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이방와처

  • 오피니언
  • 홍키호테 세창밀시

[홍키호테 世窓密視] 이방와처

간절한 소망

  • 승인 2023-01-2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설날은 역시 우리 국민 모두의, 그리고 최대의 명절이었다. 더욱이 올 설은 코로나19의 습격 이후 3년 만에 맞는 본격적 '가족 상봉의 해'였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 집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아들네와 딸네 식구가 모두 온다는 소식에 가장 반가워한 사람은 아내였다. 시장을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분주하게 오간 아내의 손길은 연일 바빴다. 지지고 볶고 삶고 무치는 따위의 음식 장만은 마치 아이들이 결혼하던 때를 방불케 했다.



이윽고 딸네가 하루 먼저 도착했다. 올부터 다섯 살이 된 외손녀를 품에 안은 아내는 그때부터 싱글벙글 외에는 당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좋아?" "그럼~ 내 새낀데."

이튿날, 그러니까 설 하루 전에는 아들네도 집에 들어섰다. 아내의 입은 귀를 넘어 머리 부근까지 올라갔다. "우리 손자 어서 와~" 팔짝 뛰어온 친손자 역시 아내의 품 안에 폴짝 안겼다.



정겨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좋은 것은 역시 가족이라는 사실에 방점이 찍혔다. 드디어 설날 아침. 차례상을 준비하고 선친께 절을 올렸다.

정말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설날 차례를 지내는 모습에 아내는 감격스러운 모습이었다. 떡국과 차례 음식을 나눠 먹은 아들네와 딸네 식구들이 우리 부부에게 세배를 했다. 세뱃돈을 꺼내 손주에게 건네는 아내의 표정은 더욱 행복 만점의 정점이었다.

"길 막히기 전에 서둘러 가려무나."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이튿날 아내는 다시금 사찰을 찾았다. 가족의 건강과 나의 저서 베스트셀러를 간절히 기원(祈願)하고 발원(發願)까지 했다고 한다.

그사이 나는 다섯 번째 출간 예정인 새로운 저서의 탈고(脫稿)를 마쳤다. 최종 교정을 보는 가운데 아내가 귀가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진작 오지 않고…." 아내의 휴대전화가 울었다. 딸의 시어머니인 안사돈이랬다. 두 아낙의 수다가 요란했다.

"제 남편요? 호호~ 여전히 술 잘 먹지요… 줄이라고 해도 제 말을 잘 안 들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바쁘고 술에 떡이 되어도 자신의 할 일은 다 한답니다. 작년에는 그 바쁜 와중에도 대학원에서 장학생으로 공부를 마쳤어요. 다음 달에는 또 다른 책도 나온다네요."

겨우 꺼벙이(성격이 야무지지 못하고 조금 모자란 듯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에 불과한 나를 그래도 서방이랍시고 온갖 치장으로 발쇠꾼(남의 비밀을 캐내어 다른 사람에게 넌지시 알려 주는 짓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역할까지 하는 아내를 보며 나 역시 넉넉했다.

그런데 시베리아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북극한파의 기습으로 한반도가 꽁꽁 얼어붙었다. 그 영향으로 아내는 끝내 몸져누웠다. 이 추운 날씨에 차가운 법당에서 기도하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문득 이방와처(二訪臥妻)라는 신판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아이들, 즉 '내 가족들이 두(2) 번만 우리 집을 방문하면 아내는 그 수발을 들다가 끝내는 드러눕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꿍꿍 앓는 아내의 머리에 물수건을 얹어주며 나도 간절히 소망(所望)했다.

'올해는 당신도 부디 아프지 마시구려. 또한 다음 달에 출간될 다섯 번째 저서는 반드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여 넉넉한 인세만으로도 당신과 어디로든 여행을 가고 싶소. 그러자면 뭐니 뭐니 해도 당신의 건강이 관건입니다!'

여행은 가슴이 뛸 때 가야 한다. 더 늙고 병까지 든다면 다리부터 여행을 거부한다. 다행히 아내는 이튿날부터 호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홍경석 / 작가 · '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 저자

홍경석 세창밀시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충남 통합논의"…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2.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3.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4.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5.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1.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2. 대전 동구, '어린이 눈썰매장'… 24일 본격 개장
  3.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4. 이대통령의 우주청 분리구조 언급에 대전 연구중심 역할 커질까
  5. [기고] 한화이글스 불꽃쇼와 무기산업의 도시 대전

헤드라인 뉴스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10·15부동산 대책 2개월째 지방은 여전히 침체… "지방 위한 정책 마련 필요" 목소리

정부 10·15 정책이 발표된 지 두 달이 지난 가운데, 지방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 3단계가 내년 상반기까지 유예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지방 부동산 시장 침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어서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누적 매매가격 변동률(12월 8일 기준)을 보면, 수도권은 2.91% 오른 반면, 지방은 1.21% 하락했다. 서울의 경우 8.06%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대전은 2.15% 하락했다. 가장 하락세가 큰 곳은 대구(-3...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소위, ‘지역의사제’ 시행을 위한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산과 보육비 비과세 한도 월 20만원에서 자녀 1인당 20만원으로 확대하고, 전자담배도 담배 범위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4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5건과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24건, 일반안건 3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우선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공포안’..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제2문화예술복합단지대·국현 대전관… 대형 문화시설 '엇갈린 진척도'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 ‘헌혈이 필요해’ ‘헌혈이 필요해’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