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옛 충남도지사 공관의 동찰(棟札), 문화재의 발견과 훼손 사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기고] 옛 충남도지사 공관의 동찰(棟札), 문화재의 발견과 훼손 사이

  • 승인 2020-07-23 14:23
  • 수정 2020-07-23 14:57
  • 신문게재 2020-07-24 18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1304161521196164239
안준호 대전광역시 학예연구관

얼마 전 옛 충남도지사공관(대전시문화재자료 제49호)에서 ‘상량판’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상량판이 아니라 일본어로 ‘무네후타(むねふた)’라 부르는 ‘동찰’이다. 건축물의 축조시기와 건축주, 목수의 이름 등을 기재한다는 점에서는 우리의 상량문과 비슷하지만 일반적으로 상량문이 종도리에 묵서되거나 종이나 비단에 써 종도리 안에 홈을 파고 그 안에 넣어 둔다면, 동찰은 처음부터 별도의 부재 위에 쓰여 종도리 하단에 눕혀 부착하거나 종도리에 기대어 세워놓는다. 그래서 종도리를 뜻하는 한자인 ‘동(棟)’자와 얇은 나무 판재를 뜻하는 ‘찰(札)’자를 써 동찰(棟札)이라 한다.

 

일제강점기 건축물에서 동찰이 나온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동찰은 대전지역 최초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일단 그 의미가 크다. 또한 충남도지사공관의 건축시기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가 추가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대전의 토건회사였던 말길조(末吉組)의 창업주 스에요시(末吉定十)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어 조선총독부의 관급 공사에 지역 업체가 참여했다는 사실을 건축물을 통해 재확인했다는 의미 또한 있다. 사료가 부족한 일제강점기 지역사 연구에 중요한 발견인 셈이다. 이 외에도 공사현장감독과 동량(棟梁), 우리로 치면 도편수의 실명 또한 적혀 있어 여러모로 흥미로운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동찰의 발견이 불편한 이유는 문화재에 대한 인식부족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는 원형보존을 원칙으로 하므로 해당 문화재의 ‘현상(現狀)’을 바꾸는 행위를 불허한다. 부득이한 경우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하는데 그것을 ‘현상변경허가’라고 하며, 건축물을 원형 그대로 수리하는 행위조차도 엄격한 심의를 거친다. 따라서 동찰과 같은 중요한 부속물을 뗄 경우(사실 떼어낼 필요성과 당위성이 전혀 없었지만) 당연히 미리 보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최초의 동찰 발견자는 그러한 절차를 생략하고 동찰을 떼어냈다. 문화재의 ‘발견’과 ‘훼손’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고의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새로운 발견에 대한 놀라움, 동찰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그것을 시민과 공유하고 싶은 선의(善意)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선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또한 동찰을 고정하고 있던 못 하나 빼었다가 다시 박는 일이 문화재 훼손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소소한 훼손을 하다보면 나중에 어떠한 일을 도모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문제의 핵심은 사안의 가볍고 무거움이 아니라 보존 인식의 ‘있고 없음’이기 때문이다.

 

 

문화재와 마찬가지로 문화재정책 또한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재정책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그간의 엄숙주의를 벗고 ‘활용’과 ‘향유’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일상과 가까이 있고자 노력하고 있다. 충남도관사촌의 개방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그 일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용의 명분이 원형에 손을 대는 것을 정당화 할 순 없다. 여하한 이유에서건 문화재의 원형 보존은 문화재와 관련된 모든 행위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문화재를 활용 중이거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반드시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안준호 대전광역시 학예연구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 광안리 드론쇼, 우천으로 21일 변경… 불꽃드론 예고
  2. 천안시, 맞춤형 벼 품종 개발 위한 식미평가회 추진
  3. 천안시 동남구, 빅데이터 기반 야생동물 로드킬 관리체계 구축
  4. 천안도시공사, 개인정보보호 실천 캠페인 추진
  5. 천안의료원, 공공보건의료 성과보고회서'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1. 천안법원, 지인에 땅 판 뒤 근저당권 설정한 50대 남성 '징역 1년'
  2. 충청권 부동산 시장 온도차 '뚜렷'
  3. 천안시, 자립준비청년의 새로운 시작 응원
  4. 백석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협력…지역 창업 생태계 활성화 기대
  5. 단국대병원 이미정 교수, 아동학대 예방 공로 충남도지사 표창 수상

헤드라인 뉴스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 다음을 묻다] 대전·충남 통합 '벼랑끝 지방' 구원투수 될까

지방자치 30년은 성과와 한계가 동시에 드러난 시간이다. 주민과 가까운 행정은 자리 잡았지만, 지역이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제도는 커졌지만 지방의 선택지는 오히려 좁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 수도권 일극 구조가 겹치며 지방자치는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지금의 자치 체계가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아니면 구조 자체를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인지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다. 2026년은 지방자치 30년을 지나 민선 9기를 앞둔 해다. 이제는 제도의 확대가..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 내년 지방선거 뇌관되나

대전 충남 통합이 지역 의제로선 매우 이례적으로 정국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내년 지방선거 뇌관으로 까지 부상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부 여당이 강력 드라이브를 걸면서 보수 야당은 여당 발(發) 이슈에 함몰되지 않기 위한 원심력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6월 통합 단체장 선출이 유력한데 기존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를 준비하던 여야 정치인들의 교통 정리 때 진통이 불가피한 것도 부담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들과 오찬에서 행정통합에 대해 지원사격을 하면서 정치권이 긴박하게 움직이..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 카페 일회용 컵 따로 계산제 추진에 대전 자영업자 우려 목소리

정부가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값을 따로 받는 '컵 따로 계산제' 방안을 추진하자 카페 자영업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매장 내에서 사용하는 다회용 머그잔과 테이크아웃 일회용 컵 가격을 각각 분리한다는 게 핵심인데, 제도 시행 시 소비자들은 일회용 컵 선택 시 일정 부분 돈을 내야 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2027년부터 카페 등에서 일회용 컵 무상 제공을 금지할 계획이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컵 따로 계산제를 탈 플라스틱 종합 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