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2025-10-16
20여 년 전, 내가 학생이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그려진다. 당시에는 학교스포츠클럽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다. 점심시간이면 운동장 한쪽에 모여 친구들과 공을 차며 흙먼지를 일으키거나 방과 후 삼삼오오 모여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이 전부였다. 운동장은..
2025-10-10
꽃이 지고 난 자리마다 연두 잎이 피는, 녹음의 세상을 이루는 6월의 끝쯤으로 기억한다, '오뉴월 하룻볕'이라는 옛말이 있다. 아이들의 발달단계 마다 성장 속도가 하루하루 다르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룻볕이 아니라 5살에서 7살까지 1000일 볕의 차이가 나는 아이들 2..
2025-09-26
'나는 매일 자연으로 출근한다'라는 말은 매일의 출근길에 내게 되뇌는 말이다. 생태와 그림책을 주제로 수행한 연구년제를 마치고 복직한 근무지가 지금의 생태유치원이다. 감사하게도 자연·인간·관계·순환에 대한 연구과제를 교육과정으로 펼쳐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하지만..
2025-09-18
'한문(漢文)' 과목은 옛것으로 치부되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사서(四書) 중 하나인 '중용'(中庸)을 살펴보면 한문은 결코 과거에 머물 학문이 아니다. '중용' 제2장에는 '시중(時中)'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때에 알맞게 한다'라는 의미다. 즉 한문은 시대 흐름에 뒤..
2025-09-12
저는 올해로 4년째 교감선생님이 2분 계시는 거대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책임교사로 근무 중입니다. 최근 몇 년간 눈에 띄는 현상 하나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학폭 사안이 고학년보다 저학년에서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는 점입니다. 사안의 경중에 상관없이 상대학생을 무조건 학급교..
2025-08-28
"내가 호구가 될 상인가?" "네" 또는 "모르셨어요?"가 돌아오는 대답이다. 그렇다, 나는 호구다. 여기서 호구란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구에 태어나 육십갑자의 세월을 넘겼다. 그중 절반이 넘는 시간을 선생으로 보냈다. 그럼에..
2025-08-21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기도했었다. 그러나 시인의 바람처럼 '선생님'이라는 이름 앞에 떳떳할 것임을 맹세한 것이 무색하게 선택의 기로에선 비겁해지기 일쑤다. 학급 배정을 받고 '바꿔주세요'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중도입국 학생이 둘이라니...
2025-08-07
대전서중학교는 7월 18일 금요일 5, 6교시에 교사와 학생이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바로 사제 친선 배구 경기다. 여름방학을 3일 앞둔 학생들의 열기를 내뿜게 해주면서 동시에 교사와 학생 간의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대전서중은 교내 스포츠클..
2025-07-31
풍경 하나: 버리는 것도 예쁘게 우리 학교는 아침 늘봄 교실을 운영한다. 교육복지 지원교로 월드비전의 조식지원사업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아침 8시 이전에 등교하는 학생이 서른 명 남짓. 출근하면 앞동과 뒷동을 돌며 일찍 등교한 학생들의 안부를 살피고 급식실 식구들과의..
2025-07-17
대한민국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인문계 고등학생들에겐 졸업식보다 더 유의미한 전환점이 있다. 바로 수능이다. 어찌보면 도합 12년간 수능을 향해 쉴틈 없이 달려왔기에 수능이 끝나면 학생들은 넋이 나간 듯 수능 다음날 가채점을 위해 학교로 모인다. 참고로 가채점은 필요하다..
2025-06-26
필자가 좋아하는 작가로 류시화 씨가 있다. 류 작가는 처음에는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오히려 해외여행(특히, 인도나 히말라야 쪽)을 하면서 개인적인 경험과 영적 체험을 통해 얻은 생각을 국내 독자에게 소개하는 분으로 유명하다. 그중의 하나가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2025-06-20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나의 제자 현우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처음 현우와 만났을 때는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한 시대로 3, 4월을 등교하지 못하고 원격 수업만 하던 시기였다. 두 달간 아이들의 얼굴을 모른 채 담임지도를 하다가 5월 처음 아이들을 직접 만나게 됐..
