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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한진 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사람은 체온이 36.5도로 유지되도록 조절되는 정온 동물이다. 무더운 여름이나 매섭고 추운 겨울에도 체온을 조절하는 중추는 늘 약 36.5도로 체온을 유지해 준다. 하지만 여름철에 바깥에서 일을 하는 경우에는 우리 몸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체온이 37도에서 40도 사이로 증가하고, 또 시원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대부분의 경우 바로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이때를 일사병이라 부른다. 피곤함과 나른함, 구역감 두통 같은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는 우리 몸의 체온 조절 중추가 아직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태다.
하지만 체온이 40도를 넘어서면 체온을 조절할 수 없는 통제 불능 상태에 도달한다. 이때를 열사병이라 부르는데, 체온 조절 중추가 망가진 상태이기 때문에 의식도 혼미해지고 우리 몸의 단백질에 변성을 초래해 심장을 비롯한 여러 장기들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예전엔 삼복더위에도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논에 나가 피도 뽑아야 하고, 밭에서 잡초를 뽑고, 김도 매는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렇다보니 더위를 참아야 했고 좀 심한 경우에는 쓰러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때문에 무더위에도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보양식을 찾았다. 오리탕, 장어구이, 영계백숙, 민어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서 더위를 이겨내고 농업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예전에 왜 하필이면 우리 선조들은 '이열치열'이라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더운 음식을 먹는 방법으로 여름철 체력을 보충하게 되었을까?
이는 아마도 온도가 높아지고 습도 또한 증가하는 여름철엔 수많은 세균들이 번식하는 최상의 조건이 되기 때문에 이런 세균들의 공격과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균 등은 무더운 여름의 더위와 습도를 필요로 한다. 이들의 번식은 질병의 전파를 유발하고 그래서 여름은 수많은 질병이 창궐하는 시기다. 특히 음식을 한 후 조금만 방치해도 상해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에 물을 매개로 하는 수인성 전염병이나 식중독의 발생은 여름철에 가장 많다. 아마 40~50대 이상의 사람들은 여름철 배앓이를 한두 번씩은 해본 경험이 있으리라. 영양도 부실하고 위생상태도 좋지 않았던 지난날에는 음식을 통한 수인성 전염병이 한 나라의 주된 사망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세균에 의해 질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해결할 항생제도 변변치 못했기 때문에 그나마 끓여 먹는 음식이 안전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시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선조들의 지혜인 이열치열을 잘못 해석해서 더위에 땀이 나고 힘든 일을 무리하게 한다면 신체의 면역성이 떨어져 더 많은 질병으로 고생하게 될게 분명하다. 이 더위에 세균에 의한 질병이 창궐한다면 국가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이열치열'이라 함은 음식을 끓여서 세균을 박멸하는 방법, 즉 더위로 인한 세균의 번식을 막아 질병을 예방하자는 선조들의 삶의 지혜로 생각된다.
무더운 여름철 건강하게 여름을 나기위한 방법으로 질병관리본부에서 추천하고 있는 방법 또한 '손을 자주 씻고, 물은 끓여먹고, 음식은 익혀먹자' 이다. 이는 곧 '이열치열'의 기막힌 생활적용법이 아닐까.
오한진 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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