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사물의 본성 담은 보물같은 책, 그 탄생에 대해

  • 문화
  • 문화/출판

[맛있는 책]사물의 본성 담은 보물같은 책, 그 탄생에 대해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 승인 2016-06-02 15:16
  • 신문게재 2016-06-03 12면
  • 최정윤·진잠도서관 사서최정윤·진잠도서관 사서
[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 스티븐 그린블랫, 까치, 2013

▲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br />스티븐 그린블랫, 까치, 2013
▲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스티븐 그린블랫, 까치, 2013
스티브 그린블랫은 어느 날 우연히 표지에 기묘한 그림이 그려진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호기심에 시작하였지만 단숨에 그 책에 매료된 그린블랫은 그 책이 탄생하게 된 시대는 어떠했는지, 후대에 재발견되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풀어낸다. 그 책은 바로 약 2000여 년 전에 쓰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이다.

1417년, 뛰어난 필사가이자 라틴어 번역자, 탁월한 인문주의자였던 포조 브라촐리니는 섬기던 교황 요한네스 23세의 퇴위가 결정되고 구금되자 잃어버린 고대의 문헌을 찾아 책 사냥을 떠났다. 독일의 한 수도원(풀다 수도원으로 추측된다)에서 포조는 가슴이 뛰는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기원전 50년경에 티투스 루크레티우스 카루스라는 이름의 시인이자 철학자가 쓴 장편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한 것이다. 포조는 책의 진가를 바로 알아보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책을 필사하여 피렌체의 동료들에게 보냈다. 아마도 포조와 동료들은 작업 당시 그 책이 무슨 의미인지, 그들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몰랐을 것이다.

루크레티우스는 기원전 96년~55년경에 살았던 고대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였다. 그의 일생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은 없다. 정신 이상이 되었다던가, 44세에 자살했다고 전해지나 루크레티우스의 사상을 음해하려는 공작으로 보인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총 7400행으로 압운 없이 이루어진 6개 음절로 한 행을 구성하는 표준적인 6보격 형식을 취하고 있는 시 형식의 저서이다. 소제목 없이 6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다양한 주제가 한데 얽혀있다. 강렬한 서정적 아름다움의 순간, 종교에 관한 철학적 명상, 쾌락, 죽음, 물질계, 인간 사회의 발전, 성의 위험과 즐거움, 질병의 본질 등에 관한 복잡한 이론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들로 만들어진다.', '모든 입자는 무한한 진공(void)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사후세계는 없다.', '모든 체계화된 종교는 미신적인 망상이다.' 몇 가지만 살펴봐도 당시 얼마나 논란이 되었을까 싶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적 지주인 에피쿠로스는 신이 이 우주의 창조자도 파괴자도 아니며 쾌락 외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롱당한 기독교는 특별히 에피쿠로스 사상을 사악한 위협으로 생각했다.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피하자는 에피쿠로스 철학은 사실 호소력 있는 목표이며 충분히 인간의 삶을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원칙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의 적들은 에피쿠로스 사상을 괴이하고 관능적인 방종(성, 권력, 돈 등)으로 몰고 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세상에서 잊혔던 책은 한 책 사냥꾼에 의해 재발견되어 근대의 시작을 열었을 뿐 아니라, 후대의 유클리드의 기하학, 아르키메데스의 원주율,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몽테뉴의 수상록과 토머스 모어의 미국헌법초안(행복추구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나 역시 도서관 사서로서 책에 대한 욕심은 상당하다. 사서이자 동시에 독자의 한 사람으로 욕심나는 책은 늘 있다. 때론 중고서점에서, 때론 오래된 도서관에서 나만의 보석 같은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또한 포조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1417년, 근대의 탄생'은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전미국도서상 논픽션 부문에서 수상했다. 혹자는 딱 한 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선택한다고 했다. 포조 브라촐리니, 에피쿠로스, 루크레티우스의 삶과 철학에 대한 방대한 자료 조사와 폭넓은 이해, 거시적 관점으로 시대를 해석한 심미안으로 근대를 열었던 책과 그 책이 발견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스티븐 그린블랫에게 찬사를 보낸다.

