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 빼앗기면 대전 미래 없어
지역 정치인들 직(職) 걸고 사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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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용 논설위원 |
‘과학’은 단순히 대전의 상징이 아니다. 대전은 과학으로 커가야 하며, 과학은 시민들이 먹고살 식량이고 재산이다. 그 점에서 대전에 과학벨트는 세종시 문제보다 훨씬 중요하다. 세종시는 기대감을 갖느냐 못 갖느냐의 문제지만, 과학도시는 우리의 멀쩡한 재산을 남에게 빼앗기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과학벨트 문제는 대전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절박한 사안이다.
과학벨트가 다른 곳으로 결정된다면 대전의 미래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백지 재검토’ 발언 직후 염홍철 대전시장이 설 명절 연휴가 끝나기도 전에 간부들을 불러 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이튿날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사안의 절박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언제부터인가 '과학도시 대전'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어 왔다. 대덕특구의 위상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까지 이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과학 메카 대덕특구를 탈출하는 사례가 빈발해 왔고, 정부는 이제 과학특구를 대구와 광주에도 떼어주기로 결정했다. 과학도 나눠먹자는 것이고, 대전에서 과학을 빼 내가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일이 남 탓만은 아니다. 대덕특구의 모체인 대덕연구단지가 대전에 정착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사실상 ‘이방인’이었다. 대덕연구단지는 대전의 가장 중요한 식구였는 데도 대전시는 제대로 대접한 일이 거의 없다. 대전시정(市政)에 대덕연구단지 인사들을 참여시킨 경우도 별로 없고, 대전시가 대덕연구단지 구성원들의 어려움을 제대로 이해해보려는 노력도 부족했다. 지역의 한 원로는 며칠 전 “그동안 대전시장들이 가장 잘 못한 일 가운데 하나는 대덕연구단지를 홀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대덕특구가 생사의 기로에 서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과학벨트를 사수하지 못하면 대덕특구는 껍데기로 전락, 결국 말라죽고 말 것이다. 과학벨트는 꼭 지켜내야 한다. 과학벨트는 대덕특구와 연계되어 구축돼야 한다.
이 문제가 지역 대결로 가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과학벨트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이미 지역 간 싸움의 양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충청권 스스로 투쟁의 수위를 더 높이는 것은 불가피하다.
과학벨트는 세종시보다 더 힘든 싸움이다. 세종시 사수 성공은 지역 정치인과 시민들이 합심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정치공학'의 산물이었다. 야당이 반대하고 ‘여당 내 야당’ 박근혜가 동조해서 얻어낸 성과였다. 이번엔 박근혜의 처지와 반응이 세종시 때와는 다르다. 과학벨트는 충청권 스스로가 지켜내야 할 상황이다.
대전·충남북 시도지사를 비롯, 국회의원, 지방의원, 시민단체 등 충청의 시도민들은 한데 뭉쳐야 한다. 누구도, 어떤 세력도 정략적으로 나와선 안 된다. 충청권 시도민들에게 과학벨트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리고, 전 국민들에게는 충청권 입지의 정당성을 홍보해야 한다. 성명전(戰), 세미나, 포럼 등 각종 홍보 수단을 동원하고, 청와대 항의방문 같은 시위도 이어져야 한다.
세종시 사수를 위해 이완구 충남지사는 지사직을 내놓았었다. 임기 말의, ‘탈당 없는 사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자리를 걸고 싸우는 자세는 인정받았다. 이번이야말로 지역 정치인들이 정치생명을 걸 때라고 본다. 충청의 시·도지사, 국회의원, 지방의원들은 직(職)을 걸고 과학벨트를 사수해야 한다.
대전시민의 대표로서, 충남도민의 대표로서 지역의 가장 소중한 재산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런 불명예도 없다. 충청권 주민에게 과학벨트는 단순히 굵직한 국책사업이 아니다. 충청의 본래 재산이요 미래다. 그 재산을 강탈 당하게 생겼는데 자리가 대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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