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더 글로리'와 멀티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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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키호테 世窓密視] '더 글로리'와 멀티 페르소나

무시, 시기, 오기… 그리고…

  • 승인 2023-03-19 11:36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최근 인터뷰 형식으로 유튜브를 찍었다. 인터뷰어(interviewer)는 평소 절친한 선배님이자 '화술 박사'로 소문이 자자한 윤00 님이었다. 내용은 최근 발간한 나의 저서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 소개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인터뷰 도중 윤 박사님께서 질문한 내용이 그만 또 내 마음을 가시 이상으로 아프게 찔렀다. "내가 알기로 홍 작가는 어머니 없이 아주 어렵게 성장했다지요?"



그렇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조차 기억에 없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말미암아 내가 겨우 첫 돌 무렵 가출했다. 그리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은 정말 사실이었다.

그 바람에 나는 '엄마 없는 아이'라는 사회적 주홍 글씨가 각인되었다. 동네 또래들은 엄마가 없는 나를 대놓고 무시(無視)했다. 그럼에도 초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부동의 1등 성적으로 질주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그런 나를 시기(猜忌)했다. 오기(傲氣)가 활화산으로 치솟은 나는 공부에 더 열중했다. 금수저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누구도 내 성적을 추월하지 못했다.

다음 질문이 들어왔다. "그렇게 공부를 잘했다면서 왜 중학교조차 못 갔나요?"

당시 초등학생 중 3분의 1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지독한 가난 때문이었다. 내가 꼭 그랬다. 지금처럼 장학금 제도도, 야학도 없었다. 나는 꼼짝없이 소년가장이 되어 고향 역전에서 구두닦이, 신문팔이, 행상 등 갖은 고생을 다 했다.

내 나이로 보이는 아이들이 멋진(!) 교복을 입고 등.하교하는 모습을 볼 적마다 나는 돌아서서 울어야 했다. 내 팔자는 왜 이다지 기구하단 말인가… 질문이 이어졌다.

"이 책을 보니 안 맞으려고 운동을 배웠다던데?" 소년가장 시절, 못된 불량배 하나가 술만 먹었다 하면 이유 없이 나를 비롯한 어려운 처지의 소년가장 아이들을 마구 구타했다. 그는 그게 스트레스를 푸는 길이었다.

하여 그를 응징할 목적에 누구도 몰래 밤마다 복싱을 배웠다. 결국 몇 달간 갈고닦은 솜씨로 그 못된 자를 주먹으로 단 세 방에 굴복시킬 수 있었다. 그로부터 자신감이 무럭무럭 성장했다.

"대학을 나와도 책 한 권 내기가 힘든데 이 책은 무려 다섯 번째 발간이죠?" 나는 책을 발간하려고 그동안 만 권의 책을 읽었다.

그러자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시성(詩聖)이라 불렀던 두보가 '만 권의 책을 읽으면 글을 쓰는 것도 신의 경지에 이른다'라고 말했던 독서파만권 하필여유신(讀書破萬卷下筆如有神)의 실체가 비로소 밟히기 시작했다.

그 후부터 그야말로 파죽지세(破竹之勢)의 기세로 글을 썼다. 송혜교 주연의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그 드라마가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전 세계 1위에 올랐다. <더 글로리>를 보면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슬픔과 아픔이 떠올라 많이 오열했다.

고대했던 난생처음의 출판기념회까지 잘 마치고 나니 지인들의 칭찬과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의 도서 주문이 폭주했다.

"홍 작가는 가히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입니다. 존경합니다." '멀티 페르소나'는 회사, 학교 등 본래의 일을 마친 후 취미와 특기 활동으로 소통할 때 나타나는 개인의 정체성을 뜻하는 신조어다.

내가 이 나이를 먹도록 그저 생계 극복에만 급급하여 허투루 살았다면 과연 오늘날의 나는 존재할 수 있었을까? 작가와 기자라는 두 날갯짓 멀티 페르소나 역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홍경석/ 작가. <두 번은 아파 봐야 인생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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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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