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기록프로젝트] 보존 논의없이 허물어진 대전문인들의 집

[대전기록프로젝트] 보존 논의없이 허물어진 대전문인들의 집

대전 문인들 작품 속 시대 반영된 오래전 대전 모습 담겨있어
정훈 시인 혜남약방 고택과 박용래 시인 청시사 뼈아픈 역사
임강빈 시인 은아아파트, 최문희 연극인 문학자료 보존 필요

  • 승인 2020-05-10 18:44
  • 수정 2020-05-16 13:54
  • 신문게재 2020-05-11 5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재개발과 재건축을 앞둔 동네와 마을의 기록을 남겨보자는 '메모리존' 조성 취지에 공감을 얻으며 [대전기록프로젝트]가 첫발을 뗐다. 중도일보는 이를 출발점 삼아 연중 시리즈로 [대전기록프로젝트]를 이어간다. 대전시의 재개발과 재건축, 도시재생 정책 방향, 기록이 시급한 주요 동네의 모습, 전문가 토론과 타 도시의 사례를 현장감 있게 살펴본다. <편집자 주>

2016년 7월 8일 철거되고 있는 정훈 고택 중도DB
2016년 7월 8일 철거되고 있는 정훈 고택 시인의 대흥동 고택. 사진=중도일보DB
②대전문인들의 발자취는 어디에



대전에 대한 기록을 찾다 보면 시간의 흐름으로 풀어낸 연혁에서 늘 한계점을 맞는다. 다만 시선을 조금만 틀어보면 정겹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록된 시와 소설 등 문학 작품 속에서 '대전'을 만날 수 있다. 이는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한 문인들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그들이 활동했던 당시 모습이 생생하게 작품에 녹아있어 오래전 대전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하지만 문인들의 작품과 달리 그들이 살았던 생활 자취는 재개발과 도시 변경 등 외부적인 힘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정훈 고택이 철거됐던 2016년, 박용래 시인의 청시사가 공영주차장으로 바뀐 2008년까지. 문인들의 기록은 뼈 아픈 반성으로 남았다.



대전의 한 문학인들은 "시와 소설에 등장하는 대전은 스쳐 가는 대전이 아닌 살아가며 함께 늙어가며 애정으로 바라본 기록이다. 정훈 시인의 대흥동 고택, 박용래 시인의 청시사가 보존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대전시외/ 시외버스 종점/ 버스에서 내려/ 집에까지 가는 사이/ 살갗에 닿는 선들거리는 바람…' 한성기 시인의 '시외 진잠바람'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시인이 진잠에 살던 1979년 대전에서는 시외로 불렸던 유성구 진잠의 모습을 담았다.

'대전이 직할시가 되면서/ 관리들은 굽 높은 신발들을 갈아 신었지만…' 정의홍 시인은 '대전직할시'라는 시를 통해 1989년 행정구역명 변천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기도 했다.

정훈 시인의 고택. 혜남 한약 중도DB
정훈 시인의 고택. 혜남 한약 중도DB
'만다라'와 '목탁조', '국수' 등 자전적 경험을 소설로 쓰는 김성동 소설가도 충혼탑에 대한 어린 시절 기억을 소설 '길'에 묘사했다. 소설에서는 충혼탑 아래서 '할아버지는 저 멀리 아득하게 깔린 식장산자락을 바라보시었다'고 했다. 소설가가 대전 용두동 산 십오 번지에 살았던 1958년에는 충혼탑이 현재 대전형무소 인근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문장이었다.

'은행동'은 대전과 경기 성남시에 두 곳에 있는 지명인데, 박목월 시인의 '은행동'이라는 시를 보면 '아 나는 지도를, 지도 위의 은행동을 더듬어 간다/ 옛날의 번지를/ 그집 주인을/ 다, 친숙하고 어질고, 따듯한 분들을/ 문등이 환한 그집 밤을/착각처럼 확실한 은행동을'이라고 적었다.

박용래 시인 등 충청권 문인들과 막역했던 박목월 시인이 대전 은행동을 자주 오갔음을 추측해볼 대목이다.