2025-05-29
5년간 정들었던 면 단위 학교를 떠나 3월이 되어 읍내에 있는 새 부임지로 향했다. 전교생이 40명이고 교직원이 17명인 학교와 달리 새 부임지는 전교생이 280여 명에 교직원은 45명 정도로 약 3배에 해당하는 규모의 학교였다. 작은 학교에서 온 나는 모든 것이 낯설..
2025-05-22
수업은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온전히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매일 교실에서 학생들과 마주하며 호흡했지만, 그 시간이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는지, 한 시간이 어떻게 그들의 삶과 연결될 수 있는지는 늘 모호하게 남아 있었다. 더 나은 수업을 위해..
2025-05-08
봄빛으로 물빛으로 가득했던 4월이 일찌감치 지나버렸다. 4월은 만개한 벚꽃과 살구꽃 사이를 지나는 바람에도 온 몸의 감각이 예민하게 봄에 닿는다. 나무 줄기를 타고 잎으로 퍼지는 물 냄새가 기분 좋게 코를 자극한다. 기후위기로 봄을 잃어가는 요즘 그나마 가장 확연하게..
2025-05-01
교직 경력 11년 차인 나는 4년 전, 참샘초등학교로 옮기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설렘과 긴장 속에 만난 동료들과 학생들, 그중에서도 동학년 부장 이효석 선생님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코로나 시기에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배움은 포기하지 말자"는 신념 아래..
2025-04-17
'우와~ 어떤 부지런쟁이 선생님이 벌써 달력을 정리해 놓으셨네? 오늘부턴 4월인 거야? 이렇게 추운데 벌써 4월이라니. 수행평가 도서는 도착을 안 했네? 어쩐지 오늘 수업 도서실로 오라는 말을 미리 하고 싶지 않더라니. 오후에는 가져다 주시겠지? 오늘 수업은 1, 2,..
2025-04-10
임용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새내기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서 이 글을 써 내려가기까지 적잖은 고민이 있었다. 막 공직에 발을 들인 나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럽기만 했고, 그런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2025-03-28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다. 올해는 조금 더 특별한 출발이다. 지난 5년간 근무했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학교로 오게 됐기 때문이다. 낯선 복도, 아직 어색한 교무실, 처음 마주하는 동료 교사들과 아이들. 출근 첫날, 교문을 들어서며 느낀 긴장감은 마치 처음 교단에 섰던 날..
2025-03-20
찬바람이 매섭게 느껴져 옷깃을 꽁꽁 여밉니다. 강당에서 진행된 졸업식을 마치고 보건실로 돌아왔습니다. 창가로 들어온 따뜻한 햇볕과 훈훈한 공기가 언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었지만, 정든 아이들을 떠나보낸 허전함까지는 채워주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2025-02-27
오늘도 특수교육지원센터의 문을 열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곳은 중증장애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교재와 교구가 가득한 곳이다. 매일 아침, 나는 이곳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구를 꼼꼼히 챙기고, 각 학생의 학습 목표와 상태에 맞는 자료를 준비한다. 단순한 교구 하나를 고르는..
2025-02-20
우리는 이미 AI, 디지털 대전환 등의 용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빠른 시대 변화에 발맞춰 대전은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디지털 시대 교실 구축을 이룬 지역 중 하나이다. 모든 교실에 스마트칠판이 설치되고, 학생 1인 1스마트패드가 학교에 보급 완료되..
2025-02-13
5년이 지났음에도 해마다 중등교사 임용을 보는 날에는 긴장을 한다. 어김없이 지난 시험일에도 그랬다. 어쩌면 나도 그 시험장의 수험생이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수험생활을 마무리하며 내 삶의 가장 치열했던 시기를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교단 위의 내 삶도 여전히 뜨겁게..
2025-01-30
제37회 한국중등영어교육연구회(KOSETA) 학술포럼이 'Embracing Digital Transformation: Diverse Methods for Teaching English'(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다양한 영어교수법)라는 주제로 1월 9~10일 전주에서 개최됐..
2025-01-23
음악의 본질은 무엇일까? 최근 음악 교사인 나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많은 생각 끝에 음악의 본질이 감정 표현에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 표현은 남의 감정이 아닌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며, 표현의 주체가 되는 '나'에 대한 인식과 앎, 성찰을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