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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미선 편집팀 차장 |
2002년에 오스카 데 라 렌타가 이브닝 가운을 발표했고, 다음에 입생로랑이 군용 재킷을 선보였지. 그러자 세룰리언색은 급속하게 퍼져나가 다른 컬렉션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후 백화점을 거쳐서 네가 옷을 사는 그 끔찍한 캐주얼 코너로 넘어가게 된 거지. 네가 그저 걸쳐 입고 있는 그 파란색은 셀 수 없이 많은 일자리와 수백만 달러의 재화를 창출했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저 유명한 대사는 패션은 단지 허영심의 발로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회의 산물임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다.
디자인이란 것이 그저 명품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최초의 우아함, 최초의 빛깔, 최초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걸치고 있는 옷과 신발을 들여다 보자. 비록 카피되고, 또 카피된 채 할인매장에서 널려있는 싸구려 옷 일지라도 모든 것에는 최초의 창조자,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스며들어 있다. 청바지와 미니스커트, 그리고 티셔츠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패션 아이콘은 모두 창조의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지난 12일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세상을 떠났다.
1935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패션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조차 없던 한국 패션계의 기틀을 다져 놓은 앙드레 김. 아니 김봉남. 평생 화려한 런웨이에서 산 고인이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조용했고 소박했다. 생전에 그토록 좋아하던 흰색 영구차를 타고, 그가 사랑했던 수많은 스타들의 배웅을 받으며 결국 '순백의 별'이 되었다.
'앙드레김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 디자이너다'라고 말한다면 다른 여러 패션디자이너들이 반발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작품성 보다는 쇼에 뛰어난 디자이너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유의 제스처와 억양은 때론 코미디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고 1999년 옷 로비 사건으로 법정에 서기도 했지만 어쨌든 앙드레 김은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유명 디자이너이고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디자이너임엔 분명하다.
한국적인 미와 예술을 사랑했던 그의 패션에 대한 순수함이 국내 패션업계에 길이 남길 바란다. 또한 앙드레 김이 평소 강조하던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한 그의 패션 브랜드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미선·편집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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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