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영화 '밀양'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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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영화 '밀양'을 보고

서경동 극단 헤르메스 연출가

  • 승인 2021-09-01 15:23
  • 신문게재 2021-09-02 1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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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동(극단 헤르메스 연출가)
요즘 가을바람이 부는지 싱숭생숭하다. 누구라도 만나 실컷 수다를 떨고 싶지만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봤다. '밀양'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신애'라는 인물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다.

영화 첫 장면에서 신애는 핸드폰에 대고 말한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요." 첫 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밀양으로 이사 온 신애는 남편을 잃었다는 기색 하나 없이 씩씩하게 아들 준과 새로운 생활을 꿈꾼다. 돈이 있어 땅을 찾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남의 가게의 인테리어에 조언도 해주고 교회에 나오라는 말에 자신은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밀양의 생활에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아들이 납치된다. 납치범에게 전화를 받고 무작정 걸어가는 신애. 도로에 앉아 소리 죽여 운다. 카메라 앵글은 그런 신애의 뒷모습, 어깨를 낮게 떨며 우는 모습을 잡는다. 돈을 납치범과 약속한 장소에 두고 나올 때도, 아들의 시신을 볼 때도, 경찰서에서 살인자와 마주쳤을 때도, 아들 화장터에서도 그녀는 큰 소리의 울음조차 없다. 아들의 사망 신고 때 무표정의 신애는 연신 불안해한다. 머리를 계속 만지고 자신의 주민번호도 기억해 내지 못 한다. 그리고 신애는 가슴을 부여잡고 거리로 나온다. 숨을 쉬지 못한다. 하지만 소리를 내거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더욱더 포장된 감정으로 타인을 만나고 모임에 나간다. 오히려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을 때 내는 화와 지렁이를 보고 놀라 지르는 소리가 신애의 감정이 온전히 담긴 목소리다. 자신에게 솔직히 반응하며 내었던 목소리.

평화에 감정을 숨긴 채 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만나게 되고 그가 자신은 용서받았다는 말을 들은 후 그녀의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신애는 도로 위로 걸어간다. 나지막이 욕을 하며 하늘을 노려본다.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신애. 그녀의 감정은 쏟아져 나왔다. 손목을 긋고 도로로 뛰어나온 신애는 소리친다. 처음으로 차의 경적 소리에 지지 않으려는 듯 소리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한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그 후 병원에서 퇴원한 신애는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화를 내기도 또 웃기도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며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신애. 카메라 앵글은 그녀의 뒷모습을 잡는다. 거울 속 신애의 얼굴. 자신을 마주하는 거울 안에는 환한 빛이 가득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마당 한편을 보여 준다. 그곳에는 한 줄기 햇살이 비친다. 우리의 감정 밑바닥에도 있을지 모를 신애의 마음 같은, 그 빛 속에는 고인 물, 마른 나뭇잎, 쓰레기 등이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처럼 섞여있다. 그 감정들이 따뜻한 햇볕에 단단해지길 빈다. 오롯이 자신을 마주하고 볼 수 있을 때 우린 살아갈 힘을 얻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신애가 자신의 감정을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하고 살아가면서 힘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아팠던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찾고 표현하는 것이 인간으로 얼마나 평범하고 보편적인 수단이며 자연스러운 흐름이란 걸 신애를 보면서 깨달아 본다.

감정을 나누고 공감받고 이해받는 마음은 서로를 잡는 끈이 된다. 그 끈은 버팀목이 되면서 삶 속에 조금은 특별한 마음이 되어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다. 카메라 앨글처럼 서로의 뒤를 묵묵히 지켜봐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영화를 본 뒤 먹먹한 마음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해본다. 그리고 수다를 떨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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