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일 "사명감으로 버틴 내 아들·딸들, 미안하고 고마워"

박창일 "사명감으로 버틴 내 아들·딸들, 미안하고 고마워"

매일 소독·24시간 증상 파악, 지역사회 막았다는 자부심 느껴 공포 떨쳐내고 싸워준 모든 이들 눈물나게 감사해

  • 승인 2015-07-06 14:11
  • 신문게재 2015-07-07 9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메르스 최전선 용사들을 만나다 <1>] 박창일 건양대병원 의료원장

이름도 낯선 감염병,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이 한 달간 지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확진자가 나타났으며 사망자도 추가돼 메르스가 지역사회를 집어삼키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지역사회로의 추가 감염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또 최대 잠복기가 지나면서 환자 발생이 없고, 격리자도 급감해 종식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지역 병원들과 의료인들이 밤낮없이 메르스와의 전쟁에서 고군분투한 결과입니다. 이에 본보는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운 지역 의료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편집자 주>

“말 그대로 사투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박창일 건양대병원 의료원장은 지난 한 달간 메르스와의 싸움을 '사투'로 표현했다.

건양대병원은 입원 환자였던 16번 환자(40)가 1차 진원지인 평택성모병원에 들렀던 사실이 5월 30일 밝혀지며 전쟁에 돌입했다. 초기 16번 환자와 같은 병실을 쓴 환자와 간병인들이 잇따라 감염이 확인됐다. 감염 범위가 병동까지 넓어지며 병동 입원환자와 의료진을 통째로 격리하는 '코호트(이동제한)' 조치까지 내려졌다. 24시간 비상근무에 직원들은 지쳐갔다. 메르스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한 간호사도 확진되며 감염 공포가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 원장을 필두로 마음을 다잡았다. 중동에서 넘어온 낯선 감염병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전 직원이 똘똘 뭉쳤다. “우리가 뚫린다면 지역사회로의 감염이 시작된다”는 경각심을 갖고, 다시 메르스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 결과 메르스는 백기를 들고, 건양대병원에서 퇴각했다. 메르스와의 전쟁을 직접 진두지휘한 박 원장으로부터 그동안의 경과와 뒷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봤다.

-메르스가 대전에 상륙한지 한 달이 넘어섰는데, 돌아본다면.

▲지난 한 달은 표현 그대로, '사투'였다. 우리나라에 메르스 환자가 확진된 후 이로 인한 추가 감염이 계속 발생하면서 고귀한 인명들이 돌아가셨다. 시민들은 메르스 공포에 사로잡혔다. 경제도 물론 멈춰섰다. 대한민국이 침몰할 정도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지역사회로 감염이 퍼진다면 걷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컸다. 건양대병원에서 막지 못한다면 대전은 물론 충청권, 전국까지 퍼질 수 있는 만큼 밤낮없이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전 직원이 사투를 벌였다.

-메르스를 막아냈지만, 이로 인한 피해도 심각할 것 같다.

▲막는다는 것 자체가 사투였다. 매일 소독과 방역작업을 실시했고, 접촉자들의 증상 파악도 24시간 이뤄졌다. 직원들이 지쳐갔지만, “막아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버텼다. 물론 피해가 크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0억원 정도의 손실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적인 손실이 크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역 사회 감염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환자가 오지 않거나 줄어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우린 확실하게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 범위를 넓혔다. 방역망을 넓힐수록 더 많은 직원과 의료진이 격리됐고, 관리 환자들도 많아져 병원 경영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역 병원으로서 우리가 할 역할은 '지역사회 감염 차단'이었고, 최우선 과제였다. 피해는 피해일 뿐이고, 성공적으로 차단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고생한 직원과 의료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하던데.

▲호흡기내과 교수 4명 중 3명을 자택 격리했다. 추가 확산이 염려됐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명이 혼자 일하다가 디스크가 터지고 말았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다리에 마비까지 온 상태였지만 알리지 않고 참아왔던 것이다. 나머지 3명이 격리가 풀려 복귀하자마자 그 교수는 수술을 받았다. 본인이 아프지만 책임감 하나로 버텨온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 또 36번 환자가 돌아가실 때 끝까지 살려보겠다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간호사가 확진됐을 때 가슴이 아팠다. 본인이 감염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생명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의료인의 책임이자 의무를 지키다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눈물 나게 감사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직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정말 내 딸 같고, 아들 같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다. 그런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안타까웠다. 방호복 하나에 의지한 채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격리병동에 들어갔다. 소방관들께서 구조를 위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경우다. 전 직원과 의료진들의 노고에 정말 감사하다. 그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야 하고, 자기 자신도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심, 두려움 등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떨쳐버리고, 이겨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건양대병원의 팀워크나 자부심이 강해졌을 것 같다.

▲그렇다. 메르스를 이겨내며 자부심이 생겼다. 우리가 병원뿐만 아니라 대전과 충청을 지켰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 또 우리가 감염병을 막아낼 수 있는 역량도 갖추고,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는 것도 느끼게 됐다. 초기엔 정부도 그렇지만 의료계도 우왕좌왕했다. 우리는 스스로 CCTV를 보고, 분석해 환자 명단을 작성해 보건당국에 넘겨줬었다. 역학조사 나온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히 한 것은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평소 때 저력이 발휘되지 않았나 싶다. 직원들이 굉장히 보람있어 한다. 또 직원들 간에 목숨을 걸고 지켜낸 전우애랄까 그런 것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메르스가 진정국면에 들어섰지만, 아직 불안해하는 시민이 많다.

▲현재 건양대병원은 타 시도 집중관리병원을 방문한 환자들이 우리 병원에 내원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출입구를 한 곳으로 통일해 열 측정과 방문 병원 확인 등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열이 있는 내원객은 무조건 선별진료소로 보내고 있기 때문에 오셔도 괜찮다. 절차가 복잡하고,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져 짜증을 내실 법 하지만 오히려 철저히 하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고들 하신다. 국민안심병원으로 지정된 만큼 환자들이 걱정 없이 진료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로, 공공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대전지역 병원들이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역할을 못했다면 공공의료나 공공병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대전지역 병원들이 메르스 사태에서 공공역할을 못했느냐, 절대 아니다. 공공병원은 짓는데 드는 재원이 아니라 유지하는 비용이 문제다. 1년에 약 150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그 재원으로 기존 병원들을 구역별로 나눠 역할을 분담시키면 어떨까 생각한다. 또 이런 비용으로, 지역 의료계와 협약을 맺어 어려운 환자들이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지원하는 것도 좋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병원을 믿고 찾아와주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건양대병원 비전이 '가족 같은 사랑으로, 신뢰받는 세계적 수준의 의료원이 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병 치료를 위해 무조건 서울로 가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응급실에 오래 머무르면서 감염된 경우가 많았다. 우리 병원의 경우 응급실 방문 후 3시간 이내 입원하는 경우가 95%가 넘는다. 시민들이 지역병원도 믿고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가겠다. 지역민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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