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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태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장 |
참가자들은 해가 보일 때는 똑바로 걸어갔지만, 태양이 구름 뒤로 숨자 방향을 잃고 지름 20M의 원을 그리며 걷다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튀니지의 사하라 사막에서 진행된 두 번째 실험에서도 이들은 해나 달이 보일 때는 직선으로 걸었지만 구름 속으로 사라지면 바로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참가자들은 숲과 사막에서 계속 원을 그리며 걷고 있었지만 스스로는 '똑바로 걷고 있다'고 착각했다. 연구진은 사람들은 해, 달, 산, 건물처럼 방향을 알려주는 기준점이 없으면 작은 실수들이 누적돼 직선에서 벗어나 원을 그리며 걷게 된다고 설명했다.
위의 실험과 연관된 등산 용어로 '링반데룽(Ringwanderung)'이 있다(BTS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링반데룽은 독일어로 '둥근 원'을 뜻하는 링(ring)과 '걷는다'는 의미의 반데룽(wanderung)이 합쳐진 말로, 등산할 때 짙은 안개나 폭설 등으로 방향감각을 잃고 계속 같은 자리만을 맴도는 현상을 가리킨다. '블레어 위치' 등의 공포영화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링반데룽은 바깥세상이 아닌 인간의 뇌 속에서도 발생한다. 특히 지식인일수록 자기 안의 링반데룽에 빠질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계약 매춘부'로 규정해 지탄을 받은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사례가 여기에 속한다.
램지어 교수처럼 링반데룽에 빠진 사람은 특정 주장이 맞는다고 가정한 뒤 입증할 자료들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가정된 주장과 상반되지만, 진실에 부합하는 자료가 나타나면 주장을 수정하는 것이 맞지만, 이미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 빠진 상태라서 반대쪽 자료는 휴지통으로 직행한다. 자신의 확증 편향이 증폭되면서 한 번 경로가 정해지면 관성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바꾸기 어려운 경로 의존성이 작용하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우리의 의도대로 본다"고 말했다. 이 원리를 기업 경영에 적용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을 가리켜 '지적 완전성(intellectual integrity)'이라고 했다.
세상사를 자기 의도대로 보는 것은 매몰 비용과도 잇닿아 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일단 시간, 돈, 노력 등을 들여 어떤 결정을 내리면 성공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과거의 결정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냈다. 이미 지급해 회수할 수 없는 뷔페 입장료가 아까워 꾸역꾸역 먹다가 배탈이 나는 것은 '매몰 비용의 오류'의 전형적 예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깨끗이 잊어버리는 것이 좋지만 사람들은 그간 투입한 비용이 아까워 같은 자리를 맴돈다.
매몰 비용의 오류는 개인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발견된다. 1998년부터 13년간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중심으로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는 흐름을 무시하고, 기존에 투자했던 중저가 일반 휴대전화 중심의 패턴을 고집했다. 매몰 비용의 오류와 함께 터널에 들어가면 시야가 급격히 좁아져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결국 무모한 결정을 내리기 쉽다는 뜻의 '터널 시야'에 갇힌 노키아는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되는 굴욕을 겪어야만 했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유일한 지름길이라고 하지만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링반데룽에 빠지면 '실패는 실패의 어머니'일 뿐이다. 실패는 도전과 발전을 위해 패배한 원인을 분석하고 창조적인 해결책을 이끌어 낼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링반데룽에서 탈출하려면 해, 달 등의 기준점을 찾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김용태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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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가람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