里)'는 귀하고 '동(洞)'은 풍속이 어그러진 천한 이름으로 쓴 뜻과 배경은 따로 있겠지만 심심산골까지 매달린 무슨무슨 '로'를 보고 느끼는 갓 쓰고 자전거 타는 듯한 감상과 유사하지 않았을까 한다.

'마을 리(里)' 자는 그대로 땅 위의 상형문자나 같다. 큰 길과 ㄱ자로 꺾이는 골목길과 필지들, 골목 입구에 버틴 문이 모여 '리(里)'다. 큰길과 갈림길, 갈림길 끝 옹기종기 마을이 모이면 면(面)이다. 면과 리와 동이 스스로 길을 품었는데 뚝 떼어내 길만 남았다. '어그러짐'이란 이런 것이지 싶다.

그렇다고 국가경쟁력 차원으로 격상된 새주소사업에 태클 걸 의도는 전혀 없다. 성인 인증이 요구되는 야동(冶洞·대장간 있던 동네)길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다. 그보다 연대의식이 소거된 도로명 주소가 어찌 소통의 공간일까, '스트리트' 개념은 천당 아래 분당이나 둔산처럼 구획 잘된 동네에서나 모를까… 반신반의하고 있다.

'도(道)'는 ―올레길처럼 기획된 길에선 머리와 다리가 같이 간다는 풀이도 통하겠지만― 원래 우두머리(首)가 무리지어 행차하는 길이고 '로(路)'는 뭇사람의 뭇발자국으로 다져진 길이다. 길, 도, 로가 너비나 차로(車路) 수로 재단되고 사전 놓고 짜낸 얼치기 작명에 표지판 몇백만 개를 생돈 들여 고쳐 단 일도 더는 함구하겠다. 본질은 지명이 역사라는 데 있다. 관들이 있어 관평동, 만년 동안 양식 걱정 없이 산다 해서 만년동이다. 백제가 망하고 신라 경덕왕 때 유성으로 개명해 1250여년 길이길이 내려온 것도 역사이며 본정이정목이 인동, 본정삼정목이 효동이 된 것도 역사다.

관평동으로 돌아가서, '테크노'에 '기술' 뜻이 있고 테크노밸리가 있다 한들 숨과 결이 우러난 이름은 결코 아니다. 입주민 85%가 '테크노'를 원한다며 바꾼다면 “아파트 이름을 띄우기 위한 동 명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용인 경전철 '에버랜드역' 사례와는 또 다르다. 구의회 상임위원회를 넘은 조례안이 오늘 본회의를 거뜬히 넘어 테크노동 스트레스를 삽상하게 날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파트에 대한 예의가 있으면 지명에 대한 예의도 있는 것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설동호 체제 마무리…오석진號 대전교육, 무엇이 달라질까
  2. 잇단 비위 문제터진 대전경찰… 수사권 재편 과정 하락한 신뢰도 문제
  3. [한화에어로 참사] “사람은 안 늘고 일만 늘었다”…원가 절감 기조 도마 위
  4. 한화에어로 참사 일주일 만에 아워홈 용인공장서도 끼임 사고
  5. 민선 4대 세종시의회 10일 개회… 유종의 미 거둔다
  1. 대전국토청 ‘2026년 상반기 충청권 교통안전협의체’ 개최
  2. '반국가단체' 몰렸던 청람회… 대전지검, 45년 만에 무혐의 처분
  3.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4. 국방과 우주과학 기술과 전문가 대전서 총집합
  5. 대전시장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및 전체회의

헤드라인 뉴스


삼전·하닉 충청권 투자 저울질…민선 9기 선제대응 시급

삼전·하닉 충청권 투자 저울질…민선 9기 선제대응 시급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충청권 투자를 저울질하는 가운데 지역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민선 9기 시도지사 당선인들의 선제 대응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반도체 투톱으로 글로벌 메모리 대표 기업의 투자를 유치할 경우 충청권이 한국 경제 견인을 위한 신성장 엔진으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기업 투자 유치 여부는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이 사실상 제동이 걸린 가운데 지역 미래 발전을 위한 중대 변곡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전력투구가 요구된다. 10일 정치권과 산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와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도..

세종 첫 `Ready korea` 훈련…"열차 탈선에 항공유 폭발"
세종 첫 'Ready korea' 훈련…"열차 탈선에 항공유 폭발"

세종지역에서 처음으로 범정부 합동 복합재난 훈련 '레디 코리아'(Ready korea)가 실시됐다. 집중호우로 인한 열차 탈선과 이에 따른 폭발·누출 사고를 전제로 훈련이 진행됐는데, 대형·복합재난에 대한 지역 내 첫 범정부 대응체계 점검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번 훈련에는 국토교통부 등 중앙부처·기관과 세종시, 세종소방본부, 세종경찰청, 세종충남대병원, 한국철도공사, 한국전력공사, 대한적십자사, 32사단 등 25개 관계기관이 참여했다. 레디 코리아 훈련은 2023년 경기 성남 율현터널 고속철..

`대통령 세종 집무실` 당선작, 44일째 깜깜이… 재공모하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당선작, 44일째 깜깜이… 재공모하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건립이 2029년 8월 이후로 지연될 흐름에 놓이고 있다. 대통령실과 행복도시건설청간 조율 절차가 원활치 않으면서, 세종시와 지역 정치권의 능동적 대응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집무실 건립안은 문재인·윤석열 전 정부를 거치며 2027년 하반기 완공 목표로 제시됐으나, 정치적 격랑 아래 2030년 이후로 미뤄지는 수순을 밟아왔다. 새 정부 들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통해 다시 일정을 앞당기겠다는 뜻을 피력하면서, 상황은 달라지는 듯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임기 말인 2029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 놀이기구로 날리는 더위 놀이기구로 날리는 더위

  •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 ‘무럭무럭 자라거라’ ‘무럭무럭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