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과 경관으로 바라본 대전의 지역정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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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과 경관으로 바라본 대전의 지역정체성은?

교통요지 대전의 정체성, 근대 접어들면서 부여
대덕연구단지의 대덕?, 엘리트 집단의 집결지로
과학도시 대전인데 도시환경은 과학과는 무관?
한상헌 "형성되는 장소성 녹여내는 경관정책 필요"

  • 승인 2023-05-29 09:09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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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충남도청사 전경. [출처=중도일보 DB]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한상헌 대전세종연구원 지역학연구센터장은 지역학 연구에서 자주 다루는 두 가지 소재, 이름과 장소에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봤다. 정확히는 이름이라기보단 이름을 부르는 행위인 호명에서 접근했다. 호명을 통해 특정한 프레임(틀짓기)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런 상징적인 투쟁은 지역학 연구에서 중요하게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장소는 대전의 경관에 국한해 장소성의 중요성에 다가갔다. 도시 정체성이 담긴 도시경관은 일목요연하게 정비되는 시각적 측면뿐 아니라 내적 주민들에게는 정체성의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만드는 정서 구조의 역할을, 외부에서 온 방문자들에게는 도시의 특성을 느끼도록 하는 도시브랜드의 주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지역학 연구의 단골 소재인 이름과 장소, 정확히는 호명과 경관으로 대전의 지역 정체성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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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대전의 강역(왼쪽)과 해방 이후 1945년 행정구역. [출처=대전세종연구원, 홍주일보]
▲대덕구에 없는 대덕연구단지?=과학도시로서 대전이 지역 정체성을 지니게 된 것은 1970년대 중반 국가연구기관이 대전이 밀집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대덕연구단지'로 불렸지만, 정작 대덕연구단지는 대전의 5개 자치구 중 대덕구가 아닌 유성구에 위치했다. 대전을 잘 모르는 지역에서 보면 당연히 대덕구 내 대덕연구단지가 있을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충청지역의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대전 일대 지도를 보면 지금의 대전지역 대부분이 대전군이었고 그 안에 대전면이 있었다. 이후 대전면이 계속 성장하면서 대전부로 확대되고 대전군은 대덕군으로 개편됐다. 조선시대부터 기호유학의 본산이던 회덕면은 대전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중심지였고 한때 대덕군은 또 다른 유학의 집성지인 남서쪽의 진잠과 남동쪽 산내, 북쪽의 신탄진을 아우리는 거대한 지역이었다.



대덕연구단지는 이러한 역사적 전통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89년 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대덕군은 대폭 축소돼 구로 신설됐고 대덕연구단지의 대덕은 독자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대덕의 독자적 의미는 무엇인가. 대덕연구단지에서 근무한 익명의 과학자 회고에 따르면 대부분 서울의 엘리트층이었던 과학자 또는 과학자 가족들이 대덕연구단지 설립으로 대전에 이주하면서 사회자본의 상실 또는 불안을 느꼈다고 한다. 어떤 이들에게 대전이라는 의미는 서울과 먼 변방의 의미가 컸고 이때 대덕은 대전과는 구별되는, 국가의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엘리트 집단의 집결지라는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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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특구 전경. [출처=중도일보 DB]
▲대전의 도시 정체성은 근대로 접어들면서부터=교통의 요지라고 인식되는 대전의 도시 정체성은 근대로 접어들면서 부여됐다. 1904년 한일협정과 경부선 개통으로 대전역이 설치되면서 일본인 거류민 이주가 시작돼 대전이라는 도시가 형성됐다. 이 때문에 근대 대전의 경관은 경부선 철로를 중심으로 현재의 기존 도심지역이 저층 주거지를 형성해 주변의 자연경관에 의해 에워싸여진 모습을 띠었다.

대전의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 줄 수 있는 경관적 축은 크게 두 개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근대문화도시로서 생성된 대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원도심 일대, 또 다른 하나는 대전예술의전당과 대전시립미술관, 한밭수목원 등이 집결한 1990년 이후 조성된 지역이다. 여기에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카이스트 등 과학집적단지와 조선 초 기호유학의 근거지인 회덕지역 일대를 포함하면 몇 개의 문화 축을 더할 수 있다.

특히 원도심은 지난 100년간 진행된 대전의 도시 성장과 궤를 같이하면서 그 중심 기능을 수행했던 곳이다. 근대도시로서의 대전을 이해하는 데 원형과 같은 장소로 중요성을 지닌다. 대전은 다른 도시들과 달리 구도심이나 기존 도심이 아닌 원도심이라는 표현을 정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이는 원도심이 도시 정체성을 핵심적으로 갖추고 있는 중요 지역이라는 문화적 자각을 뚜렷이 견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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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목척교의 1970년대 모습과 재건축된 모습. [출처=대전세종연구원]
▲그런데 경관 정책과 장소성의 괴리가?=대전 목척교는 일제강점기 시기 대전에 놓인 최초의 다리다. 애초에 나무로 지어졌던 것에서 1970년 복개하고 다시 해체를 반복해 대전 근대사의 애환이 담긴 장소다. 다리 아래 스케이트장의 추억이나 다리 옆으로 당시로서는 호화 상권이던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가 있었던 기억을 간직하는 시민들에게 지금의 디자인은 조금 낯설기도 하다.

과학도시로서 대전을 규정하는 경관 조성정책도 마찬가지다. 대전은 1974년 대덕연구단지가 구축되면서 중부권의 대표적인 연구거점 도시로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이 두 세대 가까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대전 시민들이 일상에서 과학을 영위하고 대전이 진정 과학문화도시로 정착하였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대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도시로서 정체성을 지니지만, 실제 도시환경은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도시환경 대부분이 과학과 무관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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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의 대전(왼쪽)과 1930년대 대전 전경. [출처=대전세종연구원]
▲형성되는 장소성을 녹여내는 경관정책이 필요=결국 대전시민 스스로가 공감할 수 있는 장소성을 대전 곳곳에 부여하는 일이 필요하다. 대전의 경관정책은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 대전 시민의 정서에 미치는 장소성과 어떻게 조응하는지를 따져볼 여지가 많다. 대전의 장소성으로 교통도시, 과학도시, 역사도시, 하천도시, 문화도시 등이 거론되지만, 아직 도시 정체성을 온전히 확보했다고 보긴 어렵다.

한상헌 센터장은 "대전의 도시경관은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이 투명되지 못한 채 맥락 없는 난개발이 계속되었고 도시민의 문화적 자존감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며 "이런 정책들은 거리와 건물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공간들에 어떻게 장소성을 투여할 것인가 고민하는 깊이에 따라 진정한 의미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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