테미오래 박용래 시인 아카이브 전시에서 만난 김현정 문학평론가는 "앞으로도 지켜내야 할 문인들의 기록과 자료들이 많다. 대전을 노래한 임강빈 시인이 살았던 은아아파트, 원로 문인 최문희 선생님이 소장하고 계신 문학유산들이 빛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행정기관과 문인단체가 사전 교류를 통해 자택의 공간, 자료 일부라도 보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후에 일이 터지고 나면 쉽게 되돌릴 수 없다"고 조언했다.

2009년 6월 3일 20일 중도일보 최충식 논설위원은 '중도시평'을 통해 "감꽃 피고 지던 청시사는 사라졌으나 박용래가 현실의 다리를 건너오는 길은 열려 있다.(생략) 빌딩이 아닌 노상주차장이 들어선 걸 다행으로 여긴다. '다행'이란 말의 유효성은 오직 오류동 감나무집 복원을 전제로 할 때만이다"라며 문인들의 기록을 복원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을 강조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노희준 전 충남도정무보좌관,'이시대 한국을 빛낸 청렴인 대상'
  2. 양주시, 옥정물류창고 2부지 사업 취소·용도변경 양해각서 체결
  3. 천안시농업기술센터, 2026년 1~2월 새해농업인실용교육 추진
  4. 천안문화재단, 2026년 한 뼘 갤러리 상반기 정기대관 접수
  5. 천안법원, 토지매매 동의서 확보한 것처럼 기망해 편취한 50대 남성 '징역 3년'
  1. [독자칼럼]센트럴 스테이트(Central State), 진수도권(眞首都圈)의 탄생
  2. 천안중앙도서관, '1318채움 청소년 놀이터' 운영
  3. 대전 아파트 화재로 20·30대 형제 숨져…소방·경찰 합동감식 예정
  4. 은둔고립지원단체 시내와 대전 중구 청년센터 청년모아 업무협약
  5. 백석대학교 물리치료학과, 성장기 아동 척추 건강 선제적 관리 나서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반대 여론` 어쩌나

대전충남 행정통합 '반대 여론' 어쩌나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지역사회에서 주민 동의가 필요하다며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이달 초 이재명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 전 추진 의지를 밝히면서 강한 추진 동력을 얻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내년 3월까지 통합 관련 법안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시작점인 김태흠 충남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도 24일 만나 통합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속도를 내면서 지역에서 '주민 의견 부족' 등 졸속 추진에 대한 우려..

대전·충남통합 추진 속 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경쟁 `3자 구도`로
대전·충남통합 추진 속 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경쟁 '3자 구도'로

대전·충남통합 추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전시장 후보 경쟁이 3파전으로 재편된다. 출마를 고심하던 장종태 국회의원(대전 서구갑)이 경쟁에 뛰어들면서다. 기존 후보군인 허태정 전 대전시장과 장철민 국회의원(대전 동구)은 대전·충남통합과 맞물려 전략 재수립과 충남으로 본격적인 세력 확장을 준비하는 등 더욱 분주해진 모습이다. 장종태 국회의원은 29일 대전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그동안 장 의원은 시장 출마를 고심해왔다.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며 민주당의 대전·충청권 지방선거 승리를 견인해야 한..

정부 개입에 원·달러 환율 1440원대 진정세… 지역경제계 "한숨 돌렸지만, 불확실성 여전"
정부 개입에 원·달러 환율 1440원대 진정세… 지역경제계 "한숨 돌렸지만, 불확실성 여전"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원·달러 환율이 정부의 본격적인 시장 개입으로 1440원대로 내려앉았다. 지역 경제계는 가파르게 치솟던 환율이 진정되자 한숨을 돌리면서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며 우려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28일 금융시장과 지역 경제계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의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1440.3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4일 1437.9원 이후 약 한 달 반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환율은 지난주 초 1480원대로 치솟으며 연고점에 바짝 다가섰으나, 24일 외환 당국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세밑 주말 만끽하는 시민들

  •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유류세 인하 2개월 연장…기름값은 하락세

  • 성탄 미사 성탄 미사

  •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 크리스마스 기념 피겨쇼…‘환상의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