최정윤·진잠도서관 사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봉명동 시대 가고 '옥산 시대' 온다… 청주 농수산물 시장의 화려한 변신
  2. 전광석화처럼 뚫린 대전 숙원사업… 멈춘 현안들 속도전
  3. 내일부터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첫 주는 출생년도 끝자리 요일제 적용
  4. 세종교육감 2차례 여론조사… 단일화 효과 반영되나
  5. 한밭대 우주국방첨단융합학과, 미래 안보·우주 인재 양성
  1. 출연연 공통행정 반대 목소리 잇달아 "중앙집중 통제 수단 변질"
  2. 한밭수목원 봄 나들이
  3. [주말 사건사고] 4월 마지막 주말, 화재로 인명·재산피해 잇따라
  4. "부동층 잡아라" 대전교육감 예비후보 세 결집 표심 쟁탈전
  5. 지난해 둔산·탄방 엘리베이터 나흘에 한번씩 멈췄다

헤드라인 뉴스


[기획] 선거때마다 장밋빛 청사진… 선거 끝나면 흐지부지 ‘찬밥’

[기획] 선거때마다 장밋빛 청사진… 선거 끝나면 흐지부지 ‘찬밥’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최대격전지이자 민심 바로미터인 충청 민심 잡기에 골몰하고 있다. 정치권은 선거철마다 지역 현안의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충청의 표를 애걸한다. 광역교통망 구축과 국가사업 유치, 대전교도소 이전, 원도심 활성화, 청년 유출 대응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여러 국정 현안에 우선순위가 밀리면서 흐지부지 되기 일쑤다. 지역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주요 현안 상당수가 이처럼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중도일보는 충청의 명운이 달린 6·3 지방선거를 30여 일 앞두..

"맛있는거 사먹을거에요"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 시작… 취약계층 발길
"맛있는거 사먹을거에요"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 시작… 취약계층 발길

27일 점심시간을 앞두고 찾은 대전 중구 오류동 행정복지센터. 민원실은 각종 서류를 발급받으려는 시민들로 붐볐지만, 한쪽에 마련된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 창구는 지난해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때와 달리 비교적 한산했다. 긴 대기줄과 혼잡은 보이지 않았고, 조용히 신청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들만 오갔다. 이날 창구에서 신청을 마친 차상위계층 오 모(70) 씨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오 씨는 지원금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냐는 물음에 "우리 같은 영세한 사람들은 이럴 때 한번 기분 내는 거지"라면서 "지인들과 맛있는 걸 사 먹을 계..

"파티원 구합니다"… 고물가 장기화에 대형마트·배달음식 소분
"파티원 구합니다"… 고물가 장기화에 대형마트·배달음식 소분

고물가 시대, 대형마트에서 상품을 나누거나 배달음식을 여러 사람이 소분하는 음식 나눔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 창고형 대형마트 등에서 구매한 물품을 서로 나누는 형식은 자주 목격됐으나, 고물가 장기화에 일반 대형마트와 배달음식을 나누는 새로운 형식의 모임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27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과 SNS 등에는 대형마트부터 배달음식까지 다양한 분야의 소분 모임이 형성되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에서 구매한 상품을 N분의 1하는 형식의 소분 모임이 중심이다. 설명 글에는 "각종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고유가 피해지원금 취약계층부터 지급 시작 고유가 피해지원금 취약계층부터 지급 시작

  • ‘3칸 굴절차량’ 실제 도로주행도 무난히 통과 ‘3칸 굴절차량’ 실제 도로주행도 무난히 통과

  • ‘초단기 계약, 임금 꼼수’…아파트경비원 처우 개선 촉구 ‘초단기 계약, 임금 꼼수’…아파트경비원 처우 개선 촉구

  • 한밭수목원 봄 나들이 한밭수목원 봄 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